(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의 수필에 나오는 이 절(節)은 1998년 3월 15일 자 세이쿄신문에 일본어로 처음 발행되었다.
일본에서는 새 학년이 4월에 시작한다. 3월은 졸업의 달이다.)
교육은 미래의 지도자를 배출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사업이다. 1930년 봄, 마키구치 선생님은 친구에게 “교실의 교사뿐만 아니라 최근의 교육 정책은 교육의 전반적인 목적을 파괴하면서 완전히 관료적이고 무기력해졌다. 이것은 일본의 미래를 중대한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라고 편지를 썼다. 교육의 쇠퇴는 그 나라의 시민과 사회의 도덕성 그리고 정신성의 몰락을 일으킨다. 때문에 마키구치 선생님은 교육 개혁을 촉구했으며, 탁월한 교육자 육성을 무엇보다 바랐다. 편지를 작성했던 그해 11월 18일, 마키구치 선생님은 도다 선생님과 함께 창가교육학회 또는 가치창조교육협회 (현 창가학회의 전신(前身))를 설립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교육의 목적은 아이들이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신성한 과업을 수행할 교육자 유형에 대한 그의 전망은 존경의 대상으로서 교육의 보좌에 머물러있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그 보좌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삼는 사람을 지도하는 공무원이었다. 이는 인간주의 교육에 대한 그의 혁명적인 외침이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종종 가족들에게 자신의 구상을 얘기했다. “미래에는 창가교육학을 실행하는 학교 체계가 생길 것이다. 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 포괄할 것이다. 젊은 도다 선생님이 내 사업이 실행되는 것을 볼 것이다.” 그리고 도다 선생님은 제자인 나에게 “다이사쿠, 대학을 설립하자. 소카대학교다. 내 생에 그것을 해낼 수 없다면, 네 생에 부탁한다. 세계 제일의 대학으로 만들자.”고 말했다. 1950년 늦가을이었다. 그 당시 도다 선생님의 투자 사업은 곤경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그는 먼 미래를 담담하게 응시하는 능력을 유지했다.
교육은 내 인생의 마지막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두 분 다 교사였던마키구치 선생님과 도다 선생님과는 달리, 나는 교사로서 공부하거나 교실에서 가르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창가교육 체계를 설립할 수 있었고, 전 세계에 창가교육의 원리와 이상을 인정받아왔다. 이것이 제자로서 나의 사명이었다. 나는 이러한 방식으로 숭고한 스승과 전임자들의 바람을 실현시켰다.
마키구치 선생님의 교육 이상에 대한 권위적인 저술서인 창가교육학체계는 현재까지 4개 국어로 번역되었다. 엄청난 기쁨이다. 또, 브라질과 미국의 수많은 학교에서 마키구치 선생님의구상을 교육 과정에 포함시켰는데, 모두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학생들은 공부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학생들의 성적은 향상되었다. 브라질에서는 특히 창가교육이 대중의 폭넓은 인정을 받았다. 1995년에는 창가교육법을 실행하는 학교가 한 곳이었다. (불과 3년 후) 오늘날에는 열여덟 곳이 있다.
우리는 전 지구적인 교육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수년에 걸친 마키구치 선생님의 교육 발상은 어둠 속의 생명선이자, 희망의 균형 원천으로서 빛을 발해 왔다.
학교의 전통이 된 이래, 나는 수년 동안 소카대학교 학생들이 졸업할 때 쓴 많은 논문의 합본을 받았다. 여기에는 초창기 졸업생부터 최근에 졸업한 학생들의 논문까지 포함한다. 통틀어 약 24권의 책이 있다. 그것을 가까이에 두고 각 졸업생의 행복과 성장을 위해 계속 기원을 보내고 있다. 나는 종종 논문을 살펴보고, 저자의 안부를 묻기도 한다.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 책이나 전언, 시를 보내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서 졸업생 한 명 한 명은 내가 설립한 대학교에서 공부하기로 선택한 학생이자, 소중한 사람이다. 우리가 나누는 유대는 청춘 시절에 만든 서원을 통해 구축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