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카대학교가 개교하기 몇 년 전, 새로운 학교 건설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열망에 가득 찬 청년들이 토지를 개간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땀에 젖었고, 힘든 작업 때문에 손에는 물집이 생기고
피가 흘렀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대학을 가지 못했다. 소카대학교는 수많은 이름 없는 서민의 기여와 지원으로 만들어졌음을 소카대학교 학생은 물론 모든 관련 종사자들이 잊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대학의 사명은 대학을 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나는 믿습니다.”
- 이케다 다이사쿠
소카대학교 건축계획 논의
오늘날 도쿄 하치오지의 소카대학교 정문에는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선생님이 직접 쓴 ‘소카대학’이라는 동판이 새겨져 있다. 초등교육에서 대학교육까지 일관 교육을 실시할 학교를 건설하는 것이 마키구치 선생님의 꿈이었고, 창가교육학체계(1930-34)라는 획기적인 연구의 목표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마키구치 선생님의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1943년 그는 도다 선생님과 함께 천왕을 숭배하라는 신도주의 사상에 반대하다 체포되어 옥사했다. 도다 선생님은 살아남아 1945년 7월 전쟁이 끝나기 바로 직전 출감했다.
2001년 개원한 브라질 소카유치원
이케다 선생님의 교육 이상에서 영감을 얻은 독립 기관인 인도의
소카이케다여자대학교 (첸나이, 2005년 1월)
이케다 선생님은 전후 혼란의 상황 속에서도 도다 선생님이 얼마만큼 스승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떠올린다. 1950년 늦은 가을, 도다 선생님의 사업이 가장 최악의 상황을 맞았을 때, 선생님은 소카대학에 대한 구상을 확신 있게 말씀하셨다.
“다이사쿠, 소카대학을 만들자! 내 생애에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나는 그 과업을 자네에게 물려주고 싶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을 만들자!”
현재 약 8,000명의 학생들이 일본 최대의 학술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소카대학교에 등록 하고 있다.
하치오지의 소카대학교 학생들과 담소를 나누며 이케다 선생님은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그가 품었던 결의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두 분 선생님의 이루지 못한 꿈, 그래서 나에게 물려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투쟁해 왔습니다. 온몸을 바쳐, 연이은 박해 속에서 일본을 벗어나보지도 못한 두 분 선생님의 위대함을 세계에 알리려고 노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