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 교육을 통해 인간은 무기력과 자신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지구사회로 가는 길

2012년 6월 5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유엔 지속가능한개발회의(리우+20)에 세계 192개국의 SGI를 대표해 소감과 제안을 말하고자 합니다.

‘리우+20’의 초점

지금 세계에서는 산림이 해마다 5만 3000제곱킬로미터 줄고 있는 한편, 많은 나라에서 대수층이 고갈되어 물 부족 현상이 발생해 지구 육지면적의 25%가 사막화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리우에서 열리는 이번 회의에서는 이러한 눈앞에 놓인 과제에 대응하는 일을 염두에 둘 뿐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미래’를 주제로 내걸었듯이 인류와 지구의 이상적인 모습을 전망하며 토의하는 일이 큰 초점입니다.

같은 지구에 사는 ‘지구촌 공동체의식’에 연유해서 확실한 전망을 세우는 일이 급선무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그 전망을 실현하려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활동 폭을 착실하게 넓히고 연대를 굳건히 하는 도전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훌륭한 전망이라도 시민사회의 강력한 지지가 반드시 필요하며,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과제로 ‘공유’하고 일상생활 방식에 ‘반영’시키는 행동의 연대가 사회에 ‘정착’해야만 실효성이 높아진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의에서 다루어질 주요 의제가 ‘지속가능한 개발과 빈곤 퇴치라는 맥락에서 바라본 녹색경제’와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제도적 장치’인데 어떤 새로운 경제를 모색하고 국제적인 제도를 검토하더라도 앞서 말한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화룡점정을 빠뜨릴 우려가 있습니다. 따라서 회의에서는 ‘변혁의 주체’가 될 한 사람 한 사람을 어떻게 육성하고 그 행동을 지속시킬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깊이 논의하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바라는 미래’가 ‘우리가 만드는 미래’라고 자각해야 실현 가능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갖춰진 무한한 가능성을 발휘하게 하는 임파워먼트(내발적 능력 개화)의 중요성에 빛을 비추며, ‘생명존엄’을 제일로 하는 지속가능한 지구사회건설을 목표로 모두가 주역이 되어 지역과 사회에 변혁의 파동을 넓히는 ‘모든 사람의 리더십’을 확립하기 위한 방도를 논하고자 합니다.

무엇을 위한 성장인가

이 과제를 전망했을 때, 헬렌 클라크 유엔개발계획 총재가 지난해 리우+20의 의의에 입각해 주장한 다음의 내용이 제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지속가능성은 환경만의 문제도 아니고 환경이 주된 문제도 아니다. 지속가능성은 요컨대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이 오늘날 지구상에 사는 70억 사람들과 앞으로 몇 세기에 걸쳐 살아갈 많은 세대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전제하에서, 우리가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물질적 확대’에서 ‘지속가능성’으로 패러다임(사상의 틀)을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은, 경제나 환경정책 재검토는 물론이고 사회와 인간의 ‘본연의 자세’까지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는 문명론적 과제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나라가 경제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는 사실은 고려해야 하는 점이기는 합니다. 단지 어떤 나라든 ‘무엇을 위한 성장인가’ ‘그 밖에 배려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이번 회의를 계기로 음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3월에 일어난 동일본대지진이 일본뿐 아니라 세계의 많은 사람에게 그와 같은 의문을 제기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일로 아무리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고 최첨단 과학기술을 갖춘 나라라도 피해 확대를 막는 일은 쉽지 않다는 현실이 두드러지게 드러났습니다.

또 거대화한 과학기술은 목적 여하에 상관없이때로는 미증유의 피해, 다시 말해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원전사고의 경우 많은 사람이 피난을 해야만 했던 일을 비롯해 방사능오염 정도가 심한 지역의 환경을 어떻게 회복하느냐 하는 과제 그리고 긴 잠복기간을 지나 사람들의 몸에 나타날 피폭 증상이 걱정되는 등,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통감했습니다.

사람들의 소중한 생명을 빼앗고 존엄에 상처를 주고 정든 지역의 자연과 생태계를 파괴하는 사태는 재해뿐 아니라 환경파괴와 분쟁 등에 의해서도 가차 없이 일어납니다. 특히 환경파괴는 온난화가 초래하는 기후변동이 상징하듯 긴 안목으로 보면 지구상 어디에도 위험하지 않은 곳이 없고 미래의 세대에도 위험을 미칠 수 있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존엄’의 무게를 염두에 두고 사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모두 힘을 합해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야만, ‘지속가능성’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문명론적 과제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생활에서 실감하는 등신대의 주제로 바꿔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므로 ‘지속가능성’의 추구도 가능한 범위에서 경제와 환경의 균형을 잡는 일을 모색하는 정책적인 조정으로만 그치면 안 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어디까지나 그 핵심은 현재에서 미래 세대에 이르는 모든 사람의 존엄과 지구 생태계의 소중함 즉 ‘생명의 존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를 구축하려고 모두 함께 행동하는 도전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페체이 박사가 울린 경종

로마클럽 창설을 통해 리우+20의 연원인 유엔인간환경회의주1에도 영향을 준 아우렐리오 페체이 박사가 저와 엮은 대담집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자신의 힘에 매혹되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으며, 실제로
‘해야 할 일’이나 ‘하지 말아야 할 일’에 관해서도 또는 인류의 새로운 상황에 잠재해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도덕적, 윤리적 규제 조차도 배려하지 않고 계속해서 전진하고 있습니다.”

페체이 박사의 이 경종은 우리 창가학회(創價學會)의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 초대 회장이 ‘인생지리학’에서 제기한 문제의식과도 사상적 기반이 같아서 저도 깊이 공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마키구치 초대 회장은 약육강식의 논리대로 남의 희생은 안중에도 없이 ‘할 수 있는 것’을 추구하는 데 강행했던 20세기 초반의 세계정세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각자 이익이 있는 곳 다시 말해 경제적 침략의 여지가 있는 곳, 정치적 권력에 편승해 빈틈이 있는 곳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마치 대기권에서 저기압이 발생한 곳을 향해 고기압에서 공기가 이동하는 것 같은 현상이 국제세력에서 발생했다.”

그로부터 11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지금, 상황이 얼마나 바뀌었나.

다른 나라를 위협하며 힘을 과시하려는 군비 확장 경쟁이나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는 일을 외면한 채 세계적인 경제 경쟁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현대문명의 초점은 지금도 여전히 논리적인 제어장치가 잘 듣지 않는 상태로 ‘할 수 있는 일’을 끝없이 추구하는 사고(思考)의 자기장(磁氣場)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충분히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욕망이 잇달아 현실로 되는 가운데 비대해져,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욕망의 연쇄작용이 가져온 일이 바로 가장 비인도적 무기인 핵무기이고, 지나치게 경제 성장을 최우선으로 한 나머지 각지에서 급속도로 확대된 환경파괴이며, 투기 과열로 인한 머니게임이 야기한 오늘날의 금융위기가 아닐까요.

지난해 3월,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원자력발전소 사고도 재해가 원인이었다고는 하지만, 핵분열반응의 제어에 따른 발전으로 얻는 일부 에너지에 의존하는 일이 중대한 위험성을 안고 있었는데도 안전신화를 외치는 가운데 거의 묵과되었다는 점에 문제가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자타 함께 행복 목표로 하는 전망

물론 한편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을 추구하는 것이 사람들의 건강과 복지를 향상시키고, 의식주에 관한 상황을 개선하거나 교통과 통신기술의 발달로 사람과 사물의 교류가 비약적으로 확대되는 등, 사회에 여러 가지 혜택을 가져와 발전의 큰 원동력이 된 점도 사실입니다.

마키구치 초대 회장도 그러한 추구를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경쟁을 통해 사람들이 절차탁마(切磋琢磨)하고 서로 활력을 이끌어낸다는 점에 착안해 “경쟁이 치열한 곳이 진보하고 발달하는 곳이다. 만약 자연적이거나 인위적으로 자유경쟁을 방해하는 곳은 침체, 부동(不動), 퇴화가 일어나는 곳이다”라는 인식을 제시하셨습니다.

단, 그 주안점은 이기주의에 바탕을 두고 다른 희생에 개의치 않는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경쟁에서 벗어나 ‘자신과 남의 생활을 모두 보호하고 증진하기’를 바라며 ‘남을 위해서 일하고, 남을 이익케 하며 자신도 이익을 얻는다’는 인도적 경쟁을 향한 전환을 촉구했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욕망의 근원에 있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어떻해서든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지닌 에너지를 살리면서 그것을 보다 가치적인 목적으로 향하도록 바로잡아 ‘자타 함께 행복’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전망이고, 바로 경쟁의 질적 전환을 지향한 일입니다.

불법(佛法)에서는 그 인간정신의 내적 변혁의 원동력을 “번뇌(煩惱)의 장작을 태워서 보리(菩提)의 혜화(慧火)가 현전(現前)하니”(어서 710쪽)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대한 분노나 슬픔이 타인에게 상처 주고 멸시하는 파괴적인 행동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을 괴롭히는 사회의 악폐(惡弊)나 권위에 맞서 일어서는 건설적인 행동으로 승화시키는 가운데 사회에 ‘희망’과 ‘용기’의 광명을 비추는 삶의 자세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불법의 사상과도 맥락을 함께하는 마키구치 초대 회장의 전망을 현대에 적용해 보면, 군사적 경쟁의 전환에 관해서는 ‘국가의 안전 보장’만이 아니라 ‘인간의 안전보장’ 이념에 바탕을 두고 방재와 감염증 대책과 전염병 대책 같은 분야에서 어떻게 공헌할지 절차탁마를 하나의 예로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공통의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일이 모든 나라에 바람직한 ‘공통의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얼마만큼 공감을 넓힐지 경쟁하는 ‘소프트파워에 의한 발휘경쟁’이라는 차원으로 전환한다면 같은 구도가 떠오를 것입니다.

그 상징적인 예로서 강대국과 비정부기구(NGO)가 서로 촉발하며 강력한 연대를 형성하는 가운데 성립된 ‘대인지뢰 전면금지 조약’이나 ‘집속폭탄 금지조약’ 등이 있습니다. 이것은 군사 목적을 이유로 ‘할 수 있는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인도적으로 ‘해야 할 것’을 우선으로 삼도록 각국에 촉구했기 때문이고, 그 공감대가 국제사회로 넓혀졌기에 실현될 수 있었습니다.

그럼 경제적 경쟁에서 ‘남을 위해서 일하고, 남을 이익케 하며 자신도 이익을 얻는’ 방식으로, 착수하는 계기가 되는 도전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리우+20의 주요의제가 되고 있는 ‘지속가능발전과 빈곤 퇴치라는 맥락에서 바라본 녹색경제’의 확립이 틀림없이 그 열쇠를 쥐고 있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온실효과가스의 발생을 억제하는 저탄소로 자원효율을 높이는 ‘녹색경제’를 이행하는 일을 지구적 규모로 추진하기 위한 방법으로 각국의 성공체험과 기술을 축적하고 다른 나라들이 그것을 응용하도록 지원하는 국제적인 제도조성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나는 이 제도를 회의에서 합의를 거쳐 성립으로 이끄는 선구적인 실적을 쌓은 나라들이 ‘남을 위해서 일하고, 남을 이익케 하며 자신도 이익을 얻는’ 행동 그리고 인도적 경쟁의 이념을 시간축으로 연 ‘미래를 위해서 일하고, 미래를 이익케 하며 현재도 이익을 얻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절실히 바랍니다.

‘지속가능성’ 추구도 뭔가 제한되거나 억압적인 자세가 요구된다고 받아들일지도 모르지만, 그 단계에 머무르면 변화의 파동은 넓혀지지 않습니다.

자원은 한도가 있지만 인간의 가능성은 한계가 없으며 인간이 창조하는 것에서 생기는 가치도 한계가 없습니다. 그 가치의 발휘를 바람직한 의미에서 서로 경쟁하고 세계와 미래를 향해 함께 환원하는 역동적인 개념으로 자리잡아야 비로소 ‘지속가능성’의 진가가 발휘되지 않을까요.

“다른 나라들(사람들)을 위해 행동하는 속에 자국의 모습(자신의 인생)을 더 좋게 바꾸어간다.” 또 “더 좋은 미래를 지향하는 속에 현재의 상황을 더욱 좋게 바꾸어간다.” 그 반복작업 속에 ‘지속가능성’의 추구는 서로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존엄’을 중시하면서 모두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계의 구축으로 착실하게 이어진다는 점을 나는 확신합니다.

무력감 이겨내고 현실과 맞선다

여기서 요구되는 부분은 ‘같은 지구에 사는 책임감’과 ‘미래를 향한 책임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실제로는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비참한 사건과 심각하게 지구생태계를 위협하는 뉴스 등을 보고 들을 때마다 가슴 아파하고 어떤 일이든 하려고 생각해도, 잇달아 일어나는 그런 사건 앞에서 오히려 무력감을 심화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동연구한 아서 클라인만, 존 클라인만 부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시대에 만연하고 있는 의식, 우리는 복잡한 문제를 이해하거나 해결할 수 없다는 의식은 고통스러운 모습이 담긴 영상이 전 세계에 방영됨에 따라 정신적 피로와 공감의 고갈 그리고 정치적 절망을 낳았다.”

현대의 고도정보사회가 지닌 함정의 정곡을 찌른 날카로운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무력감에 자신이 매몰되지 않으려면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확실한 반응’으로써 현실을 변혁하기 위한 전진으로 느낄 수 있는 ‘발판’을 가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그 발판이 바로 ‘지역’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같은 지구에 사는 책임감’과 ‘미래를 향한 책임감’이 소중하다고 해도 일상 생활을 실감하지 않고서는 단숨에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관계와 가까운 곳에서 구축할 수 없는데 세계와 미래라는 차원에서 구축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책임감’을 의미하는 영어 ‘리스폰시빌리티(responsibility)’라는 용어의 유래를 살펴보면 ‘응답하는 힘’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자신이 인생의 닻을 내린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응답하는 힘’을 끈기 있게 단련하는 가운데 ‘같은 지구에 사는 책임감’과 ‘미래를 향한 책임감’을 배양하는 길도 열릴 것입니다.

일찍이 10년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정상회의 때 우리 SGI가 제작을 지원해 발표한 영화 ‘조용한 혁명’은 그 모델이 된 각 지역의 민중이 직접 참여한 활동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지구평의회가 제작하고 유엔환경계획과 유엔개발계획이 협력한 이 영화는 인도 니미 마을의 수자원 개혁과 슬로바키아 젠프린스카호의 오염방지 그리고 케냐의 사막화를 막기 위한 나무심기운동을 들며 사랑하는 지역과 어린이들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일어선 사람들이 도전하는 드라마를 소개한 내용입니다.

SGI는 지금까지 55개가 넘는 나라에서 상영해 ‘한 인간에게는 세계를 바꾸는 무한한 힘이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마타이 박사와 무화과나무

그래서 나는 영화에서도 소개된 케냐의 환경운동가인 왕가리 마타이 박사가 추진하는 그린벨트운동을 단서로 삼아 지역에 뿌리내린 민중운동이 ‘미래를 향한 책임감’을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어떻게 키웠는지를 부각시키고자 합니다.

지난해 애석하게도 서거한 마타이 박사를 만난 때는 2005년 2월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쌓은 공적을 기려 미국소카대학교에 박사의 이름을 딴 ‘무화과나무’ 기념식수를 제안하자, 태양처럼 주위를 품는 듯한 웃는 얼굴로 기뻐해주셨던 추억이 그립습니다.

마타이 박사에게 ‘무화과나무’는 고향에서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존엄’을 상징하는 나무이기에, 박사가 나무심기운동에 헌신하는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가족을 만나기 위해 고향에 들른 박사는 불과 몇년 사이에 집 주변의 자연이 크게 바뀐 모습을 보고 가슴 아파했습니다. 경제를 우선시하는 풍조가 강해지고, 상업용 경작지를 넓히기 위해 숲의 나무들이 벌채되면서 어렸을 적 어머니에게 신성한 존재로서 소중히 여기도록 배운 ‘무화과나무’마저도 베어져 있었습니다.

그 뒤, 주변에서 산사태가 빈번하게 일어났을 뿐 아니라, 깨끗한 식수(食水)의 수원까지 부족하게 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박사는 그 뒤에도 환경악화가 일으키는 문제로 날마다 괴로워하는 케냐의 여성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의 과제에 대한 해결책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신념으로, 자신이 생활하는 지역에서 그린벨트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해와 반응이 참여 연대 넓힌다

마타이 박사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환경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라고 긍지를 지니고 말한 이 운동을 통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참여하는 사람들의 ‘이해’와 ‘반응’을 늘 소중히 여기며 활동의 연대를 착실히 넓힌 점입니다.

박사는 그린벨트운동을 추진하면서 연 세미나에서, 현재 놓인 문제를 모든 참석자에게 잇달아 열거하게 하고 “이런 문제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참석자 대부분이 “정부의 책임”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비록 그 대답이 옳다고 해도 정부만이 그르다고 생각하면 언제까지나 상황은 개선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박사가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곳은 여러분이 사는 땅입니다.”

“여러분이 사는 곳인데도, 여러분은 소중히 여기고 있지 않습니다. 토양의 침식이 일어나도 방치하고 있는데, 여러분도 반드시 뭔가를 할 수 있습니다. 나무를 심을 수 있지 않습니까.”

또 나무를 심으면 성장이 느리다는 이유로 나무를 심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때 박사가 이렇게 타일렀다고 합니다.

“지금 당신이 벤 나무는, 당신이 심은 것이 아니라 선인들이 심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장래 이 지역에 도움이 되도록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태양과 좋은 토양 그리고 풍족하게 비가 내리면, 우리 미래의 뿌리는 묘목처럼 땅속 깊숙이 뿌리를 박아 희망의 거목으로 하늘 높이 자랄 것입니다.”

아무리 목적이 훌륭해도 이해가 되지 않으면 사람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의문을 소중히 받아들이며, 그 하나하나를 풀어줄 수 있을 때까지 배려하고 성실하게 계속 대화해야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끈질긴 대화 끝에 얻은 ‘이해’와 함께 운동의 성과가 눈에 보이는 형태로 분명히 나타났고, 참여한 한 사람 한 사람이 확실하게 ‘반응’을 느꼈기에 많은 사람을 잇달아 참여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요.

박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무심기는 간단하고 충분히 실현할 수 있기에 그렇게 길지 않은 기간 내에 눈에 보이는 확실한 성과를 얻을 수 있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나무심기로 사람들의 관심과 공헌을 계속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함께 3000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는 일로 연료비와 식료비 그리고 집회소와 어린이의 교육비와 가계비를 보충하는 수입을 제공했습니다. 동시에 이런 활동은 고용을 창출하고 토양과 하천유역을 개선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무력감과 비통함에 얽매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행동이 현실의 변혁으로 이어지는 ‘기쁨’과 ‘긍지’를 지니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이 여기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도움 받는 쪽에서 도움 주는 쪽으로 전환

둘째, 한 사람 한 사람의 ‘임파워먼트’에 중점을 두고 내재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이끌어내는 가운데 더욱 큰 사명에 눈뜨고 살아갈 것을 사람들에게 촉구한 점입니다.

그린벨트운동의 성과는 이제까지 심은 나무의 개수도 개수이지만, 참된 의의는 박사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임파워먼트에 있었습니다.

“저는 늘, 우리의 활동이 단지 나무만 심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정부, 생활 그리고 미래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계몽하는 활동입니다. 저는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욱 큰 일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강해졌습니다.”

다시 말해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 특히 농촌부의 여성들이 자신의 손으로 나무심기와 나무키우기운동을 추진하며 ‘환경을 유지하고 재생시키느냐, 아니면 파괴하느냐’ 하는 선택권을 참된 의미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운동에 참여할 때마다 펼치는 의식계발의 기회를 통해 나무심기에 몰두하고 벌채로부터 숲을 지키려고 행동함으로써 “‘민주주의와 사회적 양식(良識)을 존중하고 법률과 인권, 여성의 권리를 준수하는 사회를 만든다’는 더 큰 사명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처음에는 ‘땔나무와 위생적인 식수가 필요하다’며 박사를 방문한 여성들이 경험을 쌓고 자신감이 커지면서, 잇달아 지역의 리더가 되어 모판을 관리하고 빗물의 저장과 식량을 확보하는 공동체의 프로젝트를 모두 맡게 되었습니다.

그 여성들의 변화에서 볼 수 있는 ‘임파워먼트’에서 ‘리더십 발휘’라는 과정을 볼 때 불법의 진수인 ‘법화경(法華經)’에서 설한, ‘도움을 받는 쪽’에서 ‘다른 사람들을 괴로움에서 구하려고 행동하는 쪽’으로 깨닫는 드라마가 오버랩되며 떠올랐습니다.

괴로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힘은 자신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부에 있는 무한한 가능성에 눈떠 그 가능성을 꽃피우는 속에 자신이 바뀌고 주위 사람들도 ‘행복’과 ‘안심’의 방향으로 이끈다, 그 한 사람의 위대한 소생의 드라마가 자신의 괴로움조차도 ‘사회를 더욱 좋게 만들기 위한 양식’으로 삼는 길을 열 수 있다고 불법에서는 설합니다.

불전(佛典)에는 그렇게 할 것을 굳게 맹세한 어느 여성의 말이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앞으로 저는 기댈 곳이 없는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 포박당한 사람, 병으로 괴로워하는 사람, 이 생각 저 생각으로 고민하는 사람, 가난한 사람, 처지가 어려운 사람, 큰 재난(災難)을 만난 사람들을 본다면 그들을 구제하기 전에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그 여성은 스스로 서원(誓願)한 대로 평생 고뇌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행동했습니다.

마타이 박사도 이 서원과 같은 삶의 자세와 공명하는 신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상처 입은 지구가 회복하는 일을 도우려고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즉 법률 같은 형태로 외재적(外在的)으로 정해져 있기에 행동하는 것도, 어떤 편의나 보수만을 바라고 행동하는 것도 아닙니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나면 단번에 사라지는 듯한 결의도, 누군가의 힘을 빌려 상황의 변화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듯한 소망도 아닙니다.

서원적인 삶의 자세는 박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의 방대함을 인식함으로써 힘이라고 하기보다 에너지가 더욱 솟아오른다”고 말한 것처럼, 어떤 어려운 과제라도 그것이 자신의 사명인 이상, 용감하게 전진하려는 삶의 자세입니다.

지역을 무대로 펼친 임파워먼트로 사람들의 용기와 지혜를 용현(涌現)시키는 가운데 상황을 개선하려고 스스로 일어서는 일(리더십 발휘)을 촉구합니다. 그리고 모두 힘을 합쳐 ‘작은 전진’을 하나하나 쌓으며 우리의 ‘서원’과 ‘사명’으로서 삶의 자세를 다지는 일이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활동의 폭을 지구 규모로 확대하는 기반이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로트블랫 박사가 의탁한 마음

마지막으로 셋째, 젊은 세대에 대한 격려와 교육을 소중히 여기며 그린벨트운동을 영속적으로 하려고 힘쓴 점입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마타이 박사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나는’이 아니라 ‘우리는’이라는 표현을 늘 써왔다고 지적했을 때, 박사가 그 이유를 말한 내용이 제 가슴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혼자서는 아무 일도 이룩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팀워크입니다. 혼자서 하면 자신이 빠진 뒤에는 누구도 뒤를 이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운동을 시작하는 일은 혼자서도 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목표가 크면 클수록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긴 세월과 사람의 협력이 많이 필요합니다.

제가 이제까지 지구적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고 힘쓰는 세계의 리더와 대화하는 가운데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떠오른 것도, 어떻게 운동의 정신을 세대에서 세대에게로 계승시킬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핵무기와 전쟁의 폐절을 위해 반평생을 바친 퍼그워시회의 요세프 로트블랫 박사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동서냉전 대립의 냉엄한 시대에서 국경을 초월한 과학자 그룹의 정신적 연대를 구축하려고 동분서주했던 박사는 일흔살이 되었을 무렵(1979년) 미래를 응시하고, 젊은 과학자를 대상으로 ‘젊은 학생 퍼그워시’라는 조직을 결성했습니다.

일찍이 ‘러셀ㆍ아인슈타인 선언’주2이 발표되었을 때, 서명한 사람 중 박사가 가장 젊었습니다. 젊은 과학자들이 “나는 내가 받은 교육을 인류와 환경에 해를 가하려고 의도한 어떤 목적에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선서 아래, 운동의 진열에 잇달아 참여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만년의 박사가 크게 느낀 점은 무엇이었을까요.

마찬가지로, 스승 도다 조세이 제2대 회장이 발표한 ‘원수폭금지선언’을 가슴에 품고 젊은 날부터 핵무기 폐절을 바라는 민중의 연대를 넓히는 데 노력을 거듭해 온 저인 만큼, 최근 청년들이 ‘핵무기금지조약’의 제정을 바라는 227만명의 서명을 모아 유엔에 제출하는 등, 의욕적으로 활동에 힘쓰는 모습이 마음 든든하게 느껴집니다.

7그루에서 시작된 나무심기는 지금 125억그루로

마타이 박사도 각지의 학교에 육묘원(育苗園)을 만들고 어린이들이 나무심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활동하는 한편, 그린벨트운동을 통해 젊은 세대가 환경보호에 힘쓰는 일을 지원했습니다. 박사는 그런 젊은 세대에게 거는 기대를 미래에 대한 확신과 동일시하는 것처럼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무리 암운이 낮게 깔려도 반드시 희미하게 들어오는 희망의 빛이 있기에 이것이 바로 우리가 찾아야 하는 빛이다. 나는 그렇게 줄곧 믿었다. 우리 대에서 이루지 못한다면 다음 세대 또는 그 다음 세대에게 희망의 빛이 비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세대가 되면 틀림없이 빛이 희미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마타이 박사가 그린벨트운동의 근원인 7그루의 나무를 동료들과 함께 나이로비 교외의 카무쿤지공원에 심은 때는 35년 전 6월 5일이었습니다.

이후 나무심기운동의 연대가 케냐 각지에서 넓혀지고 아프리카 각국에도 큰 파동을 일으켜 4000만그루의 나무심기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2006년부터 유엔환경계획 등에 협력하는 형태로 박사 등이 나무심기운동주3을 호소한 결과 현재까지 전 세계 에서 125억그루가 넘는 나무심기를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박사가 서거한 뒤에도 그 수는 증가 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절대로 기적이 아닙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위기를 어떻게든 극복하고 싶다”고 일어선 박사의 강한 마음이 폭넓은 공감대를 이루면서 전 세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연대를 쌓은 성과입니다.

우리는 이런 마타이 박사의 실천에서 배우고, 모든 분야에서 지속가능한 지구사회로 가는 길을 개척하는 데 힘을 합쳐 본격적으로 도전해 갔으면 합니다.

세 가지 각도에서 바라본 제안

저는 이번에 열리는 리우+20회의에 세 가지 각도에서 구체적인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첫째, 인류가 앞으로 지향해야 하는 전망이 되고, 같은 지구에 사는 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행동규범의 기초가 되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공통 목표 제정에 착수한다.

둘째, 유엔의 환경분야와 개발분야를 통합한 새로운 국제기구를 설립해, ‘시민사회와의 협동’을 중심으로 지속가능한 지구사회를 향한 대처방안을 강하게 추진할 수 있는 체제 확립을 지향한다.

셋째,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역을 발판으로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주체자가 되도록 ‘임파워먼트’에서 ‘리더십 발휘’까지 일관된 의식계발을 추진하기 위한 교육제도를 제정하도록 유엔총회에 권고한다.

밀레니엄 개발목표에 이은 도전

첫째 제안으로서 부득이하게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해야 하는 사람들의 곤궁한 상태를 개선하는 유엔 밀레니엄 개발목표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지속가능한 지구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상호 간에 이익이 되는 변화를 일으키는 일을 지향한 새로운 목표를 제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밀레니엄 개발목표는 거시적인 경제지표 개선에 중점을 두는 종래의 국제적인 대응과 달리 사람들의 곤궁한 상태를 개선하는 데에 초점을 두면서 ‘2015년까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의 비율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형태로 명확한 기한과 수치 목표를 내걸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습니다.

현재로서는 극도의 빈곤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2015년까지 15% 미만으로 낮아져 목표 달성이 충분히 예상되는 한편, 최빈국 사이에서 초등교육 보급이 추진되어온 것을 비롯해 더 안전한 물을 18억이나 되는 사람들이 새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단지 그러한 개선도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성별과 연령 그리고 장애, 민족 등을 이유로 사회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충분히 미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보다 더욱 세밀하게 긴급히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속에서 2015년 이후에도 어떤 형태로든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주도로 설치된 ‘지구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고위급 패널’ 보고서도 새롭게 ‘지속가능한 개발목표’를 세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보고서에는 목표의 방향성을 검토하는 데 “개발도상국에 그치지 않고 모든 나라의 도전을 망라한다” “기후변동과 다양한 생물 보전 그리고 재해에 따른 위험 줄이기와 복구를 비롯해 밀레니엄 개발목표의 대상 밖이었던 주요과제를 망라한다” “각국 정부와 함께 지역공동체, 시민사회, 민간분야를 포함한 지속가능한 개발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을 활동에 넣는다”는 등의 유의점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저는 올해 1월에 발표한 ‘SGI의 날’ 기념제언에서 리우+20 합의사항에 새로운 목표를 검토할 작업반을 편성해 토의를 시작하는 일을 포함시키도록 제안했습니다. ‘지속가능한 개발목표’의 내용을 검토하는 데 앞서 말한 유의점에 덧붙이는 형태로 다음의 두 가지 이념을 반영하도록 주장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더 많은 나라와 사람이 인도적인 방식에 바탕을 둔 경쟁으로 질적인 전환을 할 수 있도록 지구의 이익과 인류의 이익에 뿌리내린 전망을 주된 목표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앞서 말한 ‘인간의 안전보장’과 ‘소프트파워’ 또 ‘녹색경제’ 등이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유엔헌장은 “세계의 인적 및 경제적 자원을 최소한으로 군비로 전용(轉用)함으로써 국제평화와 안전의 확립 및 유지를 촉진한다”(제26조)는 목적을 내걸고 있습니다.

이 목적은 모든 나라의 과제인 동시에, 그 과제가 발전을 이룬다면 모든 나라는 물론이고 지구상의 모든 사람 그리고 미래 세대에게도 ‘최상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

또 올해는 유엔이 정한 ‘모두를 위한 지속가능한 에너지의 해’인데, 이 분야에서 실적을 올린 나라들이 좋은 의미에서 경쟁하듯이 공헌한다면 빈곤에 괴로워하는 나라들도 환경부하가 늘지 않고 사람들의 생존과 존엄 그리고 생활을 지탱하는 사회기반을 정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대로 미래의 환경부하 경감으로도 반드시 이어질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구조는 리듀스(Reduce, 폐기물의 발생억제), 리유즈(Reuse, 재사용), 리사이클(Recycle, 재활용)의 ‘3R’을 통해 순환형 사회로 전환하려는 활동에도 들어맞습니다

새로운 목표 제정을 계기로 “남을 위해서 일하고, 남을 이익케 하며 자신도 이익을 얻는’ 행동이나 ‘미래를 위해서 일하고, 미래를 이익케 하며 현재도 이익을 얻는’ 행동의 물결을 일으키게 하자는 항목을 내용에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주변에서 실천할 수 있는 항목을

이 ‘인도적 경쟁’의 요소와 함께 하나 더 주장하고 싶은 점은 ‘지역’을 기반으로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통해 이익이 되는 변화를 낳고, 그 공헌이 지속가능한 미래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생활에 밀접한 목표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느 의미에서 밀레니엄 개발목표는 빈곤 등의 괴로움을 어떻게 줄이고 생명과 존엄을 위협하는 위험을 어떻게 제거하는가 하는 ‘사회와 사람들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가능한 없애는 일’에 중점을 두는 동시에 초등교육 보급이나 교육면에서 남녀차별을 해소하는 일처럼 ‘주로 국가의 역할이 요구되는 분야’가 중심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는 한편, ‘누구나 자신의 주변에서 실천할 수 있고 이익이 되는 연쇄를 사회에 넓힐 수 있는 목표’를 포함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가령 녹화(綠化)나 자연보호를 지역 전체의 활동으로 정착시키거나, 주민이 주도해서 재해를 막고 줄이기 위해 마을을 정비하는 노력이나 주변 지역과 연계해 지산지소주4의 비율을 높이거나, 쓰레기 줄이기와 폐기물 재활용을 모두 함께 협력해 습관화하거나, 또 각각의 풍토에 맞는 재생가능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환경부하를 줄이는 일과 같은, ‘지역을 무대로 하는’ 주체적인 노력입니다.

그래서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사회의 역할이 중요하고 특히 도시가 해야 할 역할이 큰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세계 도시 면적을 다 합해도 지구 표면의 2퍼센트에 지나지 않지만, 그 도시가 지구의 자원소비를 75퍼센트나 차지하고 대기와 수질의 오염물질과 폐기물을 75퍼센트나 배출하고 있기에 세계 도시가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지구의 운명을 좌우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새로운 목표에 특히 ‘도시’에 관한 항목을 설정해 몇가지 지표를 내걸고, 자신이 사는 도시가 지난해에 비해 얼마나 상황을 개선시켰는지를 서로 확인하는 흐름을 정착시키고 성공사례의 비결을 축적해 공유하는 제도를 설치하면 어떨지 제안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삶에 의거한 목표를 낳으려면 종래의 정부 간 토의를 중심으로 하는 접근방식만으로는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따라서 리우+20에서는 시민사회 대표가 토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충분히 보장한 위에, 더 많은 사람이 “이것이 우리가 이루어야 할 공통 목표다”라고 이해하고 그를 위해 협력하고 싶어할 만한 새로운 목표가 이번 회의를 계기로 세워지기를 강하게 바랍니다

세계 청년의 힘 결집한 ‘미래세대위원회’ 창설 사람들 괴로움을 해소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둘째 제안은 리우+20의 주요 의제 중 하나인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제도적 장치’에 관한 것입니다.

이 의제가 채택된 배경에는, 많은 나라가 ‘지속가능한 개발’에 관한 유엔의 대처가 늦다고 걱정해 모든 관계기구의 활동 중복이나 단편화, 자금부족과 조정부족 등의 문제를 어떤 형태로든 극복해야 한다고 크게 인식했다는 데 있습니다.

현상의 과제를 해소하는 일이 급선무이지만, 저는 개혁의 안목이 그 점에만 국한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번의 개혁 논의를 통해 21세기의 세계 상황에 바로 응한 새로운 유엔의 운영방법을 확립하기 위해 그 선구적인 모델이 되는 국제기구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는 ①유엔환경계획이나 유엔개발계획 등의 관련 분야 통합 ②희망하는 나라는 모두 토의에 참가 ③시민사회와 협동 ④청년층의 적극적인 참여, 이 네 가지를 중심으로 한 대담한 질적 전환을 동반하는 개혁을 이루어 ‘지속가능한 지구기구’(가칭)를 설립할 것을 제안합니다.

첫번째 포인트에 관해서는 유엔이 지난해 우선과제로 ‘포괄적이고 지속가능한 개발’을 내걸었듯이, 이 문제를 생각하는 데 가장 중시해야 할 점은 포괄적인, 즉 모든 사람이 참여해 그 혜택을 받도록 추구하는 점입니다.

특히 혜택의 확보라는 면에서 말하면, 지구적인 과제를 ‘위협의 양상’으로 구분해 유엔 조직이 제각기 대책을 강구하는 접근법으로는 개별적인 개선은 도모되었다 해도, 문제가 복잡하고 상호 간의 작용으로 위기의 연쇄작용을 일으키는 현대에서는 사람들의 괴로움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바라는가’를 출발점으로 하여 존엄성이 있는 생활과 인생을 영위하기 위한 기반 만들기를 종합적으로 추진하는 체제를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혜택의 확보라는 면에서 말하면, 지구적인 과제를 ‘위협의 양상’으로 구분해 유엔 조직이 제각기 대책을 강구하는 접근법으로는 개별적인 개선은 도모되었다 해도, 문제가 복잡하고 상호 간의 작용으로 위기의 연쇄작용을 일으키는 현대에서는 사람들의 괴로움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바라는가’를 출발점으로 하여 존엄성이 있는 생활과 인생을 영위하기 위한 기반 만들기를 종합적으로 추진하는 체제를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포인트는 희망하는 모든 나라가 의사결정 과정에 참가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유엔환경계획이나 유엔개발계획에서는 이사회 회원국이어야 최종적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주제의 중요성과 대상 범위가 넓다는 점을 감안할 때 토의에 참가를 희망하는 모든 나라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요건이지 않겠습니까.

지금 국제사회에 요구하는 ‘행동의 공유’는 그런 제도적 기반이 보장되어야 비로소 더욱 견고해지고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사회와의 협동을 제도에 포함

이 두 가지 포인트에 덧붙여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개혁은 ‘시민사회와 협동’을 제도적으로 편성하여, 지구의 미래를 위해 행동하는 ‘모든 사람의 리더십’의 결집축이 되는 유엔기구를 만드는 일입니다.

이 일은 40년 전,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인간환경회의’를 기점으로 해서 한걸음 한걸음 쌓아 온 도전의 연장선상에서 명확한 모습으로 이어주는 제도개혁입니다.

이 회의에서는 정부 간 회의에 병행해 시민사회의 대표들이 주도하는 ‘NGO포럼’을 개최하면서 정부대표단에게 NGO멤버를 가입시키자고 주장했습니다.

참으로 그것은 주권국가의 집합체로서 성격이 강한 유엔의 활동에 유엔헌장 전문(前文)의 주어인 ‘우리 민중’ 즉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데 있어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회의는 197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쳐 유엔이 인구와 식량이라는 지구적 문제군을 주제로 연 일련의 국제회의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짓고 ‘시민사회의 참여’라는 기반을 만든 원점이 되었습니다. 그 전통 위에 획기적으로 발전한 것이 1992년 지구정상회의였습니다.

유엔 회의에서 처음 정상회의 방식을 채용함과 동시에 유엔과 협의자격이 없는 NGO에도 일정한 조건 아래 참가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과학계나 산업계를 비롯해 다양한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결과 스톡홀름회의에서는 불과 두 나라의 정상이 참석했지만 94개국으로 확대되는 한편, 참가한 NGO도 네배 이상 증가하고, 개발도상국에서 풀뿌리 활동을 펼치고 있는 NGO가 절반 이상이 되는 등 ‘시민사회의 참여’는 양적으로 질적으로 크게 발전했습니다. 또 지구정상회의를 계기로 많은 나라에서 정부대표단에 NGO 멤버를 가입시키는 흐름이 만들어졌습니다.

제가 현재 대담하고 있는 독일 환경학자인 에른스트 폰 바이츠제커 박사는 지구정상회의가 개최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을 포함해 세계의 많은 사람과 관련된 ‘거대한 프로젝트’로 됨으로써 얻어진 성과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만약 이러한 NGO의 추진력과 일반시민의 압력이 없었다면 모든 일은 몇몇 나라의 정부에 의해 상투적인 외교로 쉽게 정리되고, 그 결과 중요문제에 관한 ‘북’과 ‘남’의 깊은 골은 메울 수 없게 되어 회의는 실패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처럼 부지런히 쌓아온 성과를 기반으로 이번 리우+20을 ‘유엔과 시민사회의 협동’을 새로운 기구의 제도적인 핵심으로 편성할 기회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요.

구체적으로는 국제노동기구에서 채용해 온 ‘삼자구성’(각국 대표를 정부, 노동자, 고용자로 구성)의 원칙을 따르는 형태로, 다양한 행동주체가 참여하는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관여를 보장하는 ‘사자구성’(각국 대표를 정부, NGO, 기업, 학술연구기관으로 구성)의 원칙 도입을 검토할 것을 주장합니다. 유엔에는 현재 기업 등 비즈니스계에 관계하는 유엔글로벌콤팩트주5의 구성과 대학 등 고등교육기관과 관련된 유엔아카데믹임팩트주6의 구성이 유엔의 파트너로서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두 각자의 처지에서 ‘해야 할 일’을 추구하는 활동이며, 제가 앞서 새로운 목표의 제정과 관련해 제기했듯이 지역과 사회에서 이익이 되는 가치를 낳고 세계에 이익이 되는 변화를 넓히는 일을 지향한 자발적인 대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우+20에 제출한 최초로 취합된 의견문서에서도 “의사결정에 광범위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일은 지속가능한 개발의 달성을 위한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라고 강조했지만, 먼저 이 분야에서 ‘유엔과 시민사회의 협동’을 구체적인 제도로 확립한 다음에 그 실적을 근거로 다른 지구적 문제군에 관해서도 같은 제도의 도입을 추진하는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창합니다.

미래 세대까지 과제 방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네번째로 제기하고 싶은 포인트는 다음 세대를 짊어질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기구를 설치하는 일입니다.

지난해 가을, 유엔환경계획이 연 국제청년회의에 118개국에서 청년 1400명이 모여 반둥선언을 채택했습니다. 그 선언은 ‘지구의 미래-우리의 미래-는 위기적 상황에 있다. 우리는 다음 세대까지 즉 리우+40까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기다릴 수 없다.’ 다시 말해 자신들의 손으로 시대를 변혁하는 행동을 일으키겠다는 결의를 담고 있습니다.

이 선언이 상징하듯 청년의 정열과 힘을 쏟아야 인류의 미래를 ‘희망’의 방향으로 크게 돌리는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사물을 움직이는 급소)가 되는 곳을 시급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서 저는 세계 청년 대표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안을 검토하고, 해마다 새로운 기구의 활동방침에 관해 자문하는 ‘미래세대위원회’를 발족하기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젊은 세대가 이 위원회를 축으로 세계 각지에서 활동 네트워크의 강화를 도모해야 하지 않을까요.

청년들은 변혁을 요구하는 의식이 높을 뿐 아니라 자신의 행동으로 사회에 강력한 변혁의 파동을 일으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청년들의 힘을 유엔 활동의 큰 원천으로 삼을 수 있는가. 그 성패에 인류의 미래가 전부 달려 있다고 저는 소리 높여 주장합니다.

이상 네가지 포인트에 바탕을 둔 개혁안을 제시했는데, 미래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면 발본적 개혁도 주저하지 않는다는 각오로 각국의 대표가 토의에 임하고 후세에 빛날 합의에 도달하기를 강하게 바랍니다.

리더십의 발휘를 촉진하는 의식계발

리우+20에 셋째로 제안하고 싶은 점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역을 발판으로 삼아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존엄’을 소중히 여기는 담당자로서 행동할 수 있도록 ‘임파워먼트’에서 ‘리더십 발휘’까지 일관되게 의식을 계발하는 교육적인 제도를 제정하는 일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유엔총회에서 현재의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교육의 10개년’(ESD의 10개년)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형태로 2015년부터 ‘지속가능한 지구사회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의 시작을 촉구하도록 권고하기를 주장합니다.

돌이켜 보면 10년 전, 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정상회의에 보낸 ‘ESD의 10개년’ 제정을 제창하는 속에서 ‘현상을 알고 배운다’ ‘생활 자세를 다시 점검한다’ ‘행동에 착수하기 위한 임파워먼트’라는 3단계를 염두에 둔 종합적인 의식계발을 추진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ESD의 10개년’이 2005년에 시작된 이후, 학교교육 현장이나 NGO 등이 추진한 사회교육 현장에서도 ‘현상을 알고 배운다’와 ‘생활 자세를 다시 점검한다’는 면에서는 다양한 연구가 있었고, 의식계발 방법을 개선하는 등 매우 바람직하게 추진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임파워먼트’로 더 나아가 ‘리더십 발휘’로 이어지는 흐름을 만들지 않으면 현실을 변혁하는 힘을 크게 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ESD의 10개년’을 잇는 대책으로서는 특히 이 부분의 과정을 중시하고, 평생 동안 ‘변혁의 주체자’가 되어 ‘주위에 희망의 파동을 넓히는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얼마나 육성하느냐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SGI가 지구헌장위원회와 공동으로 제작해 2002년 유엔환경개발정상회의에서 전시한 이래, 27개국에서 개최한 ‘변혁의 종자-지구헌장과 인간의 가능성전(展)’과 그 내용을 개정해 2010년부터 열고 있는 ‘희망의 종자-지속가능성의 비전과 변혁을 위한 스텝전’에서 가장 신경을 썼던 것도 의식계발로 끝나지 않고 ‘임파워먼트’의 촉매가 되어 ‘리더십 발휘’를 촉구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는 점이었습니다.

100년 전 향토과를 제창한 마키구치 회장

물론 그것은 쉽지 않은 도전입니다. 그러나 계속 도전할 수 있는 열쇠는 앞서 언급한 마타이 박사의 실천에서 볼 수 있듯이 ‘지역’을 발판으로 한 교육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박사는 이런 함축된 뜻이 많이 담긴 말을 남겼습니다.

“교육에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사람을 토지에서 억지로 떼어놓는 것이 아니라 토지에 대해 더 많은 경의를 품도록 가르쳐야 한다. 왜냐하면 교육을 받은 사람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신들이 사는 토지에 뿌리를 내린 교육이 중요하다고 100년 전에 주장한 분이 인간교육의 실천과 탐구에 평생을 바친 마키구치 초대 회장이었습니다.

“사람은 각자의 땅에서 성장하고, 그 땅은 그곳에 사는 사람에 의해 넓혀진다”는 사상을 배경으로, 모든 학과의 중심축 다시 말해 핵심 교육 과정에 아이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지역의 풍토와 생업을 ‘살아 있는 교재’로 배우는 ‘향토과’를 설치해야 한다고 제창했습니다.

그것은 산과 강이 초래하는 지리적 영향이나 숲과 바다 생물의 생태적 관계를 개론적으로 배우고, 일반적인 자연에 대한 지식을 넓힐 수 있는 ‘박물과 등의 재료처럼 자유롭게 하나하나 운반할 수 있는 독립적인 것’을 습득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향토에서 자연계와 인간계의 복잡다단한 세력과 관계에 영향을 받고 우리가 성장발육한 사실을 분명히 깨달은 것처럼, 주위의 자연적이고 인위적인 삼라만상(森羅萬象)을 관찰하고, 그 하나하나의 사물과 상호 간의 미묘한 관계를 인식”함으로써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토지와 인간의 유대를 날마다 생활에서 실감하고 배웁니다. 또 자기의 존재 기반을 이루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으로써 향토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기르는 속에, 유형무형의 은혜에 대한 마음을 자신의 행동으로 환원하는 삶의 자세를 촉구하는 일을 지향합니다.

마키구치 초대 회장은 일찍이 ‘인생지리학’에서 “자애, 호의, 우정, 친절, 진지함, 소박함 등 고상한 심정의 함양은 고향을 떠나서 쉽게 얻을 수 없다”고 지적하는 한편, “인간이 훗날 큰 사회에 나가서 필요로 하는 지덕(智德)이라는 요지는 실제로 이 작은 세계에 망라했노라. 만일 능히 주위의 사물을 세밀하게 관찰하면 훗날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원리는 향토에서 확립된다”고 강조하고, 사회와 세계를 움직이는 여러 원리가 주위의 모습을 통해 널리 전개되는 집약적인 곳으로서 향토를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제창한 향토과는 향토와 자신의 관계를 통해 배양한 ‘공생(共生)의 생명감각’을 기초로, 좋은 향토민으로서 살아갈 뿐 아니라 그 연장선상에서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그리고 인류를 위해 널리 공헌하는 삶의 자세의 싹을 기르는 일까지 염두에 둔 교육이었습니다.

마키구치 초대 회장은 향토를 태어난 고향이라는 개념으로 한정하지 않고, 자신이 생활하고 걷고 여러 사건을 직접 보고 들으며 그 하나하나에 감동하는 장소 이를테면 지금 현재 생활의 기반이 되는 ‘지역’의 의미로서 폭넓게 인식했습니다.

‘세계에 생명을 내걸고, 세계를 내 집으로 삼아 우리의 활동구역이 만국이라는 점을 인식한다’는 향토민으로서의 자각이 세계시민 의식의 토대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역’ 무대로 평생학습 추진

저는 이런 마키구치 초대 회장의 통찰을 근거로 ‘ESD의 10개년’에서 새로운 구조로 이어지는 활동 중, ‘지역’을 발판으로 삼은 교육을 추진하기 위해 앞으로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세 가지 관점을 제기하겠습니다.

첫째, 지역의 풍토와 역사를 지식으로서 배울 뿐 아니라, 그곳에서 자란 향토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계승하기 위한 교육.

둘째, 지역 사람들의 생산과 경제활동을 포함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가져다주는 은혜를 가슴에 새기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날마다 행동으로 환원하는 일을 촉구하는 교육.

셋째, 앞으로 태어날 세대를 위해 무엇을 지키고, 어떤 사회를 구축하면 좋을지 지역의 과제로서 함께 생각하고 자기 삶의 기반을 만들기 위한 교육.

이 세 가지를 학교교육의 차원에서 진행할 뿐 아니라, 모든 세대와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포함해 ‘지역을 무대로 함께 배우는 기회’를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 일이 그대로 지역 전체를 끌어들이는 형태로 다양한 사람의 마음을 서로 공유하는 자리가 되고, 세대에서 세대로 마음을 이어주는 ‘평생학습’의 자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린이들이 주역이 되어 지역의 자연환경을 지키고 지속가능한 지역만들기를 추진하는 활동을 정기적으로 펼치는 속에서, 어른의 시선으로는 지나치기 쉬운 과제와 문제점을 밝혀내고 솔직하게 지적하고 개선을 제안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일도 유익하지 않을까요.

마타이 박사가 어린 시절부터 고향의 상징으로서 소중히 여겨온 무화과나무가 베어진 일을 계기로 지역에 당면한 위기를 날카롭게 느낀 것처럼, 여러가지 위협이 최악의 상황에 이르기 전에 ‘작은 변화의 조짐’을 알아차릴 수 있으며 그 진행을 제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협력해 행동할 수 있는 제일선이 ‘지역’입니다.

세계적인 위기도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각지에서 일어난 문제가 손해가 되는 연쇄작용을 일으키고 더욱 심각해지는 속에서, 어느 사이에 감당할 수 없는 맹위로 변한 측면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적인 위기를 방치해 두면 새로운 문제와 위협이 지역에 닥쳐올 우려도 충분히 있습니다.

그렇다면 작은 변화와 문제의 조짐이 나타나기 쉬운 지역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의미를 민감하게 느끼고 마음의 고통을 결의로 바꿔, 할 수 있는 일부터 행동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지역의 ‘바람막이숲’으로서 역할을 하고 또 지역끼리 횡적 연대를 넓히고 세계적인 위협의 확대에 제동을 걸어 지속가능한 지구사회로 가는 길을 여는 지역만들기를 하나하나 견실하게 추진해야 합니다.

미래 열기 위한 인류의 유례 없는 세습재산

이상, 리우+20를 계기로 제안을 했는데, ‘공통 목표 제정’과 ‘제도개혁’에 덧붙여 ‘교육제도 추진’을 한데 모은 이유는 평생을 ‘변혁의 주체자’로서 ‘주위에 희망의 파동을 넓히는 존재’가 되는 사람들을 육성하는 일이 바로 지속가능한 지구사회를 구축하는 도전의 생명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인류와 지구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회의를 눈앞에 두고, 제 가슴에 다시 한 번 떠오른 것은 로마클럽의 창립자 페체이 박사가 한 말이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지금까지 잠든 채로 방치되어온, 그러나 이렇게 악화되는 인류의 상태를 시정하기 위해 발휘하고 활용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이 본연적으로 갖추어져 있습니다.” “인류의 잠재능력은 유사시에 필요한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서 국면(局面)의 역전(逆轉)을 도울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이 능력을 크게 낭비하고 오용하고 있으나, 가장 유능하고 행복한 사람들부터 가장 가난한 밑바닥의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천성적으로 본디 갖춘 활기차고 풍부한 자질과 지성이 인류의 유례 없는 세습재산입니다.”

박사가 주목한 점은 모든 사람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인류의 유례 없는 세습재산’을 지속가능한 지구사회의 건설이라는 미증유의 도전을 위해 살리는 최대의 원동력이 교육이라는 점입니다.

교육은 어떤 장소에서도, 어떤 모임에서도 실천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주체적으로 관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사회에 착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세대에서 세대로 계승될 때마다 빛을 더합니다.

우리 SGI가 지구적인 문제들의 해결을 목표로 하는데도 ‘민중의,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임파워먼트’를 운동의 근간으로 삼는 이유는 이 점에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함께 생각하기 위해 대화의 포럼으로서 개최한 전시회의 제목을 ‘희망의 종자’와 ‘변혁의 종자’라고 이름 붙인 이유도 불전에 “종자라고 하는 것은 하나이지만 심으면 많아지고”(어서 971쪽)라고 씌어 있는 것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에 종자를 심는 일이 시대 변혁의 곧은길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 많은 나라에서 환경을 보전하려고 활동할 때도 교육적 관점을 중시했습니다. 올해로 개설 20주년을 맞는 브라질SGI의 ‘아마존자연환경보호센터’에서도 열대우림 재생프로젝트에 대처하는 한편, 주민이 지속가능한 사회만들기를 주도해 추진하는 일을 교육의 힘으로 후원해 왔습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서 저와 깊은 우정을 쌓은 한 사람으로 브라질을 대표하는 시인 티아고 데 메로 씨가 있습니다.

리우+20 개막에 맞춰 제언을 마무리하면서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의 귀중한 자연을 지키기 위해 계속 투쟁한 메로 씨의 시로 끝맺고자 합니다. 그 시는 1997년 4월, 메로 씨와 다시 만났을 때 제게 들려준 즉흥시입니다.

“나는 사랑을 무기로서 노래를 부르며 일한다. 내일의 건설을 위해.사랑은 모든 것을 준다. 나는 희망을 함께 나누고 새로운 생명의 빛을 심는다.때로는 불길이 피어오르는 안데스의 산봉우리에서, 우애(友愛) 넘치는 내 마음의 외침이 갇히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 불길을 이겨내고 지금도 계속 노래한다.

새로운 길 따위는 없다. 있는 것은 그저 새로운 발걸음뿐이다.
불우한 사람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삼고, 밥을 먹지 못한 채 잠자는 아이들의 악몽에 동고하며 나는 배웠다. 이 지구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은 내 생명이 다하기 전에 바꿔야 할 것을 바꾸기 위해서 행동하는 일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답게, 자신의 처지에서”

어구해설

주1. 유엔인간환경회의
1972년 6월 5일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회의를 말한다. 이 회의는 ‘하나뿐인 지구’를 모토로 열렸는데, 처음으로 세계적인 차원에서 환경문제를 종합적으로 토의하는 장이 되었으며 인간환경선언과 국제환경협력에 관한 행동계획 등을 채택했다. 그 해에 채택된 합의를 실시하려고 ‘유엔환경계획’을 설립하는 한편, 회의가 열린 6월 5일을 ‘세계환경의 날’로 지정했다.
주2. 러셀·아이슈타인 선언
철학자 러셀과 물리학자 아이슈타인을 중심으로 유카와 히데키 등 과학자 11명이 1955년 7월에 서명한 선언을 말한다. 핵무기에 따른 인류의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인간성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사고로 전환하자고 주장한다. 그 정신에 입각해 1957년에 결성된 기구가 퍼그워시회의로, 과학자의 양심을 외치며 핵무기와 전쟁이 없는 세계를 추구해온 운동은 높이 평가받고 있다.
주3. 나무심기운동
2006년 11월, 기후변화협약의 제12회 체약국회의를 계기로 유엔환경계획 등이 시작한 운동을 말한다. 당초 목표인 10억그루 나무심기는 다섯살에서 여든살까지 폭넓은 연령층이 참여하는 가운데 시작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목표를 달성했다. 그 뒤에도 운동은 이어져 참여 연대가 193개국으로 확대되면서 125억그루 나무심기가 실현되었다.
주4. 지산지소(地産地消)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그 지역에서 소비하는 운동을 말한다. 식료품의 산지와 소비처를 이어주는 수송거리가 단축되면 그만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들기 때문에 로컬푸드의 비율을 높이는 중요성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음식의 안전과 안심을 지향하는 의식이 높아지면서 소비자와 생산자의 상호 이해를 깊게 하는 활동으로서도 기대되고 있다.
주5. 유엔글로벌콤팩트(유엔지구협약)
코피 아난 유엔 前사무총장이 제창해 2000년 7월에 발족한 국제적인 이니셔티브를 말한다. 인권, 노동기준, 환경, 반부패라는 네가지 분야에서 10대 원칙을 결정하고, 이 10대 원칙에 찬동한 기업과 단체는 자발적으로 활동을 추진하며 상호 지식 공유와 배움의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지금까지 140개국 1만명 이상에 이르는 기업과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주6. 유엔아카데믹임팩트(유엔산하고등교육기구)
유엔과 교육기관을 잇는 것을 목적으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제창해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는 세계적인 기구다. 이 기구에 찬동한 세계의 고등교육기관(주로 대학교)에는 인권을 비롯한 문맹퇴치, 지속가능성, 분쟁해결의 분야에서 정한 10원칙 중, 해마다 적어도 원칙 한가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활동을 추진해야 한다. ‘지적(知的) 분야의 사회적 책임’을 확립하기 위한 시도로서 주목 받고 있다.

참고문헌

  • ‘인간개발 보고서 2011’, 요코타 요조, 아키즈키 히로코, 니노미야 마사토 감수, 한큐커뮤니케이션즈
  • ‘21세기에의 경종’, ‘이케다 다이사쿠 전집 제4권’ 수록
  •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전집 제2권’, 제삼문명사, 개정판 현대표기
  • ‘타인의 괴로움에 대한 책임’, 사카가와 마사코 옮김, 미스즈쇼보
  • ‘피스 우먼’ 로이터 안겔리카, 루우퍼 안네 저, 마쓰노 야스코·가미우라 린토 옮김, 에이지출판
  • ‘못타이나이 운동으로 지구는 푸르게’ 왕가리 마타이 저, 후쿠오카 신이치 옮김, 기라쿠사
  • ‘UNBOWED 지지 않는다’, 왕가리 마타이 저, 고이케 유리코 옮김, 쇼가쿠칸
  • ‘승만경’ ‘현대어역 대승불전3’ 나카무라 하지메 저, 도쿄서적
  • ‘지구환경정책’, 미야모토 겐이치·구스다 고스케·사사키 겐 감수 옮김, 유히카쿠
  •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전집 제3권’, 제삼문명사, 개정판 현대표기
  •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전집 제1권’, 제삼문명사, 개정판 현대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