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은 평화운동가, 불교철학자, 교육자, 작가 그리고 시인으로 대화를 통한 평화 증진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 Words of Wisdom 희망찬 내일을 위한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의 명언

  • Dialogue with Nature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의 사진 작품, 자연과의 대화

  • The Life Story of Daisaku Ikeda 이케다 다이사쿠 생애

저자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은 100여권(공동집필포함)의 저서를 집필했다.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문학적 성취인데, 보다 넓은 차원에서 보면 그의 저서는 ‘철학자’ 활발한 ‘평화운동가’ 그리고 ‘교육자’로서의 활동과 성취를 그대로 반영한다. 국제창가학회 (Soka Gakkai International) 회장으로서 막중한 책임을 다하며, 그는 철학자, 평화운동가, 교육자로서의 역할까지 완수해왔다. SGI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가장 다채로운 재가 불교단체 중 하나다.

작가 이케다 다이사쿠. 그를 가장 주목해야 할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다. 반세기 이상 그는 다른 책임과 역할을 병행하며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가 몇 년 동안 쓴 시(詩)만해도 천여 편에 달하는데 그의 작품 범위를 살펴보면 대담집, 수필, 평화제언, 대학강연, 시집, 동화와 기고문에 이른다. 그런데 대부분의 저서는 기차, 비행기 혹은 자동차를 타는 이동 중에, 혹은 회합이나 식사 중 겨를이 있을 때마다 저술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은퇴를 선택한 연령대인 지금까지도, 그는 이 힘들고 바쁜 생활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제게 글쓰기는 생명 그 자체만큼 소중합니다.
한줄기 희망의 빛을, 용기의 불꽃을 가능한 많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간절한 바람입니다.”

1965년, 이케다 선생님은 평생의 걸작이라 여겨지는 ‘인간혁명’ 1권을 출간한다. (전 12권) 일본 재가 불교단체 창가학회의 설립과 발전의 역사를 소설로 엮어낸 인간혁명에는 이케다 선생님의 핵심 철학이 다음과 같이 나와있다.

“한 사람의 위대한 인간혁명은 이윽고 한 나라의 숙명도 전환하고 나아가 전 인류의 숙명전환도 가능케한다.”

‘한 사람의 깊은 내면의 변혁은 일상의 냉혹한 현실을 ‘창조적 방향’ ‘건설적 방향’으로 전환시킬 뿐 아니라 나아가 타인을 위해 공헌하는 삶을 살수 있게 한다.’라는 불법을 근간으로 한 이케다 선생님의 신념이 그의 모든 저서를 관통하는 주제다. ‘공통된 인류애’와 ‘평화를 향한 갈망’ 이 변함없는 신념은 현대 세계가 직면한 긴박한 문제에 관한 대화로 이어졌다. 이케다 선생님은 라이너스 폴링, 미하일 고르바초프, 바진, 헤이즐 핸더슨을 포함 다양한 분야의 사상가, 사회운동가, 지도자들과 대담을 진행해왔다, “대화 그 자체가 바로 평화와 인류의 승리를 상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적, 민족, 종교, 사상, 세대, 성별, 사회적 지위 등의 모든 차이를 초월하여, 한 인간으로서 저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마음과 마음의 대화를 지속해왔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방대한 대화의 첫 포문은 작고한 영국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 박사와의 만남이었고, 대화내용은 1979년 ‘Choose Life(한국어판: 21세기를 여는 대화)’로 출판되었다. 두 사람은 이 책 속에서 시대를 가로지는 중대한 문제인 ‘생명’에 관해 탐구할 뿐 아니라 또한 현대 세계가 안고 있는 긴박한 문제까지 논하고 있다. 현재 29개 언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또한 출판된 대담집 중에는 창가학회 교학부원들과 함께 불법경전의 핵심사상을 고찰하고, 불법사상을 어떻게 현대사회에 적용할 것인가에 관해 토론한 ‘법화경의 지혜 (전 6권)’가 있다. ‘법화경의 지혜’는 대승불교에 관한 이케다 선생님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또 다른 이케다 선생님의 문학적 관심분야는 20대 초 아동 잡지 편집장으로 글쓰기 솜씨를 연마한 장르, 바로 동화다.
젊은 이케다 선생님을 고용한 사람은 바로 그의 평생의 스승이 될 도다 조세이 창가학회 제2대 회장이었다. 이케다 선생님의 동화는 저명한 영국의 그림책 작가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와 같은 뛰어난 예술가들의 손을 거쳐 해외로 소개되었다. 몇몇 작품은 만화영화로 제작되었는데, 어린이들에게 주는 긍정적 영향으로 호평받았다. 12편의 만화영화 시리즈는 2005년 필리핀에 본사를 둔 ‘동남아 어린이 방송재단’의 아낙(Anak)방송상을 받았다.

이케다 선생님은 또한 시인으로도 인정받았다. 1981년 세계예술문화아카데미로부터 ‘계관시인’ 칭호를 수여받았다. 영어시집 ‘평화를 위한 투쟁(Fighting for Peace)은 2005년 벤자민 플랭클린상 시와 문학비평 분야에서 최종 후보에 올랐다. 2007년 10월에는 인터컨티넨털 국제시인협회로부터 ‘세계민중시인’의 칭호를 수여받았다. 그의 시는 대부분 일본의 정형시가 와카 단카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보다 긴 형식으로 운문과 산문을 결합한 시도 있다. 이에 관해 이케다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형식 차원에서 보면 전혀 시라고 할 수 없는 작품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인간의 기본적 감정을 표현한 글입니다. 형식을 떠나 인간의 기본적 감정을 표현한다.
바로 그것이 시의 참된 정의가 아닐까요? ”

‘평화를 위한 투쟁’은 전쟁과 평화에 관한 그의 명상록이다.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난 전쟁에 대한 깊은 혐오감과 개인의 목적을 위해 민중을 희생시킨 권력자들을 향한 분노가 표출되어 있다. 책의 서문을 쓴 저명한 미국의 작가이자 시인 이시마엘 리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케다 선생님은 수백만 명의 목소리를 대변해준다.
그들은 세계 정치인들의 박탈과 기만에 실망감과 좌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케다 선생님은 가차 없이 맹렬하게 비난한다.”

1945년 패전의 혼동 속에서 청년 이케다 선생님은 전쟁으로 찢겨진 정신의 공허함을 달래고 해답을 찾고자 독서에 몰두했다. 그리고 시로 그의 탐구심을 표현했다. 시는 그의 감정과 마음을 표현해주었다. 이후 진리를 추구하는 스무 명 남짓한 청년들로 구성된 독서모임에 들었고, 이 모임을 통해 1947년 도다 조세이 선생님을 만난다. 그리고 도다 선생님을 통해 니치렌불법을 알게 된다.

“오랫동안 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었지요. 소설도 써보고 싶었고, 글쓰기와 관련된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도다 선생님의 출판사에서 일하게 된 것 같습니다.”라고 그는 기억을 떠올린다. 전쟁 전, 성공한 개혁 교육자였던 도다 선생님은 청년 이케다 선생님에게 대학 수준의 다양한 학문을 개인 교습한다. 그리고 1960년 청년 이케다 선생님은 스승 도다 선생님을 이어 창가학회 회장이 된다.

교육에 대한 스승의 신념을 이어받은 이케다 선생님은 일본, 미국, 홍콩, 싱가포르, 한국, 그리고 브라질에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을 설립했다. 또한 문화 교육교류를 촉진하고 종교 간, 문명 간의 대화 및 평화 관련 연구를 추진하기 위해 여러 연구소를 설립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직접 격려하자!’라는 마음이 그의 저술활동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일 것이다. 그러한 마음으로 일본 혹은 해외에서 바쁜 업무 틈틈이 한통 또 한통의 편지, 한편 또 한편의 시를 빠르게 써 내려갔다. 이케다 선생님은 말했다. “지적 유희가 아닌, 혹독한 현실을 마주한 정신의 투쟁이었습니다. ‘어떻게 이 사람을 격려할까?’ ‘어떻게 이 사람에게 힘을 실어줄까?’ 고심고심하며 가장 적당한 격려의 말을 생각해내기 위해 온 마음을 쏟아부은 투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