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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의 명언

  • Dialogue with Nature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의 사진 작품, 자연과의 대화

  • The Life Story of Daisaku Ikeda 이케다 다이사쿠 생애

살아있는 부처 이케다 다이사쿠 저작 ‘나의 석존관’에서 발췌

석존의 깨달음

오랜 기간의 난행고행(難行苦行)과 마라(Mara) 및 마군(魔軍)과의 싸움을 끝낸 석존은 성도(成道)를 이루었다. 출가 시점과 수행 기간에 따라 그가 성도를 이룬 나이가 30세였다는 설과 35세였다는 설이 있다. 경전은 그의 성도를 산스크리트어를 음사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縟多羅三貘三菩提 anuttara-samyak-sambodhi) 다시 말해 무상정득정각(無上正等正覺, 가장 올바르고 완벽한 깨달음)이라고 말한다. 모든 존재의 참된 본질 혹은 실상을 인식할 수 있는 그러한 경애를 가리킨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초월할 수 없는 무상(無上)의 지혜란 과연 무엇인가? 그날 밤 붓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석존이 깨달은 세계의 본질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석존의 깨달음에 관한 설명은 경전마다 다양한데, 이를 하나하나 연구해보면, 오히려 그 정확한 본질에 관해 혼란에 빠지게 된다. 아함경에 의하면, 석존의 성도는 밤의 시각(時刻)에 따라 세 단계로 이루어졌는데, 그중 세 번째 시각 즉 삼경(三更)에 이르러서 완벽한 깨달음에 도달했다고 한다.

연기법(緣起法)

인간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를 통해 끊임없이 윤회(輪廻)를 반복한다는 것을 깨달은 석존은 삼경에 이르러 마지막 선정(禪定)에 들어간다. 그는 삶과 세계에 관한 궁극적 진리를 파악하게 되고, 이를 통해 마침내 불타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 최종적 진리란 도대체 무엇인가? 일경(一更)과 이경(二更)에 관한 이야기는 경전마다 비교적 동일하지만, 삼경(三更) 때 석존이 얻은 깨달음에 대해서는 매우 상이하다. 어떤 경전은 십이연기(十二緣起)를 설하는 반면, 다른 경전은 사제(四諦)라고 하기도 한다. 혹은 간단히 “병도, 늙음도,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안온한 경지를 구했다”고 설하기도 한다. 따라서 성도의 마지막 단계에 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견(異見)이 있으나, 공통적으로 모두 연기사상(緣起思想) 다시 말해 연기법(緣起法)과 관련이 있다.

인과(因果) 혹은 연기(緣起)의 개념은 산스크리트어로 ‘프라티야 사뭇팟다 (pratitya-samutpada). 유정(有情)을 포함한 우주 삼라만상의 근원적 과정을, 무언가를 연(緣)으로 하여 생기고 멸(滅)해 간다 (因緣生起)고 설명한다. 우주 삼라만상은 이 인과의 법칙 아래 놓이게 되고, 따라서 그 어떤 것도 독립적으로 존재하거나 저절로 생겨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과의 이론은 종종 ‘원인에 따라 달라지는’ 혹은 ‘연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으로 설명된다. 만물(萬物) 만상(萬象)을 아우르는 이 인과의 법칙은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서로 연관을 가지고 있기에, 현존(現存)하는 만물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모든 것까지도 서로서로 영향을 미친다.

석존의 성불에 관해 여러 경전은 십이연기(十二緣起)를 설하고, 상좌불교의 신도들은 이를 연기에 관한 석존의 깨달음을 묘사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단순화일지도 모른다. 석존은 생로병사라는 문제의 해답을 구하기 위해 출가했고, 그가 깨달음을 얻은 순간 파악한 연기의 개념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보편적 법칙을 나타낸다. 그러나 내용 면에서는 너무나 깊이 있고, 구조적으로는 너무나 미묘한 법이기에 그렇게 간단한 언어로는 매우 설명하기 힘든 그러한 법이다. 보통 사람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석존은 십이연기로 알려진 연쇄적 질문 형식의 방법을 취했다.

첫 번째 질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무엇을 원인으로 늙음과 죽음이 있단 말인가? 도대체 왜 인간은 늙음과 죽음으로 고통 받아야 하는가? 여기에서 설명하는 12가지의 질문은 고뇌의 원인을 연쇄적으로 차례차례 거슬러 올라간다. (12) 늙음과 죽음은 태어남을 원인으로 생긴다. 태어나지 않는다면 죽음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무엇으로 인해 태어나는가? (11) 존재로 말미암아 태어난다. (10) 존재는 집착에 의해 생겨난다. (9) 집착은 갈망에 의해 생겨난다. (8) 갈망은 감수(感受)에 의해 생겨난다. (7) 감수는 접촉에 의해 생겨난다. (6) 접촉은 여섯 가지 감각에 의해 생겨난다. (5) 모양과 물체[名色]로 말미암아 여섯 가지 감각이 있다. (4) 인식[識]으로 말미암아 모양과 물체가 있다. (3) 업[行]으로 말미암아 인식이 있다. (2) 무명(無明)으로 말미암아 업이 있다. (1) 모든 고통과 괴로움의 근원에는 '무명'이 있다. 무명만 제거될 수 있다면, 인과의 고리를 하나씩 차례대로 없애 늙음과 죽음의 존재까지도 멈출 수 있게 되리라. 이것이 바로 석존이 말하고자 한 바이다.

나는 위의 형식을 ‘무명으로 인해 행복을 성취할 수 없다’라는 진리를 설하기 위한 방편 정도로 삼고자 한다. 사실, 나는 위의 형식에서 밝혀낸 교리(敎理)가 석존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은 궁극적 진리의 진수(眞髓)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소견으로는, 석존이 깨달은 그 궁극적 실체는 ‘생명의 법’, ‘끊임없이 유전(流轉)하는 세계’임이 틀림없다.

냉철하게 대우주를 바라볼 때, 언뜻 보기에는 깊은 적막이 존재하는 듯하지만, 실은 대우주도 시시각각으로 변화와 생성(生成)의 리듬을 새기고 있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다. 어린아이도 언젠가는 늙고 마침내 죽고 또 태어나고 다시 죽는다. 사회와 자연 또한 한순간도 정지하고 있는 것이 없다. 우주 삼라만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시공간을 관철하는 인과의 법칙에 의해 끊임없는 변천을 반복하며 생겨나고 멸해간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실체이다. 서로 인(因)이 되고, 과(果)가 되고, 연(緣)이 되는 생명의 실상, 석존은 그 불가사의한 생명의 실체를 터득한 것이다. 석존은 분명 전류가 흐르는 듯한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석존은 일체의 미혹에서 해방되고, ‘생명의 법’과 하나가 되어 유희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만끽해보는 경지였으리라!

어구해설

사성제(四聖諦)라고도 함
(1) 고제(苦諦). 현실의 상(相)을 나타낸 것이니, 현실의 인생은 고(苦)라고 관하는 것.
(2) 집제(集諦). 고(苦)의 이유근거(理由根據) 혹은 원인(原因)이라고도 하니, 고의 원인은 번뇌인데, 특히 애욕과 업(業)을 말함.
- 위의 2제는 유전(流轉)하는 인과.
(3) 멸제(滅諦). 깨달음을 목표. 곧 이상(理想)의 열반.
(4) 도제(道諦). 열반에 이르는 방법. 곧 실천하는 수단
감각(感覺) 신경(神經)에 의(依)하여 외계(外界)의 자극(刺戟)이나 인상(印象)을 받아들이는 것
- 명색. 십이 연기의 하나. 이름만 있고 형상이 없는 마음과, 형체가 있는 물질을 이른다. 정신적인 것을 ‘명’, 물질적인 것을 ‘색’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