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8일
핵무기가 세계를 분단하고 파괴하는 상징이라면, 그 핵무기를 이기는 것은 희망을 역사 창조의 힘으로 단련하는 민중의 연대밖에 없습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과학자 아인슈타인 박사가 생애 유일한 실수라며 후회한 것이 있습니다. 나치가 개발하는 원폭의 위험성에 대해 조속히 대응하도록 촉구하는 편지에 서명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일입니다. 지인인 과학자가 요청했다고는 하지만, 왜 박사가 “전쟁의 이유가 무엇이든 나는 전쟁을 위한 봉사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절대로 거부한다.”라고 선언하며, 이러한 결단을 내렸는가. 원폭의 파괴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나치가 먼저 손에 넣을 경우 처해질 세계의 미래에 커다란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지켜온 주의(主義)를 위반하면서까지 서명한 박사의 마음은 군사 논리 속에서 무시되었습니다. 게다가 나치가 패전하여 핵개발의 의미가 사라졌다고 안도하고 있을 바로 그때, 원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되었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큰 충격을 받고 박사가 죽기 전까지 10년 동안 핵무기 폐절을 세계에 계속 주장한 사실은 매우 유명합니다.
“원자폭탄이 처음으로 완성된 이래, 세계를 전쟁에서 지키기 위해 완성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전쟁의 파괴력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이 말은 아인슈타인 박사가 1947년에 한 말인데, 그 전해에 유엔에서 논의된 국제원자력통제구상주1이 좌절되고, 소련과 영국이 핵무기 개발에 착수하자 그 분노를 담아 같은 문장에서 그러한 경고를 세 번 되풀이했습니다.
1947년은 내가 스승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제2대 회장을 처음 만난 해이기도 합니다. 스승은 군국주의에 저항하다 2년에 달하는 옥중투쟁을 관철하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평화를 추구하는 민중운동에 앞장섰습니다. 그리고 도다 선생님은 소련이 미국을 좇아 핵실험에 성공하고, 그 사실을 인정한 직후인 1949년 10월에 “원자폭탄에 의한 전쟁이 일어난다면 세계 민족은 멸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라고 경고했습니다.
그 이후, 핵무기가 대치하는 시대로 돌입하고 나서 60년이 지났습니다만, 아인슈타인 박사의 경고에 발본적인 대응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위기가 증폭되고 있습니다. 냉전이 종결된 이후, 세계적인 규모로 핵전쟁이 일어날 위협은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핵확산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발효했을 당시와 비교해, 이제는 두배 가까이에 달합니다. 지금 세계에는 핵무기가 2만 5000발이나 존재한다고 하며, 암시장을 통해 제조기술이나 핵물질이 유출되어 테러에 핵무기가 사용될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위협을 염려하는 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올해 4월에 체코의 프라하 연설에서, 핵무기를 사용한 적이 있는 유일한 핵보유국으로서 져야 할 ‘도의적 책임’을 언급하며, ‘핵무기 없는 세계’를 이룩하는데 앞장서겠다는 결의를 표명했습니다. 그리고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두차례에 걸쳐 정상회담을 하고 제1차 전략무기삭감조약(START1)에 이은 새로운 핵군축조약 대강에 합의했습니다.
그 후, 7월에 이탈리아 라퀼라에서 열린 G8정상회의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를 위한 상황을 만들 것’을 약속하는 정상성명이 발표 되었습니다. 더욱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달(9월) 24일에 ‘핵비확산과 핵군축에 관한 정상급 회담’을 예정하고 있는 등 지금까지 없었던 움직임이 차츰 보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일어나는 일련의 움직임이 과연 정말로 시대를 전환시키는 새로운 조류를 일으킬 수 있을지, 그 중요한 국면이 되는 자리가 내년 5월에 개최되는 NPT 재검토회의입니다.
2005년에 열린 NPT 재검토회의에서는 핵군축을 우선적으로 대응하자는 주장과 핵확산 방지를 우선으로 하자는 주장이 대립해 안타깝게도 성과를 얻지 못한 채 폐막했습니다. 그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올해 열린 제네바군축회의에서 컷오프조약(무기용 핵분열성 물질 생산금지조약)의 교섭 개시를 간신히 결정하는 등, 타협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세계를 뒤덮은 핵시대의 암운은 표면적인 분위기의 변화만으로 거둬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나 군사상의 이해를 초월해 ‘핵무기의 존재가 얼마나 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절대로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여기서 역사가 토인비 박사의 말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박사는 저서 ‘역사의 연구’에서 핵무기 문제를 “우리가 도저히 회피할 수 없는 도전”이라며 인류에게 다같이 맞서 싸우라고 주장했습니다. 나와 나눈 대담에서도 핵무기 보유를 거부하는 ‘스스로 부과한 거부권’을 세계 전체에 확립해야 한다고 유언처럼 주장하신 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깊이 침투한 습관과 혁명적으로 결별하거나 익숙하고 친숙해진 제도를 포기하는 고통에는 감정적인 저항이 있겠지만, 그것은 자기교육으로 극복해야 한다. 핵시대에 힘으로는 그것을 깰 수 없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주2을 단칼에 잘라버리기보다 인내심 강하게 손으로 풀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핵전쟁의 참사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핵무기를 둘러싼 불안정한 요소가 늘어나는 가운데 핵무기를 보유한 모든 나라와 핵무기에 안전보장을 의존하는 나라들의 지도자는 다음의 문제들을 자문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핵무기는 정말 필요한 것인가. 왜 계속 보유해야만 하는가.’ ‘왜 타국의 핵보유는 문제가 되고, 자국의 핵보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앞으로도 인류는 핵무기의 위협을 계속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
여기서 ‘자기교육’이라는 토인비 박사의 말을 단서로 삼아, 이런 자문(自問)에도 관계되는 역사의 교훈을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먼저 핵무기 탄생 전후에 과학자들이 직면한 갈등에 초점을 맞춰 핵무기에 대한 사고방식을 재정립해야 합니다. 지금은 핵무기의 존재를 당연한 것처럼 여기지만, 그 탄생에 종사한 적지 않은 과학자가 우려하고 주저한 ‘바라지 않는 무기’였다는 사실을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1년 전(1938년 12월), 베를린에서 우라늄을 사용해 인공적으로 핵분열을 일으키는 실험이 성공했습니다. 실험에 종사한 과학자 오토 한은 핵이 일으킬 무시무시한 가능성을 알고, 갖고 있는 우라늄을 전부 바다에 버리고 자살하고 싶었을 정도였다고 전합니다. 또 이듬해인 1939년에 원폭제조의 다음 관문으로 알려진 핵분열 연쇄반응의 가능성을 입증한 레오 실라르드도 비극을 예감하고 “나는 세계가 비극으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카고대학교 원자로에서 연쇄반응의 제어가 성공해 맨하탄 계획이 궤도에 오른 뒤, 마침내 최초의 핵실험을 실행하기 직전(1945년 7월)에 무기로 사용하지 않도록 요청하는 청원서를 정리한 것도 시카고대학교에서 핵개발에 종사한 과학자들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시카고대학교를 방문한 때는 SGI의 발족을 눈앞에 둔 1975년 1월이었습니다.
대학 간부와 회담하고 도서관을 시찰하러 갔을 때 캠퍼스의 한쪽에 세워진 핵개발 기념비를 보고, 당시 과학자들의 신음이나 고충을 생각한 일을 기억합니다. 시카고대학교를 방문하기 약 1주일 전, 뉴욕 유엔본부를 방문해 창가학회 청년부가 앞장서 핵폐절을 갈구 하는 1천만 명이 서명한 서명부를 제출했습니다. 그런 만큼 핵폐절에 대한 결의가 더욱 강렬하게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종말시계’가 시카고대학교에 설치되어, 핵전쟁의 위험도가 세계의 상황변화에 따라 그때그때 표시됐습니다. 우리는 이런 핵개발에 관한 이면의 역사를 재정립해 ‘종말시계’에 담긴 선인들이 우려한 의미를 되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핵시대에 일어난 위기와 사건에 대해 정치지도자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뒤돌아보고, 그 경험과 교훈에서 배워야 합니다. 현대사를 펼치면, 지금까지 몇 번이나 핵무기 사용을 검토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고 절박했던 사건이 미·소가 핵전쟁 직전까지 몰고 간 1962년 10월에 일어난 쿠바위기였습니다. 이 쿠바위기를 거친 뒤, 케네디 대통령이 행동으로 ‘소련과 평화공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전제로써 적의나 편견을 불식하는 중요성을 강조한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평화전략’이라는 제목으로 유명한 연설(1963년 6월)에서 미국에 대한 소련의 비난을 언급한 다음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러한 소련의 주장을 읽고 미·소 간의 간격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되어, 비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경고이며, 소련처럼 함정에 빠지지 않게 상대방의 왜곡된 절망적인 견해만을 보는 일이 없도록, 또 분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거나 협조가 불가능하다고 보거나 커뮤니케이션이 수식어나 협박언사의 교환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미국인에게 경고했습니다.”
선입관이나 이미지에 빠져 판단이 흐려져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입니다. 이 점은 핵시대에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푸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나는 1974년 처음으로 중국과 소련을 잇달아 방문해 양국 정상과 회담하며 긴장완화의 길을 찾고 있을 때, 그 점을 강하게 실감했습니다. 평화를 희구하는 한 불법자(佛法者)로서 ‘전쟁은 어느 나라 민중도 원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중개역할을 해야 한다.’는 각오로 민간외교에 임했습니다. 중국을 처음 방문하고 3개월 후(1974년 9월) 코시긴 소련 총리와 회견 했을 때, 나는 총리가 경험한 레닌그라드 공방전의 비극을 들은 다음 단도직입으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중국의 정상은 자기들이 타국을 공격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러나 소련이 쳐들어오지 않을까 걱정하여 방공호까지 파서 공격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소련의 태도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솔직히 묻겠습니다만, 소련은 중국을 공격하겠습니까?” 그러자 총리는 “소련은 중국을 공격할 생각이 없습니다.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생각도 없습니다.”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때를 놓치지 않고 나는 그 뜻을 중국의 요인에게 전하는 한편, 미국에도 가서 키신저 국무장관과 미·중 관계와 전략무기제한협상(SALT)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일련의 회담을 거쳐 얻은 교훈은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대화가 타결의 실마리다.’ ‘상대의 의사를 정확히 알려면 흉금을 터놓고 서로 대화하는 수밖에 없다.’는 두 가지입니다. 생각하건대, 서로가 마음의 벽을 허무는 대화정신을 토대로 핵폐절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논의한 것이 1986년 10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미소정상회담이 아닐까요. 그해 초,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핵무기 전폐(全廢) 구상을 발표했을 때, 레이건 대통령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대하는 측근에게도 “나는 가볍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게는 핵무기 없는 세계를 구축하고 싶다는 꿈이 있다. 우리 자손들을 이런 무서운 무기에서 해방시키고 싶다.”고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고 합니다. 한편 고르바초프 서기장도 그해 4월에 일어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큰 충격을 받고, 더욱 결심을 굳혔습니다. 그리고 정상회담에서 솔직한 의견을 나누는 속에 ‘1996년까지 10년 동안에 모든 핵무기를 제로로 한다.’는 방침까지 의견 일치를 보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최종 단계에서 전략방위구상(SDI)을 둘러싸고 의견이 맞지 않아 역사적 합의는 환상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회담에 입회한 슐트 前미국무장관을 비롯해 키신저 박사 등 네 명의 전직 고관이 2007년에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제목으로 제언주3을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핵위협이 심각한 지금 레이캬비크회담에서 합의를 시도한 핵무기 전폐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찾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공동제언의 출발점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이전에 고르바초프 씨와 회담했을 때(2001년 11월), 당시의 이야기를 상세히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고르바초프 씨는 “우리는 ‘미국이 어떤 태도로 나오든 이쪽이 주도권을 쥐고 반드시 대화의 장을 만든다.’는 결의로 임했습니다. 실은 소련이 한걸음 내딛는 일이 매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소련이 태도를 바꿔 대화하자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없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레이건 대통령도 태도를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라고 술회했습니다.
나는 레이캬비크회담의 상징인 정상회담의 세 가지 교훈(①명확한 위기의식에 근거한 비전의 공유 ②타국의 반응에 관계없이 자발적으로 주도권을 발휘하는 확고한 의지 ③교섭이 난항을 겪어도 마지막까지 잃지 않았던 상호 신뢰감)을 미래를 위한 가교로 삼고, 핵시대에 ‘고르디우스의 매듭’에서 인류를 해방하는 도전에 각국 지도자가 손을 맞잡고 일어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프라하 연설에서 “20세기에 자유를 위해 투쟁한 것처럼, 21세기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공포가 없는 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찾아 우리는 함께 투쟁해야 합니다.”라고 말해, ‘핵무기 없는 세계’를 위한 인류의 공동투쟁을 강조했습니다. 일찍이 핵무기 확대 경쟁이 치열한 시대에 이런 핵무기가 사람들에게 초래하는 위협이나 공포라는 민중의 관점에 서서 핵무기 폐절을 주장한 분이 스승 도다 제2대 회장이었습니다.
서거 7개월 전인 1957년 9월 8일, 도다 회장은 병이 소강상태일 때, 청년을 중심으로 한 5만명 앞에서 핵폐절을 가장 중요한 유훈으로 하는 ‘원수폭금지선언’을 발표했습니다. 현재 상황에 비춰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선언의 세 가지 핵심은 ‘정치지도자의 의식 변혁’ ‘핵무기를 금지하는 명확한 비전’ ‘인간의 안전보장을 세계적으로 확립’입니다. 첫째는 “우리 세계의 민중은 생존 권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권리를 위협하는 것은 마물(魔物)이고 사탄이며 괴물입니다.”라고 말해, 핵을 보유하는 이면에 있는 국가의 이기주의를 엄하게 지탄하고 지도자의 의식변혁을 강하게 촉구한 점입니다.
‘사탄’이나 ‘괴물’이라는 표현은 조금 당돌하고 기이한 인상을 줄지 모르지만, 핵억지론(核抑止論)의 저변에는 자국의 우위나 안전을 위해 인류의 희생도 불사하겠다는, 궤도를 벗어난 비정한 논리가 맥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기 쉽게 전함과 아울러 지도자에게 반성을 요구하는 것에 주된 목표가 있습니다. 이 선언을 한 같은 해에 발족한 퍼그워시회의를 창설하는 데 힘쓴 철학자 러셀도, 권력자가 빠지기 쉬운 생명상태를 ‘그리스 신들의 왕 제우스처럼 천둥과 번개를 무기로 들고 있는’ 모습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불법(佛法)에서도 “언제나 순간순간 상대방보다 뛰어나기를 바라고, 남에게 뒤지는 일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얕보며 자기를 존귀하게 여기는” 승타(勝他)의 욕망이 인간 생명에 있다고 설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는 욕망이 극도에 다다른 상태를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라고 설합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타자(他者)라는 존재는 한없이 작아지고, 어떤 희생이 발생해도 주저하는 마음이나 아픔 등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핵전력(核戰力)을 장악하는 전략군 총사령관을 지내고 퇴역한 군인 리버틀러 씨가 술회한 내용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냉전시대의 핵억지라는 극단적인 계율에 얽매임으로써 인간성의 근원인 생명을 존경하는 마음이 줄어들고, 도덕적 감성이 사라졌다.” 또 처음에는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지만 도덕적인 이유에서 도중에 혼자 그만둔, 퍼그워시회의 로트블랫 박사도 핵전쟁이 인류에게 미치는 파국을 경고했습니다.
1996년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핵무기의 위협과 사용에 관한 권고적인 의견을 제시했을 무렵, 이에 앞선 심리(審理)에서 각국이 의견을 진술할 당시 남태평양의 솔로몬제도를 지원하는 형태로 대표단에 참여해 문서로 이런 의견을 표명했습니다.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유해한 작용이 확산하는 방사성 강하물(降下物)이 지닌 특성은 핵전쟁이 지닌 독특한 특징이다. 핵전쟁에서는 전쟁 당사국 주민뿐 아니라 사실상 세계 모든 인구와 그 자손들까지 희생된다. 전쟁이라는 개념에 핵무기가 야기한 근본적인 변화가 바로 이 점에 있다.”
박사는 방사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상세히 조사하고, 보유국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방사성 물질에 위협받는 사람들의 괴로움을 대변해, 인류에게 경종을 울렸습니다. 이런 파멸적인 말로를 알면서도 핵정책을 개선하지 못하는 까닭은 타자의 고통을 느끼는 ‘상상력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지금 용기를 내어 냉전시대가 떠맡긴 유산이라 할 수 있는 핵억지론을 청산해야 할 때를 맞았습니다.
둘째는 “만약 어떤 나라든 원수폭을 사용한 자는 승패에 상관없이 모두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무슨 이유에서든 어느 나라든 핵무기 사용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신 점입니다. 생명존엄 사상을 근간으로 삼는 불법자로서 강하게 사형에 반대한 스승이 굳이 극형을 요구하는 듯한 표현을 사용하신 까닭은 핵사용을 정당화하려는 논리에 명확히 쐐기를 박고, 뿌리를 뽑기 위해서였습니다. 도다 제2대 회장은 인류의 생존권을 근원적으로 위협하는 존재인 핵무기는 틀림없이 ‘절대악’이고, 종래 무기의 연장선상으로 간주하며 상황에 따라 쓸 수 있는 ‘필요악’으로 생각할 여지를 갖게 하면 절대로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당시 동서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핵보유를 비판하는 주장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도다 제2대 회장은 그런 미혹된 생명을 물리치고 어떤 이데올로기나 체제에도 치우치지 않으며 인류라는 이름으로 핵무기를 단죄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군국주의와 끝까지 싸운 스승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도 전쟁에 희생되면 안 된다고 역설하며 ‘지구민족주의’를 제창하셨습니다. 그 논리적 귀결이 바로 ‘원수폭 금지선언’이었습니다. 예외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이 사고방식은 이윽고 국제사회에서 수차례에 걸쳐 표명되기에 이르렀습니다.
1961년에 열린 유엔총회에서 어느 나라든 핵무기를 사용하면 유엔헌장과 인도적 법칙을 위반하는 행위며 인류와 문명에 대한 범죄로 간주한다는 결의를 채택한 이래 같은 결의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또 2006년에는 대량파괴무기위원회가 보고서에서 “어느 나라들이 보유하는 핵무기는 위협적이지 않지만, 다른 나라들이 보유하면 세계가 치명적인 위기에 빠진다는 사고방식을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견해를 표명했습니다. 마치 ‘좋은 핵무기’와 ‘나쁜 핵무기’라는 구별이 있는 듯한 사고방식이 존재하는 한, 아무리 핵확산 방지체제를 강화해도 정당성이나 설득력을 지닐 수 없다는 도다 제2대 회장의 선언은 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급소’를 뚜렷이 나타낸 말씀이기도 했습니다.
셋째는 “지금 세계에서는 핵이나 원자폭탄 실험을 금지하라는 운동이 일어나는데, 나는 그 핵무기 속에 숨은 발톱을 뽑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해, 핵실험에 항의도 당연하지만 많은 민중의 희생 위에 이루어지는 안전보장사상을 근절하지 않으면 본질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하신 점입니다. 일단 핵공격으로 응수하기 시작하면 분명 다른 나라 국민으로만 그치지 않고, 자기 나라 국민도 태반이 희생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못 본 체하며 아무리 ‘국가의 안전보장’을 드높이 외친들 본디 지켜야 할 국민을 저버린 ‘빈껍데기’일 뿐입니다.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지라도 핵실험에 따른 방사선 피폭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암을 비롯한 유전성 질환 등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또 핵무기 관련시설 주변에서도 같은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도다 제2대 회장은 “세계에도, 국가에도, 개인에게도 ‘비참’ 이라는 글자가 쓰이지 않기 바란다.”고 열렬히 소원하셨습니다.
그런 뜨거운 열망을 응축한 선언은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직면하는 비참한 상황을 없애는 데에서 평화의 기초를 찾아내는 접근법, 즉 오늘날 그 중요성을 크게 외치고 있는 ‘인간의 안전보장’이라는 관점에 바탕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도다 제2대 회장이 ‘세계’와 ‘국가’와 ‘개인’이라는 각 단계에서 모두 똑같이 비참한 상황을 초래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신 점입니다. 즉 아무리 세계 평화를 지킨다는 대의(大義)가 있을지라도, 희생을 치르는 나라가 있으면 안 됩니다. 국가안전을 지킨다고 해서 국민을 희생시키면 안 됩니다. 이런 상황을 일으키는 원흉을 확인하고, ‘핵문제 속에 숨은 발톱을 뽑아내는’ 작업이 바로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부과된 책임이 아닐까요.
‘원수폭금지선언’을 발표한 지도 반세기가 지났습니다. 나는 “적어도 내 제자라면 오늘 내가 발표하는 이 성명을 이어받아 전 세계에 이 뜻을 두루 알리기 바랍니다.”라는 사자후(師子吼)를 단 하루도 잊지 않고, 그 자리에서 가슴속에 깊이 새긴 직제자로서 끊임없이 핵을 폐절하기 위한 조류를 더욱 확대하고자 도전했습니다. 스승이 서거하고 2년이 지나 창가학회 제3대 회장에 취임한 1960년에 양복 안주머니에 스승의 사진을 품고 미국에 첫걸음을 내디딘 이래, 각국을 방문하며 핵을 보유한 5개국 지도자와 유엔 정상을 비롯해 많은 식자(識者)와 대화를 거듭하며 핵무기와 세계 평화라는 과제에 관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또 군축특별총회가 1978년, 1982년, 1988년에 유엔에서 세 번에 걸쳐 열렸는데, 매번 제언을 보냈습니다.
1983년부터 해마다 발표하고 있는 ‘SGI의 날’ 기념제언에서도 핵을 폐절하기 위한 제안을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1996년에는 스승의 평화사상을 원점으로 세계 민중을 위해 평화 연구의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거점으로 도다기념국제평화연구소를 창설했습니다. 주요 계획의 일환으로 핵무기 폐절을 내걸었으며 국제회의 성과를 정리한 연구서적도 발간하고 있습니다. 또 SGI도 핵무기의 위협과 비인도성을 더욱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의식을 계발하는 운동을 일관되게 추진했습니다.
핵무기 위협이 끊임없이 존재하며 인류가 똑같이 직면하게 될 두려움이 있는데도, 많은 사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그런 위협을 간과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그 ‘무의식적인 벽’을 부수는 일이 선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1982년 6월부터 시작한 ‘핵무기-현대세계의 위협전’을 유엔이 추진하는 세계군축캠페인의 일환으로 순회 전시했으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해 핵보유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개최했습니다. 특히 최근 수년 동안에는 유엔이 강조하는 ‘군축·비확산 교육’을 민중 차원으로 추진하는 활동에 힘을 쏟았습니다.
또한 ‘핵무기 없는 세계’를 구축하려면 민중이 일어서야 하며, 그런 연대를 지구적 규모로 확대할 수밖에 없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어볼루션2000’을 지원하고, 1,300만 명에 이르는 핵폐절 서명을 모아 1998년 10월 유엔본부에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2006년 8월 제언에서 ‘핵무기 폐절을 향한 세계 민중의 행동 10개년’을 제창했으며, SGI에서는 ‘원수폭금지선언’ 발표 50주년에 해당하는 2007년 9월부터 ‘핵무기 폐절을 향한 세계 민중의 행동 10개년’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현재 인간의 안전보장이라는 관점에서 핵무기 문제를 생각하는 ‘핵무기 폐절을 위한 도전과 인간 정신의 변혁’전을 각지에서 개최하고, 또 교육용으로 ‘평화를 위한 소원을 담아-히로시마·나가사키 여성들의 피폭체험’이라는 제목의 DVD를 5개 국어로 제작해 상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세계 각지에서 방사능 오염을 비롯해 피폭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증언을 DVD로 제작하는 일도 추진하고자 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스승의 ‘원수폭금지선언’을 시대정신으로 고양하고자 반세기에 걸쳐 계속 행동했습니다. 앞으로도 민중 차원에서 핵폐절을 추구하는 운동에 더욱 온 힘을 다할 결심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핵무기 폐절을 목표로 노력해온 경험에서 핵문제에 대한 두 조류의 경계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강하게 느낍니다.
즉 종래의 평화론적인 접근법뿐만 아니라 핵무기의 위협이 난반사(亂反射)하는 상황에 직면한 현실주의적인 판단에 의거해 ‘핵무기 없는 세계’를 바라는 목소리가 핵보유국 사이에서도 들린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접근법을 협력시킬 수 있다면 더 큰 추진력을 새로 내놓을 수 있습니다. 키신저 박사도 그 중요성을 지적했습니다. 나는 이 협력의 축이 되는 것이 바로 ‘명확한 전망’ ‘흔들리지 않는 결의’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확신합니다. 나는 이것을 염두에 두고 앞으로 5년 동안 ‘핵무기 없는 세계’를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다음의 5개 항목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핵보유 5개국이 내년에 열리는 NPT 재검토회의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전망을 공유하겠다고 선언하고 구체적으로 실행될 수 있도록 곧바로 준비 작업에 착수하는 일입니다. NPT가 불평등한 구조로 된 조약이지만 핵비보유국 대부분이 가입했고, 게다가 무기한 연장까지 인정한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것은 핵보유국에 군축 촉진을 약속하게 하는 것을 전제로 핵보유라는 선택지를 포기하는 것이 자국의 안전과 전 세계의 평화로 이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핵보유국이 군축 노력을 오랫동안 태만히 하며 새로운 핵개발의 움직임도 보여 핵확산 방지의 국제협력을 추진하는데 신뢰를 떨어뜨리는 상황을 초래했습니다. 따라서 슐츠 前미국무장관도 지난해에 발표한 제언에서 “제로를 향한 전망 없이는 우리의 하강 곡선을 멈추는데 필요 불가결한 협력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경종을 울렸습니다. 핵보유 5개국이 내년에 열리는 NPT 재검토회의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전망을 공유하기로 서약하고 용감하게 행동한다면 보유국에 대한 신뢰는 크게 회복되어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은 핵군축과 핵확산 방지가 상승효과를 올리며 전진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핵보유 5개국이 대처해야 할 조치로 제안하고 싶은 것은 ①일체 핵개발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모라토리엄 선언’ ②핵능력에 관한 투명성 증대 ③최저 보유 가능한 수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포럼 설치입니다. 먼저 핵보유 5개국이 내년에 있을 재검토회의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전망과 함께 ‘모라토리엄 선언’에 서약할 것을 강하게 주장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타국의 우위에 서는 일 외에 적극적으로 핵개발 경쟁을 부추기는 이유는 없으며, 현상 동결의 서약은 핵무기 제로를 향한 ‘최초의 자제(自制)’를 나타냅니다. 그것은 또한 핵능력 증강에 종지부를 찍고, 도다 제2대 회장이 고발한 핵보유에 숨은 ‘승타(勝他)’의 충동을 함께 끊는 작업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다음으로, 실제로 ‘핵무기 없는 세계’로 가는 행정표(行程表)를 만드는 전제로서 핵능력에 관한 투명성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미·소 양국이 군축교섭을 한 이후의 역사가 제시하듯 상호 간의 상황을 명백하게 드러내지 않는 한 건설적인 논의를 진행할 수 없습니다.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현상 동결을 도모한 후에 1년 이내에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정보 개시를 단행하기 바랍니다. 그러고 나서 핵무기 제로에 이르는 도정에서, 각국에서 최저 얼마만큼의 핵무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상정하고 있는지 자세히 조사해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엔사무총장도 동참한 포럼에서 협의를 통해 각국이 일정한 수준, 가령 최저 100발을 보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그것을 핵무기 제로를 향한 중간목표로 삼을 수 있습니다. 목표가 일단 구체성을 띤다면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한 전망은 큰 구심력을 낳아, 핵무기 제로를 향한 등정을 달성하는 데 베이스캠프의 역할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대처가 바로 2000년에 열린 재검토회의에서 합의된 ‘핵무기 전폐를 달성하는 명확한 약속’에 성실하게 응하는 행위가 아니겠습니까. 일찍이 아인슈타인 박사는 “조금씩 전진하는 척하며 필요한 변혁을 애매한 미래로 미룰 여유는 없다.”라고 외쳤습니다.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에 가장 책임이 있는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이기도 한 5개국의 리더는 이 경구(警句)와 책임을 깊이 새겨, 지금이야말로 일치단결해 ‘필요한 변혁’을 단행해야 하지 않을까요.
둘째는 유엔에 ‘핵폐절을 위한 전문가 패널’을 창설해 핵무기 제로를 향한 군축 과정에서 시민사회와 협동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예전에 냉전시대가 떠맡긴 유산으로 옛 소련 제국에 남겨진 핵무기 폐기와 핵확산 방지 조치를 각국에서 지원하는 체제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때 대량파괴무기에 관련된 과학자와 기술자의 능력을 민생목적으로 전환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국제과학 기술센터’를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핵무기 제로를 향해 모든 핵보유국이 군축을 시작하는 단계에 들어설 경우 그것을 훨씬 웃도는 국제적인 지원이 당연히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유엔사무총장 산하에 설치되어 있는 군축자문위원회의 활동을 통해 지금까지 축적된 지식이나 경험을 살리면서 핵무기에 대상을 특화한 형태로 새로운 전문가 패널을 설치할 것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군축 외에도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규합해 핵무기 제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조치를 기술적 측면도 포함해서 유엔사무총장에게 자문하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외에도 패널이 담당해야 할 역할 세 가지를 제기해 두고자 합니다.
또 패널을 설치하는데 유엔사무총장이 발기인이 되어 국제기구와 각국의 군축 전문가, 퍼그워시회의, 국제핵전쟁방지의사협회(IPPNW), 국제반핵법률가협회(IALANA), 핵확산에 반대하는 엔지니어 과학자 국제네트워크(INESAP)를 비롯한 비정부기구(NGO), 또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능을 가진 학술기관과 평화 연구기관에도 널리 호소하여 체제 만들기에 착수하는 일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창립한 도다기념국제평화연구소도 지금까지 이룬 실적과 폭넓은 연구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전면적으로 협력할 생각입니다. 내년에 일본이 주최하는 핵군축회의가 열릴 예정입니다.
같은 패널 구상을 제창하는 노르웨이와 핵무기 해체에 수반되는 검증연구에 힘을 기울이는 영국 등과 협력해 일본의 리더십으로 패널 설치가 실현되기 바랍니다.
셋째는 핵무기의 위협이 확대되는 것을 저지하고 감소시키기 위한 국제협력을 추진해 핵무기 제로를 가로막는 장애를 제거하는 일입니다. 먼저 주장하고 싶은 것은 내년에 열리는 NPT 재검토회의에 각국 정상이 참석하는 일입니다. 체약국은 물론 비체약국 정상도 참관인으로 초빙하여 사실상, ‘핵문제에 관한 글로벌 서밋’으로 개최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각국의 총의로 NPT에 ‘상설작업부회’를 두어, 먼저 2015년까지 5년 동안 핵확산방지에 관해 집중적으로 토의하여 국제협력을 강화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장래에는 이 작업부회를 기초로 NPT 체제에 관한 상설 의사결정기관으로 발전시켜가는 일도 생각해야 합니다.
‘핵무기 없는 세계’로 환경을 정비하려면 핵을 보유하는 이유가 되었던 억지론의 근거, 특히 위협의 실태를 분석해 진정으로 필요한 대응이 무엇인지를 가려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냉전 종결로 핵보유 5개국 사이에서 서로의 나라에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는 이미 상정하기 힘든 것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현재 핵전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주된 이유로 드는 것이 ①자국 또는 동맹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타국의 핵사용 억지, ②핵확산으로 이어지는 개발계획 저지, ③비국가 주체에 따른 핵테러 방지(억지) 등에 한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①에 대해서는 철저한 의논이 필요한 경우로, 다음 제4항에서 상세히 논하기로 하고 ②와 ③에 대해서는 핵무기 사용이나 위협에서 근본적인 해결을 끌어내지 못하는 점은 많은 전문가가 지적한 대로입니다. 이 두 가지 위협에 대해서는 핵억지력(核抑止力)의 강화가 아니라, 자국의 변화로 타국의 변화를 촉구하는 두 가지의 도전, 즉 ‘보유선언국과 보유의혹국을 확산방지의 틀에 편입시키는 노력’이나 ‘핵개발기술과 핵관련 물질의 확산을 방지하는 국제제도의 정비’로 임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한 가장 상징적인 예로 변화의 조짐을 볼 수 있는 것이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주4입니다. 현재 오바마 대통령은 비준 의향을 보이고 있습니다만, 만약 그것이 실현되면 중국이 비준에 결단을 내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게다가 미국과 중국의 비준을 계기로 인도와 파키스탄의 서명이나 비준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틀림없이 CTBT 발효가 크게 진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변화가 아직 비준하지 않은 이스라엘과 이란 그리고 서명하지 않은 북한에도 새로운 결단을 촉구하는 환경도 갖추게 됩니다. 이러한 긍정적인 연쇄작용을 돌파구로 해 NPT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들을 포함하여 모든 나라를 망라한 핵확산방지 체제의 기반을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CTBT 발효 외에도 ‘무기용 핵분열물질의 생산금지에 관한 조약의 조기체결’ 과 ‘핵연료 사이클의 국제관리 확립’ ‘핵테러 방지조약주5의 비준 촉진’과 더불어 ‘재생가능에너지와 에너지절약기술의 도입지원’ ‘우주의 철저한 비군사화’ 등의 조치가 중요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높아지는 에너지 수요와 지구온난화 방지 등의 관점에서 원자력 발전시설을 증설하거나 새롭게 도입을 검토하는 나라가 늘어나는 가운데, 핵무기 확산과 핵테러 위협이 고조되는 일이 걱정됩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원자력 르네상스’가 세계에 새로운 불안을 초래하는 재료가 되는 일에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국제원자력 기구에 의한 감시 체제 강화만이 아니라, 재생가능에너지와 에너지절약기술의 보급을 포함한 에너지 정책에 대해 국제적인 협조 면에서도 확산방지 환경만들기를 보강해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내년에 열리는 재검토회의에서 이러한 주요과제를 정하고, ‘상설작업부회’에서 구체적인 의논을 진행시키고, 그 다음 재검토회의 때까지 5년 동안 대폭적으로 전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그를 위해 현재 NPT의 사무국 기능을 맡은 유엔 군축실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넷째는 각국이 안전보장상의 핵무기 역할 축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핵무기에 의존하지 않는 안전보장’으로 이행을 지구적인 규모로 추진해야 합니다. 냉전시대의 사고방식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안전보장전략을 위한 핵무기의 역할을 축소하고, 타국에도 똑같은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 오바마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고려해야 하는 사례로 거론한 점은, 자국과 동맹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에 대한 대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생각하는데 잊으면 안 되는 점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투하가 가져온 참극을 보고 지난 64년 동안 어느 나라도, 어느 지도자도 핵무기를 한 번도 사용할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도의적인 이유를 비롯해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해도 ‘핵사용의 문턱’이 상당히 높아지고, 이제 군사적인 수단으로는 ‘거의 사용할 수 없는 무기’라는 인식이 정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굳이 내 생각을 거리낌없이 말하면, 핵억지력보다도 핵사용에 착수하는 결단의 무게가 핵사용에 제동을 건 것이 아니었을까요. 실제로 핵우산에 의존하지 않는 대부분의 나라들도 핵공격의 대상이 된 일이 없었습니다.
지역의 긴장완화와 비핵지대주6를 설치하는데, 직접 핵무기를 사용하는 일을 허락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핵억지의 마지막 관문에 대해서도 우려되는 위협을 해소하는 일이 선결문제이지, ‘핵무기에 의한 대항’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핵무기를 안전보장의 수단에서 제거하는 일은, 군축의무를 정한 NPT 제6조의 대상이 보유국에만 한하지 않고 모든 체약국에 똑같이 부과된 의무라는 점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가령 보유국이 ‘핵무기의 역할 축소’를 통해 대폭적인 군축을 도모하려고 해도, 동맹국이 핵우산 역할을 계속하고 강화하기를 바라는 한 실행에 옮기는 일은 어려워집니다.
그 경우 결과적으로 NPT 정신에 위배하지 않을 수 없고, 그 점을 깊이 고려했다고 해도 역시 핵우산을 유지하는 일이 안전보장상의 사활적 요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나는 10년 전 제언에서도 같은 문제를 제기했지만, 지금 보유국과 동맹국이 협의를 거듭하며 긴장완화책을 비롯한 종합적인 대체안을 진지하게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핵무기에 의존하는 안전보장’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동서냉전 대립의 최전선이었던 독일에서도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1월에는 바이츠제커 前대통령과 겐셔 前외무장관 등 네명이 슐츠 씨 등의 제언에 호응하는 형식으로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대결 시대의 잔재는 우리의 새로운 세기에서는 이제 부적절하다.’고 하며, 보유국에 선수를 쳐서 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조약을 조속히 체결하도록 요구함과 아울러 독일에 배치된 미국의 핵탄두를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실입니다.
나는 아직도 냉전적인 사고를 떨쳐내지 못하고 북한의 핵문제가 교착상태에 있는 동북아시아에서도, 미·일 두 나라가 결연한 의사를 나타낸다면 충분히 시대를 전환할 수 있는 물결을 일으킬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예전에 케네디 대통령의 고문이었던 경제학자 갤브레이스 박사와 대담했을 때, 미·일 두 나라가 지니고 있는 특별한 책임에 대해, 박사가 이렇게 이야기한 내용이 기억납니다.
“일본만이 핵무기를 사용하는 의미와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이 점은 일본과 미국에게 특별한 책임
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세계에서 이 두 나라만이 핵무기 전쟁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미·일 두 나라는 인류가 다시 핵무기로 인한 대량학살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앞장서서 노력해야 합니다.”
앞에서 소개했듯이, SGI에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체험 증언DVD를 상영하고, 인터넷에 증언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살아남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이 핵의 비참함 그리고 인간이 인간을 서로 죽이는 어리석음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전하는 소임이 내게 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살아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어요.”
(히로시마 피폭 여성) 이런 증언을 통해 ‘자신들이 받은 고통을 이제는 누구에게도 체험시키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피폭국인 일본이 ‘히로시마의 비극은 이제 그만’ ‘나가사키의 비극은 이제 그만’ 하고 외치는 근거도 그와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 일본이 핵무장을 검토하거나 비핵삼원칙을 재점검하는 행위는 도의적으로 허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일본은 앞으로도 비핵삼원칙을 굳게 지킴과 아울러 하루라도 빨리 ‘영원히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명확히 선언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는, 미·일이 협력해 북한의 핵문제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평화구축에 적극 임해야 하고, 6자회담을 하는 나라들이 ‘핵비사용선언지역’을 설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세월, 나는 ‘동북아시아 비핵지대’를 설치하자고 주장했습니다만, 실현되기 어려운 원인은 여섯 나라 모두 핵을 보유하고 있거나 또는 핵우산 아래에 있다는, 다른 지역에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교착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서로 핵공격을 하지 않고, 대량파괴무기에 관한 위협을 높이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을 제도화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여섯 나라는 모두 생물무기금지조약에 가입했고, 화학무기금지조약도 북한을 제외한 다섯 나라가 가입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을 이 조약에 가입시키고, 4년 전에 6자회담에서 공동성명으로 약속한 ‘모든 핵무기와 기존의 핵계획 포기’를 실행하도록 요구함과 아울러 다른 나라들은 ‘핵무기 비사용’ 서약과 그 지지를 표명하고, 다음 단계를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요. 만약 이것이 궤도에 오르면, 틀림없이 아직 비핵지대가 형성되지 않은 남아시아와 중동 등의 특정지역에서도 사태의 개선을 도모할 때 참고해야 할 하나의 사례가 될 것입니다.
동북아시아의 대립구조를 바꾸어 ‘어느 나라 사람들이라도 핵무기의 희생자로 만들면 안 된다.’는 이념을 지구적으로 확대하고,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드는 데 앞장서서 도전해야, 21세기에 미·일 두 나라가 협력관계의 기축이 될 것이라고 나는 주장하고 싶습니다.
다섯째는 2015년까지 ‘핵무기 비합법화’의 기초가 되는 국제규범의 확립을 목표로 세계 민중의 목소리를 모아야 합니다. 1996년에 국제사법재판소가 제시한 권고적 의견을 근거로 하는 형태로 이듬해인 1997년에 IPPNW를 비롯한 세개의 NGO가 중심이 되어, 핵무기금지조약의 모델안을 기초(起草)했습니다. 이것은 유엔 문서로서 배포된 후, 2년 전에 내용의 개정을 거쳐 NPT 재검토회의 준비위원회에 작업문서로서 제출되었습니다. 이러한 규범 확립을 요청하는 목소리는 점차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지난해 10월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그 중요성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SGI도 IPPNW가 추진하는 ‘핵무기 폐절 국제캠페인’에 찬동하는 형태로, 핵무기금지조약 체결을 지향하는 운동에 참가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인류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핵무기를 가장 비인도적 무기로 간주하여 금지한다.’는 의사표시를 개인과 단체를 비롯해 자치단체와 국가 차원에서 실행할 것을 주장하면서, 이 조약 체결에 기초가 되는 국제규범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모델안의 전문(前文)이 ‘우리 지구의 인민은’이라는 구절로 시작하듯이, 조약을 단순히 국가 간의 합의가 아니라 평화적인 지구사회를 추구하는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으로 제정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약 체결의 어려움을 이유로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됩니다. 세계 민중의 압도적인 의사를 하나로 모으고, 조약의 제정을 요구하는 국제여론을 강력히 환기하면서, 이제는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상황을 나타내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레베카 존슨 두문자어(頭文字語)연구소 소장이 ‘모든 사람들에 대한 안전보장’이라는 제목으로 쓴 논고에서, “핵무기 사용을 비난하고 비합법화하는 과정은 용기 있는 지도자가 일방적으로 조치를 강구하고, 다국 간의 규범을 형성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것은 중요한 주도권이며, 비보유국을 비롯해 시민과 시민운동이 여기에 지지를 표명하고 견고한 윤리규범을 형성한다면, 핵군축에 대한 대처는 확고한 발판을 구축할 수 있다.”고 언급한 이 말은,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성과 일치하는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단체, 종교계와 정신계, 아울러 세계의 여러 대학과 학술기관 등이 유엔의 여러 기구와도 협력하여 추진하는 가칭 ‘핵무기 폐절을 요구하는 세계 민중의 선언’ 운동을 공동으로 시작할 것을 제안합니다. 핵시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 싸워야 할 상대는 핵무기도 핵보유국도 핵개발국도 아닙니다. 진정으로 대결하고 극복해야 할 것은 자기의 욕망을 위해서는 상대의 섬멸도 불사하는 ‘핵무기를 용인하는 사상’입니다. 도다 제2대 회장이 “(핵보유) 속에 숨은 발톱을 뽑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호소하며 “전 세계에 이 뜻을 두루 알리기 바랍니다.” 하고 당부한 것은, 그러한 인식의 공유가 곧 국경을 초월해 민중이 연대할 수 있는 발판이 되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의식변혁의 파동을 일으켜 지구 전체에 넓히는 도전만이 핵시대를 종식시키는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1996년 국제사법재판소에서 권고적 의견을 심리했을 때, 약 400만 명이 서로 다른 40개 국어로 서명한 ‘공공의 양심선언’이 일반시민이 핵무기에 대해 폭넓게 비난한 증거와 함께 제출되어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고려된 경위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이 ‘민중선언’을 많은 관계자와 협의하고 정리하여, 2015년까지 유엔총회에 제출할 목표로 핵무기금지조약의 교섭을 개시하는 기운을 높이고 싶습니다. 이와 더불어 전문(前文)을 기안할 때 가장 중요한 참고문서로 활용하도록 요청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SGI에서도 현재 추진하는 ‘핵무기 폐절을 위한 세계 민중 행동의 10개년’의 중핵으로써 이 ‘민중선언’ 운동을 정착시키고, 더 많은 사람과 단체와 협력하여 핵폐절을 위한 민중의 커다란 연대를 거듭 구축할 결의입니다.
이상 다섯 항목에 걸쳐 제안했습니다만, 마지막으로 ‘핵무기 없는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도전은 핵무기 폐절뿐만 아니라 국가와 국제관계의 본연의 자세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도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일찍이 아이슈타인 박사가 각국이 핵문제를 “흑사병 유행이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경우”로 받아들이는 태도와 마찬가지로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중대한 이의(異議)없이 취해야 할 수단에 관해 신속히 의견 일치를 볼 것’이며, ‘자국만이 흑사병의 피해를 면하고, 타국은 흑사병에 걸려 많은 서민을 쓰러지게 하는 수단을 취하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경우, 윤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취해야 할 행동은 명확하고 신속해야 하며, 자국의 안전만을 추구하는 일은 허용될 리 없습니다. 창가학회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 초대 회장은 100여년 전에 ‘남을 위하며, 남을 이익케 하면서 자기도 이익이 되는 방법’ 이를테면 ‘인도적 경쟁’에 국가 간의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각국이 절차탁마하며 인도적인 행동과 세계에 기여하는 공헌을 좋은 의미에서 경쟁하고, 평화적인 공존의 정신을 넓히는 지구사회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내가 제시한 다섯 항목의 제안은 모두 이러한 인도적 경쟁의 이념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슐츠 씨가 제시한 ‘핵보유국의 본연의 자세를 변화시키는 공동사업’과 똑같이 지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국가가 본연의 자세를 변화시켜야 지금까지 핵무기 개발과 유지를 위해 투입한 많은 자금과 인적자원, 그리고 환경과 빈곤 등 지구적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기운도 생겨날 것입니다. 일찍이 공민권운동의 투사 킹 박사가 “세계의 권력투쟁의 역학을 누구도 이길 수 없는 핵무기 경쟁에서 전 세계 사람들의 평화와 번영을 실현하기 위해 인간의 재능을 관리할 수 있는 창조적 경쟁으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한 까닭은 그러한 의미가 담겨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지구사회의 창출로 이어지는 인류사를 결정짓는 도전을 성취하려면, 무엇보다도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후원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 NGO 대표가 모여, 이달(9월) 멕시코에서 처음으로 군축을 중심 주제로 삼아 ‘유엔홍보국 NGO연차회의’를 개최하는 일은 실로 시의적절한 것입니다. 이대로 앉아서 지구의 위협을 간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핵무기 없는 세계’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을 민중의 힘으로 증명해 보이지 않겠습니까.
목소리를 내거나 어떤 행동을 일으키는 일은 결코 특별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싶다.’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다.’ ‘어린이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지녀야 할 감정만 있다면 충분합니다. 평화와 과학의 거인으로서 20세기의 역사에 이름을 새긴 라이너스 폴링 박사도 행동을 실천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아내에게 변함없는 존경을 받고 싶다는 저의 바람이었습니다.” 하고 내게 솔직히 말씀하신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인간성의 유대야말로 누구나 공유할 수 있으며, 행동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SGI는 자신의 주위에서 인간성의 유대를 강화하는 ‘대화’가 우회적인 것 같지만 세계 평화로 향한 지름길이라고 믿으며 인간주의에 바탕을 둔 민중의 연대를 넓혀왔습니다. 그 연대는 현재 192개국에 넓혀졌습니다.
불법에서는 ‘일념삼천(一念三千)’이라고 하여, 모든 인간의 생명에는 스스로 일념을 변혁함으로써 주위와 사회에도 변혁의 파동을 넓히고, 이윽고 국가와 세계도 움직이게 하는 무한한 힘이 간직되어 있다고 설합니다. 그 힘을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끌어내고 결집하는 일이 SGI가 추진하는 평화운동의 요체입니다. 인간에게는 모든 일을 악의 방향으로도 선의 방향으로도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박사가 발견한 질량과 에너지에 관한 유명한 방정식도 본디 물리공식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방정식에서 일찍이 없는 ‘파괴의 힘’을 지닌 무기의 청사진을 찾아내어 국가가 총력을 기울여 제조한 것이 바로 핵무기이며, 인류는 핵시대의 끝없는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는 이 방정식을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에 갖춰진 무한한 가능성에 부연시켜 민중의 용기를 기폭제로 핵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평화와 부전(不戰)의 힘’을 함께 창출해야 할 때를 맞이했습니다. 그 최대의 주역이 바로 청년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이상도 가슴속에 그리고 있을 뿐이라면 덧없는 꿈으로 끝나고 맙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현실’로써 윤곽을 띠기 위해서는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무력감이나 체념과 싸우며 행동으로 실천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용기의 불꽃을 사회에 밝히는 열원(熱源)이 바로 청년입니다. 청년의 정열에는 한 사람에서 한 사람에게 또 다른 한 사람에게 전파하여 모든 고난의 벽을 부수고 새로운 인류사의 지평을 여는 힘이 맥동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핵무기 폐절을 위한 도전은 ‘전쟁 없는 세계’의 기반을 만드는 도전이고, 그러한 미증유의 도전에 이어지는 것이 ‘미래를 위한 최대의 선물’이 된다는 긍지를 지니고 함께 손잡고 지구적인 민중의 연대를 힘차게 구축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