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다 다이사쿠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은 평화운동가, 불교철학자, 교육자, 작가 그리고 시인으로 대화를 통한 평화 증진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스승과의 만남

창가학회 회원들에게 인사하는 이케다 선생님(왼쪽)과 도다 조세이 선생님 (1958년 3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혼돈과 혼란 속에서 이케다 선생님은 문학과 철학 서적에서 해답을 구하고자 독서에 열중했다. 이 즈음에 선생님은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될 도다 조세이(1900-1958) 선생님을 만난다. 교육자이자 불교재가단체의 공동 창립자인 도다 조세이 선생님은 군국주의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다 탄압을 당해 2년간 옥고를 치른다.

1947년 이케다 선생님은 도다 선생님이 참석한 창가학회의 소규모 회합에 참석한다. 종교에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이케다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투옥된 사람의 말에는 무게가 실려있었습니다.
저는 직감적으로 도다 선생님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군국주의에 맞선 도다 선생님의 의지에 이케다 선생님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권력의 횡포를 견디고 스승의 죽음이라는 고통을 경험한 도다 선생님은 일본 사회의 변화를 간절히 갈망했다. 이케다 선생님은 회상한다. “나는 도다 선생님을 따르고, 도다 선생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창가학회

도다 선생님은 당시 불교재가단체인 창가학회 재건에 힘쓰고 있었다. 도다 선생님의 스승이자 교육자인 마키구치 쓰네사부로(1871-1944) 선생님과 도다 선생님이 함께 1930년 창립한 창가학회는 제2차 세계대전 중 군국정부에 의해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다. 도다 선생님은 한 사람의 깊은 잠재력에 초점을 둔 니치렌불법의 철학이 바로 일본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열쇠라고 확신했다.

1945년 감옥에서 출감한 후부터 1958년 서거하는 날까지 도다 선생님은 니치렌불법의 철학을 넓혀 인간의 가능성을 펼쳐나가는 민중운동을 위해 불후의 업적을 남겼다. 도다 선생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헌신적이었던 이케다 선생님 역시 창가학회 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된다.

이케다 선생님이 도다 선생님과 함께한 시간은 십년 남짓하다. 그러나 도다 선생님의 훈도는 이케다 선생님의 삶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고, 자신의 모든 업적의 원천이 되었다고 강조한다. 이케다 선생님은 스승 도다 선생님에 관해 끊임없이 얘기하고 글을 쓰고 있으며, 강연과 저서에서 항상 스승의 사상과 영향에 대해 언급한다. 사제(師弟) 관계는 이케다 선생님이 계속 탐구하고 논하는 주제이다. 세계 지도자들과 만나면 이케다 선생님은 반드시 그들의 스승에 대해 질문하고, 역사적 인물에 관해 논할 때 역시 스승에 관해 고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