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아이들은 늘 넘치는 애정에 감싸여 안심할 수 있는 환경에 있기를 바랍니다.”
이케다 부부가 와일드스미스 부부와 딸 아나씨를 환영하는 모습 (1991년, 도쿄)
내가 저명한 영국의 동화작가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씨에게 “아이들이 마음속 깊이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라고 묻자 명쾌하게 “행복”이라고 대답했다. “아이는 늘 넘치는 애정에 감싸여 ‘안심’할 수 있는 환경에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행복’의 실상은 나이가 들면서 바뀌지만 평생 바뀌지 않는 ‘행복’의 원천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창조력’입니다.”
“책 속에서 햇살이 내리쬐는 듯한 그림”이라고 칭송 받는다. 색채들이 그려낸 교향곡은 숨이 멎을 듯하다. 구성은 섬세하고 빈틈이 없다. 그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예술은 사랑의 자녀’라는 말을 실감한다.
모든 그림에 따스함이 깃들어 있다. 나무도 꽃도 새도 사람도 동물도……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생명의 환희로 빛난다. 하늘도 바다도 집도 대지도 그리운 상냥함으로 빛난다. 그렇게 빛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와일드스미스의 애정이다.
와일드스미스씨를 처음 만났을 때 맑은 인품과 아이들을 생각하는 진지한 마음에 감동받았다. “물질이나 정보가 넘쳐나는 사회에서 아이들은 ‘받는 것’에 익숙해 오히려 스스로 창조하고 발견하는 기쁨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그는 그렇게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의 힘으로 아이들 안에 잠재된 ‘보물’을 일깨우기 위해 인생을 바쳤다.
와일드스미스의 출현은 ‘그림책 혁명’이라고 부른다. 어린아이들이 이렇게 예술성이 높은 그림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아이들은 기뻐했다. 즐거워하면서 그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겼다.
‘진짜’의 힘은 굉장하다. 진짜만이 진짜를 육성할 수 있다. 와일드스미스가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린 작품은 아이들에게 ‘세상은 이렇게도 아름답다’는 것을 가르쳐줬다.
그가 1989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어느 초등학생이 와일드스미스에게 감동을 전했다. “물고기 등이 정말 아름다워서 도감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멋집니다.” 이에 와일드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나는 ‘이런 물고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나무도 내가 보고 느낀 대로 색칠합니다. 사진 속의 색깔과 달라도 상관없어요. 왜냐하면 내 눈으로 보고 내 마음으로 느낀 것을 그리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것이 학생의 마음에 아름답게 비친 것이겠지요. 정말 기쁩니다.”
어떤 사람이 같은 영국 화가인 윌리엄 터너의 그림을 보고 “이런 석양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터너는 “이런 석양을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느냐”라고 물었다.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생명을 바라보면 그만큼 세상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와일드스미스의 그림에 등장하는 만물(萬物)은 모두 이렇게 노래한다. “내 생명은 아름답습니다.” “당신도 더없이 소중한 생명입니다.” 팔이 움직인다. 눈이 보인다. 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가. 말을 할 수 있다. 그 말소리가 사람 귀에 들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 얼마나 불가사의한 일인가. 생명의 일거수일투족, 나날의 순간순간이 얼마나 신비롭고 경탄(敬歎)스러운지 느낀다면 사람은 인생을 더 정성껏 살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길 것이다.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가 그린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의 아동 도서 세 권
내가 <벗나무>, <눈나라 왕자님> 등의 창작동화를 써서 전하고자 한 것도 이처럼 우주를 가득 채우는 커다란 사랑이었다. 와일드스미스씨가 내 동화를 읽고 공감해 최고로 멋진 그림을 그려준 일은 정말 큰 기쁨이다.
‘커다란 사랑’ 하면 그를 내조하는 강인한 오렐리 부인이 생각난다. 결혼 당시, 와일드스미스씨는 미술교사를 하면서 밤에는 날마다 잠자는 시간을 줄여 책 표지 그림을 그렸다. 부인은 “교사를 그만두고 당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에 전념하라”고 조언했다.
와일드스미스는 교사를 그만두고 나서야 부인이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 “아내는 만약 내가 교사 시절, 임신한 사실을 안다면 가정 형편을 걱정해 교직을 그만두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나를 행복 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줬습니다.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부인과의 첫 만남도 동화처럼 아름답다. 열일곱 살 소년은 호수 위에 지어진 집에 있는 오래된 조각상을 그리러 갔다. 그러자 옆에서 이를 열심히 들여다보는 주근깨 얼굴을 한 소녀가 있었다. 열네 살 소녀 오렐리는 스케치북을 보고 소리를 내며 한 바퀴 돌더니 만족스럽게 웃었다고 한다. 영원한 사랑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와일드스미스씨가 쓴 그림책 중 <회전목마>라는 책이 있다. 로지라는 소녀의 이야기다. 로지는 해마다 열리는 축제에서 회전목마를 타는데, 어느 해 겨울 로지는 그만 큰 병에 걸리고 만다. 의사는 낫겠다는 희망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톰은 친구들과 상의한 뒤, 로지를 격려하기 위해 그림을 그려 보낸다.
로지가 받은 그림은 임금님 의자, 캥거루, 유니콘, 그림 하나하나가 회전목마였다. 그리고 톰은 회전목마 오르골을 선물로 보냈다. ‘아 타고 싶다! 타고 싶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목마를 타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그날 밤, 로지는 회전목마를 타고 별이 빛나는 하늘로 날아가는 꿈을 꾸었다. 소녀의 마음에 희망의 날개가 생긴 것이다. 와일드스미스씨도 꿈과 희망이 필요한 친구들, 전 세계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그림을 선사하고 있다.
본디 생명은 생명을 살리려고 한다. 와일드스미스씨는 집에서 바닉이라는 개를 키웠다. 그런데 개가 뇌종양에 걸렸을 때 세리프라는 이웃집 개가 아침마다 찾아와 문을 열어줄 때까지 계속 짖었다. 그리고 바닉을 발견하면 옆에 앉아 병을 고쳐주려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핥으면서 저녁 때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셰리프는 바닉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날마다 찾아와 그렇게 했다고 한다.
점점 나빠지는 교육 환경을 걱정하는 스에게 “소년·소녀의 마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좋은 씨앗’을 심어주고 싶다”고 말하자 그는 크게 수긍하며 이렇게 말했다. “ ‘좋은 씨앗’을 잘 길러 ‘풍요로운 인간’의 숲으로 사회를 가득 메우고 싶습니다. 그 ‘나무’를 자르지 않고 소중히 기르면 반드시 이 세상을 낙원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첫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그가 보내준 그림 중 코끼리 등 위에 사자, 그 위에 표범, 그 위에 곰, 그 위에 소녀가 올라타 별을 붙잡는 그림이 있다.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하늘에 손을 뻗으면 거기에 인생의 별이 있습니다.
이케다 다이사쿠 씨와 함께 아이들에게 그 점을 일깨워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