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사람으로서, 19살 때 스승 도다 조세이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일본이 문화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전쟁의 비극을 극복하려면 오직 문화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 이케다 다이사쿠 (신 인간혁명에 대한 고찰, 후지미술관, 미의 성: 세이쿄신문, 11월 19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청년문화페스티벌 참가자들을 격려하는 이케다 선생님 (1994년)
창가학회 청년부의 리더였던 이케다 선생님은 많은 혁신안을 내놓았는데, 그중에 하나가 학회에 문화 요소를 도입한 것이었다. 이케다 선생님이 20대 중반이었던 1954년도에는 창가학회 음악대를 창설했다. 초기에는 소수의 멤버로 구성된 음악대는 회합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기성세대 지도자들 중에는 이러한 혁신이 종교 운동에 불필요하거나 부적절하다고 생각해 비협조적이었다. 그러나 이케다 선생님은 단호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구상을 실현시키려고 하는 나의 유일한 목표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동지에게 무한한 힘을 주기 위해서다.” 이 발언은 삶에 있어서 예술과 문화적 차원의 강력하고 필수적인 역할에 대한 그의 강한 신념을 분명히 한다.
오늘날 일본 전국에는 합창단과 마칭밴드, 교향악단을 구성하는 창가학회 문화부 멤버가 2만명이 있다. 대다수는 실력이 있고 성공적인 그룹이 되었다. 창가르네상스뱅가드 마칭밴드는 2002년부터 일본의 탑 마칭밴드로 열번 이상 선정됐다. 또, 중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과 함께하는 문화 교류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케다 선생님은 창가학회 예술부도 창설했다. 예술부는 다양한 예술 분야에 속한 멤버들이 불법자로서의 사명을 자각하고 예술을 통한 사회 공헌이라는 고유하지만, 공통적인 이상을 개발하는 수단이 되었다. 1963년에는 예술부 멤버들의 재능을 엿볼 수 있는 창가학회 문화제가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예술부의 수는 1962년 창립 당시 20명에서 5년 후에는 1만 명으로 늘어났다. 문화제는 전국 공공장소에서 열렸으며, 이는 창가학회의 전통이 되었다.
미국 문화제에서 공연하는 SGI 청년들 (2010년)
이케다 선생님은 문화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문화제가 이데올로기를 고취하는 장이 아니라 예술이 “정신의 승리와 인간 생명의 개화”라는 원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개개인이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우인의 행복과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힘쓸 때 진정한 환희가 생긴다. 이러한 환희를 노래와 춤, 드라마 같은 공연으로 구체화시킬 때 훌륭한 예술이 탄생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케다 선생님은 1975년에 국제창가학회(SGI)를 설립했다. 이는 확장하는 니치렌 불교도의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공식화했다. 또, 학회의 사회적 동기인 평화, 문화, 교육을 진전시키는 것을 SGI의 핵심 목표로 정했다. 따라서 문화는 학회 활동의 핵심이다.
이케다 선생님은 문화를 고취시키는 것과 불법을 알려가는 노력을 구별하는 반면, 문화와 예술, 종교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본다. 그는 T.S. 엘리엇 시인을 인용하면서 “문화가 종교의 부재 속에서 보존되고, 확대되며 발전한다”는 것은 보편적인 오류라고 말한다. 이케다 선생님은 “훌륭한 종교의 정신성은 문화와 예술이라는 아름다운 꽃의 개화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무형이지만 소중한 우리의 정신성인 내면의 생명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명확하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고, 들을 수도 없는 것을 인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가? 나는 인간 정신의 개척과 풍부함이 인간성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풍부함이 문명을 위대하게 만드는 내적 나침반을 제공한다.”
여기서 특히 문명을 이끄는 능력이 있는 문화의 넓은 정의는 학계를 포괄한다. 이케다 선생님은 전 세계에 있는 SGI 단체에서 학계에 속한 사람들이 불법 철학에 기반을 둔 사회 공헌이라는 이상을 함양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술부와 같은 문화부 설립을 이끌었다. 전 세계 대학교에서 실시한 이케다 선생님의 강연은 같은 목적에 기반을 둔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