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백설의 후지가 보이는 새파란 하늘 모든 것이 시(詩)며 그림이며 음악이다 하치오지(八王子)여! 밝은 빛이 이 천지를 감싸안은 겨울의 어느 아침 나는 아내와 둘이서 성터에 섰다 성 밑 다키야마 가도(街道) 앞에는 지성(知性)의 전당 번영하는 우리 소카대학교가 빛나 보였다 이어지는 언덕이 늘어선 꽃처럼 우아한 창가여자단기대학의 배움터도 빛나고 있었다. 이 역사의 천지는 조용했다 저 건너의 복잡한 소동은 전혀 관계 없다 한 걸음 내딛으면 일체의 것이 조용히 일체의 것이 푸르게 생기로 가득 차 아름답다 멋진 흰 구름을 바라보면서 너무도 은근히 너무도 투명하게 감싸인 별천지 이미 무사시노에는 저 정겨운 물레방아도 초가집도 드물어졌다 그러나 아직도 무한한 세월을 타고넘어 지금도 남아 있는 아름다운 자연의 시가(詩歌)의 보고(寶庫) 있으니 그 이름하여 다키야마 성터 맑은 공기에 둘러싸여 나무 늘어선 터널은 계속된다 낙엽이 쌓인 길은 마치 고아(孤兒)와도 같은 외로움 숲을 향해 호소하고 있다 역전의 용사가 축배를 들고 많은 전사들이 오르내리던 좁은 길을 걸으며 우리 부부는 정상으로 향했다 상쾌한 녹음이 우거진 작은 길 양쪽에는 이를 악물고 살아가는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자랑하듯 잊을 수 없는 거목이 솟아 있다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식물의 모습을 보이면서 밀어내듯 솟아오른 언덕 비탈 가득히 수놓는 아름다운 단풍이여! 붉게 물든 낙엽은 길은 체념의 정적(靜寂)으로 감싸인 길을 덮고 있다 산들거리며 부는 바람에 가지마다의 잎은 일제히 반짝이며 꼭두서니 빛 눈보라로 춤추었다 적적하여 사람 그림자는 없고 때때로 문득 들려오는 많은 들새의 노래도 마음을 씻어 준다 재빠르게 새 그림자 날아가고 즐겁게 살아가는 새 소리는 나무 숲 속으로 멀리 사라진다 나뭇가지 끝 틈새로 눈부시게 부서지는 아름다운 햇살은 가느다란 잎 끝 생명 하나하나에 빛나는 따뜻한 자광(慈光)이 수풀로 퍼져 간다 높은 벼랑에 다다르면 저 멀리 다마(多摩)의 청류(淸流)가 은실을 꼬듯이 맑게 펼쳐지는 대공(大空)은 한 조각 희미한 구름을 날려보냈다 그 옛날 목소리 드높이 무사들의 행렬이 교차한 이 길 어느 때는 소리 드높이 승리의 노래를 부르면서 어느 때는 완전히 지쳐 새로운 결의를 가슴에 오늘도 싸우고 내일도 지키겠다고 수많은 갑옷 투구의 빛과 소리가 떠오르는 태양이 빛나는 가장 사랑하는 전우(戰友)인 군들과 함께 불패(不敗)의 인생을 장식하겠다고! 또 어느 때는 깊은 한숨을 쉬면서 눈물도 없이 말도 없이 침묵의 발자취를 남긴 이 길 어느 때는 모포로 전우를 감싸 정성껏 머리 위부터 지키면서 결별을 강요당한 싸움과 인생을 조정하던 이 역사의 길 거칠어진 환상(幻想)의 무사 떠들며 웃던 방황의 이 대지 눈에 선하다 ― 봄에는 수천 그루 벚꽃의 눈보라 여름에는 모든 것을 기탁하며 흔들리지 않는 녹음진 대수(大樹)가 줄지어 서 있다 가을에는 떠들썩한 벌레 소리의 훌륭한 교향곡이 겨울에는 삶과 진실을 말해 가는 은세계의 강한 수림(樹林) ― 그 사계절마다 우리 창가의 영재가 찾아온다 어느 때는 강철의 심신(心身)을 연마하는 ‘다키야마 성터 코스’를 달리기 장소로 어느 때는 젊은 다 빈치들의 미(美)를 연마하는 아틀리에로서 ― 그 창조력 넘쳐 흐르는 그림은 해외에도 출품되어 원숙한 화백들로부터 절찬을 받았던 창대의 수재(秀才)여 어느 때는 시간 지나는 것도 잊고 생애의 우정을 깊게 하는 대자연의 대화의 광장 어느 때는 세계의 유학생들이 즐겁게 젊은 국제친선의 모임터로 또 어느 때는 괴로운 마음을 안고 철학과 사색의 추억이 담긴 나의 길이 된다 아주 새로운 창대 본부동의 창에서도 푸르게 우거진 성터를 한눈으로 내려다볼 수 있다 내 마음은 늘 창대생과 함께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장소에 서서 같은 공기를 호흡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창대생을 지키고 키워 드넓게 감싸 주는 지금은 없는 성주(城主)에게 경의(敬意)의 말을 보낸다 “소중한 내 아들 귀중한 내 딸을 보살펴 준 것에 감사!” 옛날에 이 곳은 격전 또 격전의 싸움터였다 몇 번인가 풍운이 일지라도 단호히 지킨 난공불락의 이름난 성(城) 천수각(天守閣)도 돌담도 없는 천연의 계곡이나 벼랑을 이용한 간토 굴지의 산성(山城)인가 특히 1569년 오다와라의 호조 공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케다 신겐은 다키야마 성을 도중의 재물로 하여 하이지마 숲에 진을 치고 2만의 병사를 파견했다 반격에 나선 다키야마 성의 장병 그 수는 불과 2천 명 하지만 신겐의 계획은 빗나갔다 “왜, 떨어지는가.” “뭘 꾸물꾸물거리며 시간을 허비하는가.” 성주 호조 우지테루는 지시했다 “전원, 성을 베개 삼아 장렬하게 전사할 것.” “적을 한 발짝도 들여 보내선 안 된다.” 총대장 우지테루가 가장 먼저 적진에 뛰어들어 용감하게 진두지휘를 잡았다 뒤따르는 2천의 정예 의기 충천하여 무적이었다 “우리의 성을 반드시 지킨다!” “목숨이 있는 한 싸운다!” 바깥 성곽까지 밀리면서도 단호히 지켰다 더욱이 자진해서 출정한 병사는 이런 신겐의 아들 가쓰요리를 철저히 위협했다 저 신겐은 마침내 퇴각했다 오, 영예로운 다키야마 성터여! 성의 병사는 ‘나의 성’을 엄연하게 끝까지 지켰다 이윽고 우지테루는 하치오지 성으로 옮겨 다키야마 성은 잡초 우거진 폐허의 성이 된다 몇 백 년의 사계(四季)는 돌고 돌아 깊은 해자(垓子) 터에는 지금도 무사가 있는 듯 큰 저택의 평지는 당시 그대로 남아 있다 무장들이 달 그림자를 술잔에 띄우며 군고(軍鼓)를 하늘 높이 울렸던 그 때 그대로 수백 년도 단 하루처럼 역사는 여기서 걸음을 멈추고 정밀(靜謐)한 숲과 꽃의 낙원으로 인생과 미래 그리고 평화를 호흡하고 있다 그 다키야마 성터와 우리 소카대학교 ― 그것은 마치 형제처럼 친구처럼 이웃하여 끊을 수 없는 인연은 두 군데 푸른 언덕으로 영원히 역사에 남는다 아침에 일어나 여전한 양광(陽光)이 미소지으며 저녁의 잠을 성좌(星座)는 똑같이 지켜왔다 같은 풍설(風雪)을 맞으면서 개인 날에는 멀리 후지의 전망을 사이 좋게 나누고 있다 과거 전쟁의 요새는 신생 평화의 요새를 조용히 지켜 보고 있었다 창대 건학에서 30성상 다키야마 성터는 하나 또 하나 늘어 가는 배움터의 건설의 망치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젊은이가 마음껏 배우고 단련하여 둥지를 떠나는 그 청춘의 당당한 모습을 따뜻하게 배웅해 왔다 그들이 찾아오면 고뇌도 슬픔도 괴로움도 기쁨도 감동도 희망도 모두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그것으로 괜찮다”고 크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 어느 때 나는 창대생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와 제군들은 일심동체다 그 누구도 우리들 사이를 갈라 놓을 수는 없다.” 또 어느 때는 휘호(揮毫)했다 “나는 제군들을 평생 지킨다 그것이 나에게는 최대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제군들을 위해 길을 개척한다 ― 그것이 나의 전부다 “내 인생의 만년은 여기 하치오지에서 보내고 싶다 창대생을 지켜보며 육성하면서 ….” 되풀이하여 말해 왔다 나의 거짓 없는 심정이었다 우리 창대 캠퍼스에서 더욱 많은 시간을 제군들과 함께 보내고 싶다 할 수 있는 것은 뭐라도 해 주고 싶다 소카대학교는 나의 생명이며 삼세를 살아가는 동지이기 때문이다! 어떤 거목(巨木)도 또 대수(大樹)도 처음에는 대지 속에 작은 씨눈 전력으로 양분을 빨아들이고 늠름한 뿌리를 길러 전력으로 흙을 헤치며 많은 뿌리를 뻗어 단단하게 대지와 맺어간다 그 곳이야말로 단단한 지면을 뚫으면서 풍상에도 감연히 흔들리지 않고 엄연하게 쭉쭉 자기 자신답게 높고 높게 크고 크게 성장해 가는 것 내가 경애하는 창가의 학우여 청춘은 강하여라! 인생도 또 강하여라! 철저하게 단연코 강하여라! 그 곳에 일체의 승리가 있기 때문이다! 끝까지 배워라! 철저하게 단연코 끝까지 배워라! 거기에 엄한 현실의 승리를 쟁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의 부질없는 감상에 결코 지면 안 된다! 그대 자신의 흉중을 제패해 가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 이것이 현실의 인생이다 일생이다 아무튼 눈앞의 과제에 용감하게 지성의 영웅답게 도전하는 것이다 초조하게 굴지 말라 물러서지 말라!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단지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이것이 승리하는 청춘이기 때문이다 군은 어디까지나 군답게 군 자신의 길을 가면 된다! 건학의 정신에 군다운 각자의 형태를 만들며 빛나게 하는 것 ― 그것이야말로 내가 기대하는 군들의 사명이다 전국의 대학부와 연대하면서 또 전 세계의 친애하는 대학부와 21세기의 대무대에 활약해 갈 것을 생각하면 너무도 기대가 크고 신념이 솟아오른다! 하늘을 찌르는 삼나무 윤기나는 줄기의 물푸레나무 너구리, 졸참나무, 벚나무 … 다키야마 성터 언덕도 또한 온갖 나무가 제각기 개성 풍부하게 우뚝 서서 그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의 사슬로 묶여 있다 군들과 ― 유대도 두터운 형이나 누나도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다 모교를 사랑하며 긍지로 여기며 모교를 영원히 빛내기 위해 현실사회의 거친 파도에 발버둥치면서 진지하게 싸우고 있다! 그 강하게 빛나는 혼이 창립자에게는 무엇보다 기쁘다 창가동창의 벗들의 활약을 들을 때 얼마나 가슴이 뛰던지 슬픈 소식을 들을 때 얼마나 가슴이 아팠던가 이 마음은 창립자가 아니면 절대로 알 수 없다 나는 영원히 제군과 함께 있다! 나는 영원히 제군의 편이다! 잠시 후 구름은 동에서 서로 흘러 숲의 그늘이 조금 진해지고 있었다 힘껏 밟은 마른 풀 밑에는 대지로부터 새싹이 트고 올려보는 나뭇가지에는 조그만 견고한 싹이 한풍(寒風)을 견디면서 지금인가 지금인가 하고 봄을 그토록 기다리고 있었다 늠름하게 솟아 있는 가로수의 개선문 저편에 새빨간 석양빛을 흠뻑 받으며 창대 본부동이 유연하게 솟구쳐 보였다 봄 ― 그것은 서기 2000년의 봄 무사시노 언덕에 다시 화창한 빛이 충만하여 가는 곳마다 녹음이 숨쉬고 떨어진 벚꽃이 어지럽게 수놓는다 나는 봄을 기다린다 그것은 창가의 학우가 21세기의 대공(大空)으로 날아가는 때! 제3의 천년의 캠퍼스에 새로운 젊은 생명을 맞이한다 가슴 뛰는 개학 30주년의 때! 그리고 세계로 희망의 빛을 보내는 봄! 나는 기다린다 오로지 기다린다 군들의 성장을! 군들의 승리를! 군들의 영광을! 21세기로 향하는 나의 창대생의 빛나는 눈동자를 주시하면서 2000년 음력 정월 계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