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역사와 경륜을 자랑하는 이곳 스페인 아테네요문화학술협회에서 강연할 기회를 주신 것은 저에게 최대의 명예라고 생각합니다. 애써주신 로페스 베레스 회장을 비롯해 관계자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21세기까지 앞으로 5년 반. 세계는 그야말로 카오스(혼돈) 일색으로 빈틈없이 칠해져 있습니다. 공산주의가 붕괴하면서 요란하게 개막 종이 울리는 것처럼 보이던 민주(民主)의 무대도, 몇 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암전(暗轉)해버려, 시대는 문자 그대로 ‘세기말’의 암운에 뒤덮여 있습니다.
민족과 종교가 뒤얽힌 쟁란(爭亂)은 그치지 않고, 본래대로라면 인간성에 불가결한 색채인 문화나 문명마저도 대립과 상극의 불씨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냉전구조의 붕괴는 우리의 의도나 기대와는 정반대로 펼쳐져,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활짝 열어놓은 듯한 착각마저 듭니다.
이런 시류(時流)에 편승하면서, 21세기 문명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어떤 관점이 필요할까요.
현재 가장 많이 논의되는 점으로는 21세기 문명은 근대의 산업문명, 과학문명의 연장선상에서 고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라는 근대산업문명의 모습을 이대로 밀고 나가면, 조만간 인류사회의 파국을 맞이하고 말 것은 명백합니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한 유엔환경개발회의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선택했는데, 어쨌든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각별한 영지(英智)의 결집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저는 불법자(佛法者)의 처지에서 시대정신의 심층(深層), 즉 유럽이 주도한 근대문명의 에토스(도덕적 기풍)라고 할 것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호소하고 싶습니다.
거기까지 빛을 비추지 않는다면 쉽게 타개의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대의 폐색(閉塞)상황은 심각해졌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인류사적 과제를 앞에 두고 저의 뇌리에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것은, 귀국의 탁월한 사상가 루이스 디에스 델 코랄 박사의 통찰입니다
코랄 박사는 30여년 전, 문화사절로서 일본을 방문해 많은 강연 등을 통해 일본에 강한 인상과 다대한 감명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코랄 박사가 근대문명의 에토스로서 발견한 점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프랑스혁명이 미친 정치나 법률 등 표층적(表層的) 차원이 아니라 ‘인간존엄에 대한 새로운 감각’이며, 또 ‘인간 본래의 힘에 대한 상상을 초월한 신뢰’입니다. 그리고 ‘이 지상(地上)에서 인간생존에 대한 유효적확(有效的確)한 지배’입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저 괴테가 비극 《파우스트》에 묘사한 것과 같은, 파우스트적 자아(自我)의 발양(發揚)입니다. 탐욕스러울 정도로 인식하고 행동하고 지배하려고 하는 근대정신의 정수(精髓)이며, 근대유럽이 세계를 석권할 수 있게 한 역사적 원동력이었습니다.
말할 나위도 없이 그것은 근대정신, 근대문명이 에토스의 ‘빛’에 해당하는 부분이지만, 또 거기에는 반드시 ‘그림자’라고 할 부분이 붙어 다닙니다.
그 한계와 정체(停滯)는 ‘근성이 다 없어져 고난의 연옥(煉獄)을 횡단하는’ 파우스트에 비유되는 그대로입니다.
제가 왜 이런 사관(史觀)에 주목하는가 하면, 근대문명의 위치부여나 인식방법이 ‘반시대(反時代)’적이 아니라, 유독 ‘변증법’적이기 때문입니다.
선진 여러 나라에서 컬트집단의 횡행이 상징하듯이, 세기말의 어둠이 깊으면 깊을수록 사람들의 눈은 ‘반근대(反近代)’ ‘반시대(反時代)’적으로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근대문명의 ‘빛’과 ‘그림자’, ‘정(正)과 부(負)’를 엄격히 분별하고 ‘빛’과 ‘정(正)’을 올바르게 계승하는 ‘변증법’적인 사관(史觀)이 아닐까요.
이런 관점에서 숙고하면 우리가 근대문명의 에토스에서 무엇을 계승해야 할지는 명백해집니다. 그것은 진보나 창조, 도전이나 개척, 자발이나 능동 등의 말을 붙이기에 적합한, 어느 시대에나 변하지 않는 인간성의 보편적인 미질(美質)입니다.
나날이 새롭게 사회나 자연에 작용하고 교류하면서 환경과 동시에 자기자신마저도 갱신하는 인간생명의 의욕적이고 다이나믹한 발현(發現)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21세기 문명의 에토스형성에도 주요한 역할을 다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계승작업에서 불가결한 것은 근대문명의 ‘그림자’와 ‘부(負)’를 어떻게 바로잡고 궤도를 수정하느냐입니다.
저는 유원(悠遠)한 불교의 역사에 축적되어온 정신적 유산이 그러한 21세기 문명이 안고 있는 과제에 크게 공헌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율(自律)’ ‘공생(共生)’ ‘도야(陶冶)’의 세 가지 각도에서 저의 소견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근대문명이 궤도를 수정해야 할 것은 첫째, ‘자율(自律)’이 아닐까요. 파우스트의 고뇌는 자율을 구하다 끝내 얻지 못한 비극입니다.
“자신의 자아(自我)를 인류의 자아로까지 넓혀 결국에는 인류와 함께 멸망해보자.”고 용감하게 매진하는, 겁 없고 불손한 파우스트는 자율을 가장한 자신의 오만을 결국 맹목과 죽음으로 갚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파우스트가 연기한 것은 참된 비극이었습니다.
20세기에 접어들어 귀국이 자랑하는 세계적 철인(哲人)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자기를 규율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산문적(散文的) 상황을 향해 예리한 화살을 쏘았습니다.
“우리의 시대는 모든 사상(事象)을 정복하면서도 (중략) 자기자신은 너무나도 풍요로움 속에 파묻혀 자신의 모습을 놓쳐버린 것같이 느끼는 시대이다.”
오르테가가 이렇게 쓴 이래 반세기 넘게 지났습니다만 사태는 전혀 개선될 징조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종교적 권위라는 타율(他律)로부터의 해방을 구가한 근대문명이 마침내 도달한 20세기가, 파시즘이나 코뮤니즘이라는 사이비종교적인 타율적 권위가 굉장히 맹위를 떨친 시대였다는 것은 인류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불교에서는 ‘안온(安穩)’이나 ‘해탈(解脫)’, 나아가서는 ‘선정(禪定)’ 등의 정신상태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말은 달라도 모두 자기의 내면세계를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를 설한 것으로, 불교에서 ‘자율’은 모든 영위(營爲)에 앞서고 그것 없이는 모두가 사상누각이 되어버릴 요체(要諦) 중의 요체입니다.
실제로 불전을 펼쳐보면 ―
“타인에게 가르치는 대로 스스로도 행하라. 자신을 잘 조절하는 사람만이 타인을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는 실로 제어하기 힘들다.”
“전쟁터에서 백만의 적을 이기기보다도, 한 사람의 자기를 이기는 것이 최상의 전승자(戰勝者)이다.”
이런 말은 일일이 들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불설(佛說)이 의도하는 바를 한마디로 말하면 ‘자율’의 권유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타율적인 종교적 속박과 결별하려고 한 근대문명의 에토스와는 조금 다릅니다.
또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확립을 지향한다고는 해도 파우스트적 자부(自負)와는 분명히 일선(一線)을 긋는 ‘자율적 구도’라고 할 것을 불교에서는 설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석존(釋尊)이 특히 만년(晩年)에 강조한 ‘자귀의(自歸依), 법귀의(法歸依)’라는 구도(構圖)입니다.
석존 최후의 설법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주(洲)로 하고, 스스로를 의처(依處)로 하되 타인을 의처로 해서는 안 된다. 법(法)을 주(洲)로 하고, 법을 의처로 하되 다른 것을 의처로 해서는 안 된다.”
즉 자기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의처로 삼으면서도 타인이나 외부의 일에 분동되지 않는 부동(不動)의 자기를 구축해야 한다. 그 부동의 자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홀로 고고한 아견이나 오만을 배제하고, 철저히 법을 의처로 삼는 — 그래야 참된 ‘자율’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자귀의, 법귀의’의 구도(構圖)입니다. 제가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법(法)’을 철두철미하게 ‘내재(內在)’적으로 설했다는 점입니다.
생명에 내재하기 때문에 ‘법’의 작용은 인간이 언제 그것을 자각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습니다. 부처는 ‘각자(覺者)’라고 해서, 그 자각이 최고도에 달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자각이란 ‘자율’과 거의 동의어입니다.
따라서 부처라는 위대한 각자(覺者)에게 최대의 고뇌는 ‘미혹이 많은 인간에게 이 자각이 가능한가? 가능하다고 해도 인생의 거친 파도 속에서 과연 자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난문(難問)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석존이나 니치렌(日蓮) 대성인은 최고의 종교적 자각을 얻은 후 그 ‘법’을 민중에게 설하기에 앞서 몇 번이나 거듭 망설였습니다. ‘법’의 내재적(內在的) 자각은 확실히 인류사적인 난문입니다.
그러나 이 일점을 피하고 ‘법’을 외재화(外在化)하면 금방 그것은 타율적 규범이 되고, 인류 앞에 ‘자율’의 길은 여전히 닫혀버릴 것입니다. 외재화된 ‘법’이 대부분의 경우 성직자나 권력자에게 이용당하고 인간을 노예적 지위로까지 깎아 내린 사실은, 많은 종교적 비관용성이 더듬어온 피투성이의 길에서 보아 명백합니다.
그러므로 귀국의 위대한 언어학자 메넨데스 피달이 다음과 같이 묘사한 스페인 정신사의 미적 특질 또한 내재적·자율적 규범을 지향하는 것으로서, 저는 마음으로 성원을 보내고 싶습니다.
즉 “결핍에 견디는 데에 견인불발(堅忍不拔)의 스페인 사람은 인간으로 하여금 모든 역경을 뛰어넘게 하는 지혜의 규범 즉 ‘견인(堅忍)하고 절제하라’를 가슴속에 갖고 있다. 그 내부에 본능적이고 기본적인 특수한 스토이즘(금욕주의)을 안고 있다. 즉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세네카주의자이다.”라고.
둘째, ‘공생(共生)’ — 함께 살아간다는 관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비극>의 첫머리에 파우스트는 다음과 같이 독백(獨白)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다. 하나하나가 서로 살아서 작용하고 있다.”
이 말에는 우주의 삼라만상이 서로 관련하고 의존하면서 절묘한 하모니를 연주하고 언제까지나 유전(流轉)하는 ‘공생’의 생명감각이 맥동합니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대자연이나 대우주와 자유자재로 교감하는 이런 대범한 생명감각은 현대인과는 아득히 연(緣)이 멀어져 버렸습니다.
말할 나위도 없이 현대문명의 기조는 자연을 인간과 대립시키고 인간의 지배·정복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계속 인식해왔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인간 자신의 고립과 자기소외는 파우스트적 자아의 악마적 측면이 불러온 귀결이라고 할 것입니다.
많은 지성인이 지적하듯이 21세기 문명의 지평(地平)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이런 자연관·우주관의 궤도를 수정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최근 수년간 ‘공생’이 미래의 세기를 향한 키워드로서 갑자기 각광을 받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 점에서 불교에서는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사회나 자연, 우주 등의 환경을 불가분의 것으로서 인식하는 관점을 일관해서 가져왔습니다.
그런 관점 중 하나에 ‘의정불이(依正不二)’라는 원리가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정보(正報)’는 우리 자신을, ‘의보(依報)’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의미합니다.
우리 자신과 환경은 항상 일체불이(一體不二)로서 서로 영향을 끼치고 상호침투하면서 조화를 유지한다는 것이 불교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이런 지견(知見)이 포스트 모던에서 말하는 지(知)의 패러다임(범형範型)으로서 크게 주목받는 사실은 여러분도 잘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불법(佛法)의 인식방법에 따르면 ‘인간’과 ‘자연’이 이루어내는 하모니는 결코 정적(靜的)인 이미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창조적 생명이 다이나믹하게 맥동하는 활기에 넘친 세계입니다. 그 다이너미즘은 계승해야 할 근대문명의 에토스라고 앞서 말씀드린 ‘진보’나 ‘창조’, ‘도전’이나 ‘개척’ 같은 능동적 에너지를 남김없이 포함하는 넓이를 갖고 있습니다.
‘정보’와 ‘의보’의 그런 다이나믹한 관계를 불전에서는 간결하게 “정보(正報)가 없으면 의보(依報)도 없다. 또 정보는 의보를 가지고 이를 만드느니라.”(어서 1140쪽)라고 합니다.
먼저 앞부분의 “정보가 없으면 의보도 없다.”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죽는다 해도 인류는 존속하고, 극단적으로 말하면 인류가 멸망해도 그것이 우주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의보’의 존재 자체를 ‘정보’ 속에 포함시켜 “정보가 없으면 의보도 없다.”고 단언한 것은, 인간과 환경이 불가분임을 객관적으로 묘사했다기보다 종교적 확신에 근거를 둔 주체적 결단입니다.
그 결단의 근거를 불교에서는 ‘일념(一念)’이라고 부릅니다.
“정보가 없으면 의보도 없다.”는 그 ‘일념’의 지평을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초월한 우주대의 ‘대아(大我)’로까지 확대하라는 촉구이며, 더 나아가서 말하면 그 결단에 어울리는 삶의 방식, 대승불교에서 보살도(菩薩道)라고 부르는, ‘소아(小我)’를 떠나 ‘대아(大我)’에 선 삶의 자세를 요청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주체적 결단만으로 끝난 것이면 독아론(獨我論)이나 유심론(唯心論) 혹은 파우스트적 독존(獨尊)으로 빠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불전의 뒷부분에서는 “정보는 의보를 가지고 이를 만드느니라.”라고 최신의 생태학적 관점을 선취한 듯한 보충이 있어 ‘의정(依正)’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환경에 대한 따뜻한 눈길로 “정보가 없으면 의보도 없다.”는 단호한 의지는 적절히 융화되어, 인간과 환경이 다이나믹하게 상호침투하는 참된 ‘공생’의 자세로 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불교의 ‘의정불이론(依正不二論)’이 오르테가철학의 정수인 “나는 나와 나의 환경이다. 그리고 만약 이 환경을 구하지 않으면 나마저도 구할 수 없다.”는 명제(命題)에 놀랄 만큼 친근해 있음을 느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나와 나의 환경이다.”라는 말은 “정보가 없으면 의보도 없다.”와 마찬가지로 자아(自我)를 ‘대아’로 확대하기를 지향한 게 아닐까요.
“환경을 구하지 않으면 나마저도 구할 수 없다.”는 말에서는 “정보는 의보를 가지고 이를 만드느니라.”와 같은 공생을 향한 힘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따라서 그 오르테가의 “문명이란 무엇보다도 먼저 공존(共存)을 향한 의지이다.”라는 말과, 또 대사상가 우나무노의 “강자(强者)는, 근원적으로 강한 사람은 이기주의자가 될 수 없다. 충분히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은 스스로의 힘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법이다.”라는 말을 접하고, 저는 거기에서 대항해시대 이후, 수백 년간의 시련을 거쳐 귀국의 정신수맥이 계속 흘러온 ‘공생’의 에토스, ‘세계시민’의 에토스의 일단(一端)을 엿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또한 대승불교의 정수인 보살도(菩薩道)와도 깊이 공통되어 있습니다.
셋째, ‘도야(陶冶)’라는 관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에도 근대문명이 잊어온 맹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대의 산업문명은 편리나 효율, 쾌적함 등을 추구하여 수백 년 동안 똑바로 달려왔습니다. 그 결과 전에 없던 부(富)를 축적하게 되어 물질적인 측면에서는 선진국의 일반시민은 옛날의 왕후귀족도 미치지 못할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대가로서 이른바 산업사회의 트릴레마(삼자택일의 궁지)라는 것 — 즉 ①계속 증가하는 인구를 부양해야 하는 경제발전, ②고갈된 자원과 에너지, ③환경파괴 이 삼자가 서로 규제하고 모순되는 복잡한 연쇄구조 등 난제(難題)를 많이 안고 있는 것은 두루 다 아는 사실입니다.
여기에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산업문명의 진전이 생명력의 쇠약이라고 할까 내면세계의 열화(劣化)현상을 일으켜버린 사실이 아닐까요.
편리나 쾌적함을 추구한 나머지 어려움을 피하고 되도록 쉬운 쪽을 택하는 안이함에서 ‘도야’가 두 번째, 세 번째로 밀려난 것이 근대 특히 20세기입니다.
내면성의 도야를 게을리 한 것에 대한 ‘즉각적인 보복’을 가장 통절한 형태로 받고 있는 것이 구(舊) 사회주의국가일 것입니다.
저는 현재 고르바초프 전 소련대통령과 잡지에서 대담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는 급진주의의 잘못이라는 형태로 여러 번 언급했습니다.
“과격주의는 사물을 단순하게 결정지어버리고 싶은 유혹과 함께 완고한 것입니다. 20세기 들어 모든 어려움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불가사의한 해결법이 있다는 단순한 생각이나 성급한 결정 때문에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괴로움을 겪었습니까.”
“가장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것이 변혁과 진보를 흔들림 없는 것으로 한다는 19세기, 20세기의 사고방식은 잘못입니다.”
저도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프랑스혁명의 동향에 엄격한 눈길을 계속 보낸 괴테가 “내면적 훈련의 과정을 주지 않고, 단지 우리의 정신만을 해방하려는 그런 종류의 것은 모두 유해(有害)하다.”고 말한 경구(警句)를 지금 저는 떠올리고 있습니다.
‘내면적 훈련의 과정’ — 이는 즉 내면성의 도야입니다. 이것을 소홀히 하고 제도의 변혁만을 앞세우는 것에 대한 염려는 프랑스혁명에 대해 버크(영국의 사상가)가, 미국혁명에 대해 토크빌(프랑스의 역사가)이, 러시아혁명에 대해 간디가, 중국혁명에 대해 쑨원(孫文)이 뉘앙스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똑같이 표명한 점입니다.
현재 사회주의국가에 한하지 않고 자유주의국가도 포함하여 세기말의 인류사회에 횡행하는 물질주의, 배금주의(拜金主義), 윤리의 붕괴는 그들의 염려가 결코 기우(杞憂)로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오르테가가 60여년 전에 우려했던 ‘만심(慢心)에 찬 도련님’의 시대는 마치 오늘날과 같습니다.
예로부터 불교에서는 ‘인욕(忍辱)’을 수행의 기둥으로 삼아왔습니다. 또 석존(釋尊)이 임종 때 한 말이 “게으름 없이 수행을 완성하시오.”였듯이, 내면의 도야나 단련을 가장 근본적인 과제로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 점에 관한 니치렌 대성인의 훈계를 몇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쇠는 불에 달구어 두드리면 검(劍)으로 되고 …”(어서 958쪽)
“암경(闇鏡)도 닦으면 옥(玉)으로 보이는 것과 같다. 지금도 일념무명(一念無明)의 미심(迷心)은 닦지 않은 거울이며, 이를 닦으면 반드시 법성진여(法性眞如)의 명경(明鏡)이 되느니라. 깊이 신심(信心)을 일으켜 일야조모(日夜朝暮)로 또한 게으름 없이 닦을지어다.”(어서 384쪽)
“아직 단념하지 않노라. 법화경은 종자(種子)와 같고, 부처는 심는 사람과 같으며, 중생은 밭과 같으니라.”(어서 1056쪽)
이와 같이 내면세계를 도야하고 단련하기를 권유한 말은 어느 것이나 ‘칼’ ‘거울’ ‘밭과 작물’ 등 구체적인 사례에 빗댄 점에 유의하기 바랍니다
이런 농사일이나 손재주의 특징은 활자의 세계와 달리, 결과를 얻을 때까지 과정에 조금의 소홀함도 허락하지 않는 즉 요령이나 속임수가 통용되지 않는 세계입니다.
예를 들면 논에서 자라는 벼도 수확에 이르기까지는 무려 88단계라고 하는 절차를 밟지 않으면 안 되고, 어느 한 단계만 없어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명도(名刀)를 벼린다 해도, 거울을 닦는다 해도 같은 도리입니다. 단지 인격이나 내면성을 도야하는 작업만이 이 도리에서 벗어날 리는 없습니다. 소홀함이나 속임수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문명의 부산물이라고 할 ‘만심에 가득 찬 도련님’들은 이 도리에 등을 돌리고 ‘편하게 쉽게 살자, 간단히 결과만 손에 넣자’고 한 나머지, 오르테가가 말한 ‘참된 귀족에게 부과된 헤라클레스적인 사업’과는 연(緣)이 없는 중생이 된 느낌마저 있습니다.
그 결과 구 사회주의국가는 물론이요, 승리했다는 자유주의국가에서도 냉소주의나 배금주의가 횡행하는 ‘철학의 대공위(大空位)시대’를 불러왔습니다.
도야 없는 취약한 내면세계와 미증유의 대살육을 저지른 20세기의 비극적 외면세계는, 깊은 차원에서 서로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격도야의 이명(異名)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혁명’의 깃발을 높이 내걸고, 새로운 인간세기의 여명을 목표로 항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상, 저는 21세기 문명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요건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자율’ ‘공생’ ‘도야’의 세 가지 점으로 요약하여 말씀드렸습니다. 그것들이 연옥(煉獄)의 파우스트의 고뇌에 희망찬 서광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역사의 심판에 맡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걸음을 내딛지 않고는 두 걸음, 천 걸음도 없습니다. 저는 불법자(佛法者)의 한 사람으로서, 시련의 역사를 살고 있는 동시대인으로서, 여러 선생님과 함께 온 힘을 다해 미문(未聞)의 개척작업에 땀을 흘릴 결심입니다.
끝으로 귀국의 위대한 정신적 유산인 《돈키호테》의 한 구절을 말씀드리며 저의 이야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기사(騎士)는 세계 곳곳을 헤치고 편력(遍歷)해야 한다. 복잡하게 얽힌 미로(迷路)로 들어가야 한다. 한 걸음마다 불가능한 일에 감연히 맞서야 한다. 사람이 살지 않는 황무지의 한여름날 작열하는 폭염을 견디고, 겨울에는 눈보라 몰아치는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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