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로베르시 모나코 총장의 관대한 소개에 감사드립니다. 또 ‘닥터 링’의 영예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총장을 비롯해 볼로냐대학교의 여러 선생님과 내빈 여러분, 그리고 경애하는 학생 여러분, 오늘 세계 최고(最古)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곳 볼로냐대학교에서 강연할 기회를 주신 것을 저는 최대의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총장을 비롯해 관계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라체(감사합니다).가장 바쁜 시험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모여주시어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강연회에 참석한 학생들에게는 특별히 우수한 성적을 받을 수 있도록 총장님, 교수님들에게 삼가 부탁드립니다. (웃음, 박수)
오늘은 유엔에 관련해서 조금 논하겠습니다.
저는 유엔이 담당해야 할 글로벌(지구적)한 과제를 생각하는 데 이 볼로냐만큼 적절한 천지는 없으리라는 감개(感慨)를 가진 사람입니다.
5년 전에 도쿄에서 총장님, 부총장님과 회담할 때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주권국가의 틀을 초월해 유엔이 글로벌한 지평을 열기 위해서는 귀(貴) 대학의 900년 전통에 맥동하는 ‘보편성’ ‘국제성’의 기풍이 참으로 귀중한 재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13∼14세기에 귀 대학에는 그 명성을 경모하여 유럽 전토(全土)에서 학생들이 모여들어, 자치(自治)의 기풍도 드높이 국제적인 대학도시를 형성했다고 합니다.
그 의기충천한 모습은, 신성(神聖) 로마 황제(프리드리히 2세)의 횡포에 대해 학생들이 “우리는 한 차례의 바람에 굴복해버리는 호숫가의 갈대가 아니다. 이곳에 오면 그런 우리를 발견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는 에피소드에서도 잘 엿볼 수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러한 기개야말로 세계시민의 골격입니다.
우리 SGI도 유엔 NGO(비정부기구)의 일원으로서 여러 지원활동을 해왔습니다.
1982년 이후, 세계 수십 개 도시에서 ‘핵무기 — 현대세계의 위협전’, ‘전쟁과 평화전’, ‘환경과 개발전’ 등을 유엔과 공동으로 개최하여 지구적 문제들을 타개하기 위한 영지(英智)의 결집을 호소했습니다.
또 인간의 존엄을 호소하며 ‘현대세계의 인권전’을, 작년(1993년) 12월에는 ‘세계인권선언’ 45주년을 기념하고, 또 금년 2월에는 유엔 인권위원회의 회기(會期)에 맞추어 제네바의 유엔 유럽본부에서 각각 개최했습니다.
21세기를 짊어질 청소년을 위해 부인평화위원회가 실시한 ‘어린이들의 인권전’, ‘세계의 어린이와 유니세프전’ 등도 독특한 시도로서 높이 평가 받았습니다. 또 청년을 중심으로 수많은 난민구원모금, 캄보디아에 약 30만대에 달하는 라디오를 지원하는 일에도 힘을 기울였습니다.
저 자신도 세 번에 걸친 유엔 군축특별총회를 비롯해 그때그때의 기념제언에서 평화, 군축, 유엔의 개혁을 위한 시안(試案)을 수없이 세계에 제기했습니다.
SGI는 정치단체가 아니고 단순한 사회단체도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인간 내면의 개혁을 촉구하는 불교운동을 기조로 하는 단체입니다.
오늘은 유엔개혁의 구체적인 측면이라기보다는 이 ‘인류의 의회’를 활성화하기 위한 정신적 기반, 그 담당자인 세계시민의 에토스(도덕적 기풍)라는 이념적인 측면을 고찰하려 합니다.
특히 귀국의 위대한 문화에 경의와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이탈리아르네상스가 낳은 ‘만능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면서 ‘자기를 제어하는 의지’와 ‘끊임없는 비상(飛翔)’이라는 두 가지 점을 논급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유엔이라는 글로벌한 시스템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협조와 대화를 기축으로 하는 소프트 파워라는 점에 있고, 그 파워를 강화하는 데에는 멀리 돌아가는 듯이 보일지 모르나 정신면·이념면의 뒷받침이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까이는 보스니아 정세에서 볼 수 있듯이, 어쩔 수 없이 하드 파워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국면이 있었다고 해도, 유엔의 첫째 사명은 어디까지나 소프트 파워에 있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내년 1995년에 창설 50주년을 맞이하는 유엔의 역사는 짧다면 짧습니다. 오랜 인류의 역사에서 보면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단명(短命)으로 끝나버린 저 국제연맹의 비운(悲運)을 생각하면, 유엔의 반세기에 걸친 발자취는 결코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됩니다.
특히 미소(美蘇)냉전의 종결과 함께 PKO 등 유엔의 움직임이 몰라볼 정도로 활발해지고, 창설할 때의 정신이 이제야 간신히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고 하는 오늘날, 이 흐름을 어떻게든 희망의 21세기로 연결해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반세기 전의 유엔창설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말할 나위도 없이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입니다.
그는 국제연맹의 기수(旗手)였던 윌슨 대통령의 뜻을 이어 이상주의(理想主義), 국제주의(國際主義), 인도주의(人道主義)를 내걸었습니다.
그 신념이 ‘유엔창설’의 정신이 되고, 원동력이 된 것은 두루 다 아는 사실(史實)입니다.
스탈린이나 처칠 같은 강자(强者)를 상대로 끊임없이 보편적 안전보장의 이상을 끊임없이 주장하는 그 모습을 가리켜, 후세의 어느 역사가는 반쯤 야유를 담아 ‘우주적 휴머니즘’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 후, 냉전 하에서 유엔의 기능이 형해화(形骸化)한 것을 보면 야유 받아도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월의 도태작용에는 정말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면이 있습니다.
지금 창설 때의 정신으로 회귀(回歸)와 부흥이 거론되는 가운데 ‘우주적 휴머니즘’은 결코 허풍도 몽상도 아닌 것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정확히 렌즈를 조정하면 카메라의 필터에 피사체의 윤곽이 명확해지듯이, 이런저런 생각에 둘러싸여 있을 때 저의 뇌리에 선명히 떠오르는 것이 거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높이 솟아 있는 모습입니다.
‘선악(善惡)의 저편’을 유유히 홀로 걷고 있는 듯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어마어마한 이해타산이 소용돌이치는 너무나도 산문적(散文的)인 유엔과는 차원이 크게 달라, 양자(兩者)를 맺는 것은 엉뚱하다고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만사에 짧은 스팬(간격)과 긴 스팬의 시야를 아울러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시적(巨視的)으로 보면, 야스퍼스가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는 두 개의 세계이다. 이 두 세계는 서로 다가서려고는 하지 않는다. 레오나르도는 코스모폴리탄(세계시민)이고, 미켈란젤로는 애국자이다.”라고 평한 대로 레오나르도적 시야(視野)가 지금처럼 요청 받는 때도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레오나르도에게 배우고 계승해야 할 첫 번째 점은 ‘자기를 제어하는 의지’가 아닐까요.
레오나르도는 무엇에도 속박당하지 않는 독립된 자유인이고, 종교나 윤리규범에서도 자유로웠을 뿐만 아니라 조국, 가정, 우인, 지인 같은 인간사회의 굴레에도 속박당하지 않는 고고(孤高)한 세계시민이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그는 서자(庶子)였고, 독신을 관철한 생애에서 가족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으며, 조국 피렌체공화국에 대한 애착 역시 매우 희박했습니다.
조국에서 수업(修業)시대를 마치자 주저하지 않고 밀라노로 가서 군주(君主) 일 모로 밑에서 10여년을 보냅니다.
일 모로가 몰락한 후에는 체자레 보르지아와 손을 잡고 피렌체, 로마, 밀라노로 주거를 옮기면서 자신의 길을 계속 걸었고, 만년(晩年)에는 프랑스 왕의 부름에 응하여 그 땅에서 생애를 마쳤습니다.
그는 결코 냉담한 인간도 아니고 덕성(德性)이 결여된 것도 아니지만, 그 일생은 어쨌든 자신이 원하는 바에 오로지 충실한 ‘초속(超俗)’의 품격을 관철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어떠한 조처나 신분상의 진퇴(進退)에도, 조국애나 적군·아군, 선악, 미추(美醜), 이해(利害) 등의 세속적 규범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그것들을 초월한 경지를 항상 지향했습니다.
명예나 금전의 유혹 등은 지나가는 바람으로 여기고, 그렇다고 해서 권력의 의향에 굳이 저항하지도 않고, 자신의 관심사만을 계속 추구한 그 발자취는 두 군주를 섬기지 않는다는 세속적 윤리와는 거의 관계가 없었습니다.
‘수수께끼의 미소’를 짓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상 ‘모나리자’의 작자(作者)는, 귀신도 꺾을 용맹스런 전사(戰士)들이 서로 싸우는 ‘앙기아리전투’의 작자이기도 합니다.
흘러가는 물을 응시하고 식물의 생태를 주시하며 새의 비상(飛翔)을 분석하는 레오나르도는 동시에 사형수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해부(解剖)의 메스를 휘두르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세간의 상식이나 규칙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한 스케일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세속적 규범을 초월하는 그 자유로움은, 그야말로 자유인이자 세계시민의 정수(精髓)를 엿보게 하며, 이탈리아르네상스 특유의 평온하고 활기에 넘친 시대정신을 독자적인 품격으로 나타냈습니다.
그 초월을 가능케 한 것은 유례없는 ‘자기를 제어하는 의지’가 아닐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기자신을 지배하는 힘보다 큰 지배력도, 작은 지배력도 가질 수 없다.”고 말했듯이, 그에게는 어떻게 자기를 제어하느냐가 만사(萬事)에 앞선 첫째 과제이고, 그 힘이 충분히 작용하기만 하면 어떤 현실에도 자유자재로 대응할 수 있고, 현실차원의 향배(向背), 선악(善惡), 미추(美醜) 등은 이차적 삼차적인 가치밖에 갖지 않습니다.
그는 예전의 주군(主君) 일 모로를 멸망시킨 프랑스 왕의 부름에도 태연히 응했는데, 옆에서 보기에는 그것이 지조(志操)가 일관되지 않은 듯이 보여도, 이 거인에게는 무절조(無節操)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관대한 도량의 크기를 말해주는 듯합니다.
이러한 레오나르도 ‘초속(超俗)’의 형태는 불법(佛法)에서 설하는 ‘출세간(出世間)’의 의의와 친근합니다.
‘세간(世間)’이란 차별(다름)을 의미합니다. ‘출세간(出世間)’이란 즉 이해(利害)나 애증(愛憎), 미추(美醜)나 선악(善惡) 같은 차별을 초월해서 그것들에 대한 집착에서 떠난다는 의의입니다.
불교의 최고봉이라고 일컫는 법화경(法華經)에는 ‘영리제착(令離諸著: 모든 집착에서 멀어지게 한다)’ 등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어쨌든 불전(佛典)의 극리(極理)에 “이(離)의 자(字)를 명(明)이라고 읽느니라.”라는 구절이 있듯이, 단지 번뇌에 대한 집착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높은 차원에서 모든 번뇌를 명확히 보고 사용하는 강한 주체를 확립하는 것이 곧 ‘출세간’의 진의(眞義)입니다.
니체와 같은 ‘선악 저편’에 사는 사람이 “레오나르도는 동양을 알고 있다.”고 간파한 것도, 이러한 ‘초속(超俗)’의 형태에 대한 친근함이 서로 무관하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친근함은 불교나 레오나르도에게 다같이 ‘초속’ 및 ‘출세간’의 마음을 때때로 거울에 비유한 점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자기를 제어하는 의지’라는 점에서, 러시아의 문학가 메레시콥스키의 《레오나르도전傳》에 잊을 수 없는 일막(一幕)이 있습니다.
이 평전(評傳)은 작자가 상상력으로 창작한 부분도 많은 듯합니다만, 주군 일 모로의 군대가 프랑스군에게 멸망당하는 전투 모습을 레오나르도가 사랑하는 제자와 함께 언덕 위에서 바라보고 있는 이 부분은, 너무나도 레오나르도다운 면목을 여실히 보여주며, 박진감을 갖고 따라가게 합니다.
“그들은 한 번 더, 포화(砲火)가 오르는 저 멀리의 연기더미를 바라보았다. 지금 그 연기는 무한한 평야의 끝에 너무나도 작게 보였다.”
“조국, 외교, 명예, 전쟁, 나라의 흥망, 국민의 반란 —
인간에게 위대하고 어마어마하게 생각되는 이러한 것들도 모두 영원히 맑게 갠 대자연 속에서 한 무리의 연기와 같지 않은가? 저녁노을빛에 용해되는 작은 연기더미에, 어떤 선택의 여지는 없지 않은가?”
그야말로 제어된 마음의 거울에 비친 빈약하고 왜소한 전쟁의 실상(實像)입니다. ‘우주적 휴머니즘’의 꾸밈없는 현현(顯現)입니다.
우리는 불법을 기조로 하여 유엔지원을 비롯해 여러 평화·문화운동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단적으로 ‘인간혁명을 제일의(第一義)로 하여 사회를 변혁한다.’고 표방하고 있듯이, 레오나르도에게 ‘자기를 제어하는 의지’는 우리의 ‘인간혁명’과 깊이 통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제도나 환경 등 인간의 ‘외면’에만 눈을 돌리어 결국에는 민족분쟁이 분출하는 참담한 결말을 맞이하고 있는 세기말의 인류에게, 자기의 ‘내면’을 어떻게 제어하는가 하는 점에서 출발한 레오나르도적 명제(命題)는 더욱더 무게를 더하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둘째, 레오나르도의 ‘끊임없는 비상(飛翔)’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인간이 새처럼 하늘로 비상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레오나르도의 꿈이었습니다. 그의 혼(魂)도 또한 생애를 통해 ‘끊임없는 비상’을 계속하였습니다.
“젊을 때 노력하라.”
“쇠는 사용하지 않으면 녹슬고, 물이 흐르지 않으면 썩거나 추위에 얼듯이, 재능도 쓰지 않으면 쓸모 없게 된다.”
“권태(倦怠)보다는 죽음을 …”
“어떠한 일도 나를 지치게 하지는 못한다.” 등등의 말은, 이 천재가 또한 희대(稀代)의 노력가였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최후의 만찬’을 제작할 때는 해 뜰 무렵부터 밤늦게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일에 몰두하는가 하면, 사나흘이나 그림에 손도 대지 않고 왔다 갔다 하며 사색에 잠긴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무서울 정도의 엄청난 집중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창작에의 집념과는 반대로, 레오나르도의 창작 가운데 완성된 것은 다 아는 바와 같이 극히 적습니다. 회화작품 또한 매우 적은 데다가, 그 대부분이 미완성인 상태입니다.
‘만능의 천재’답게 그 밖에도 조각, 기계나 무기의 제작, 토목공사 등 놀랄 만큼 다재다능함을 발휘했습니다만, 끝내 이루지 못한 꿈일 수밖에 없었던 인력비행(人力飛行)으로 상징되듯이, 대체로 아이디어나 의도(意圖)만으로 끝난 것이 많습니다.
특징적인 것은 레오나르도는 그것에 아픔을 느끼지도 않았고, 미완성을 괴로워하지도 미련을 갖지도 않았고, 담담하게 다른 쪽으로 마음을 옮기고 말았습니다.
옆에서 보기에는 미완성으로 보여도 필시 그에게는 어느 의미에서 완성된 것이며, 말하자면 ‘미완성의 완성’이라고 할 상승작용(相乘作用)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창작에의 집념과 수많은 미완성의 차이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미완성의 완성’은 동시에 ‘완성의 미완성’이었습니다.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을 ‘전체’ ‘종합’ ‘보편’ 등으로 형용합니다만, 레오나르도에게서 무한히 넓혀져 생성유동(生成流動)하는 우주생명이라고 할 전체성과 보편성의 세계 — 일찍이 야스퍼스가 “일체가 그것에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될 전체”라고 불렀던 포괄적인 세계를 먼저 예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창작활동이란 그림이든 조각이든, 공작기계나 건축, 토목류(類)든 그러한 전체성과 보편성의 세계를 위대한 솜씨로 구사하면서 개별성(個別性) 속에 묘사하는 창조적인 영위(營爲)였습니다.
즉 불가시(不可視)의 세계의 가시화(可視化)였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완성도를 자랑하는 걸작일지라도 개별세계의 것인 한 미완성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거기에 안주해서는 안 되며, 새로운 완성을 목표로 ‘끊임없이 비상하도록’ 운명 지워져 있습니다.
붓다가 최후에 남긴 말도 “모든 사상(事象)은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태만하지 말고 수행을 완성하시오.”라는 말이었습니다.
대승불교(大乘佛敎)의 정수도 “월월일일(月月日日) 강성해지시라. 조금이라도 해이한 마음이 있다면 마(魔)가 틈탈 것이니라.”(‘성인어난사’, 어서 1190쪽)
“비유컨대 암경(闇鏡)도 닦으면 옥(玉)으로 보이는 것과 같다. 지금도 일념무명(一念無明)의 미심(迷心)은 닦지 않은 거울이며, 이를 닦으면 반드시 법성진여(法性眞如)의 명경(明鏡)이 되느니라.”(‘일생성불초’, 어서 384쪽)라고 생명의 본연적인 모습을 나타냅니다.
‘미완성의 완성’에서 ‘완성의 미완성’으로 — 그러므로 양자의 상승작용(相乘作用)이란, 다이나믹하게 생성유동(生成流動)하는 생명의 움직임, 현실의 움직임 바로 그것이라 해도 좋습니다.
‘경험의 제자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선언하며 일체의 선입관을 배제하고 현실의 움직임을 항상 주시한 그는, 현실을 고정화 해버리기 쉬운 언어의 작용에는 불신(不信)과 적의(敵意)마저 품었습니다.
‘그림’을 강조하고 ‘언어’를 비난하는 레오나르도의 특이한 언어비판은, 저에게 대승불교 중흥(中興)의 논사(論師)인 용수보살(龍樹菩薩)의 통찰을 상기하게 합니다.
그도 또한 불교의 근본을 이루는 ‘연기법(緣起法)’ 즉 ‘공(空)’에 관해 “멸(滅)하지도 않고 생(生)하지도 않으며, 단멸(斷滅)하지도 않고 항상(恒常)하는 것도 아니며, 단일(單一)도 아니고 복수(複數)도 아니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 상호의존성(연기緣起)은 언어의 허구를 초월하여 지복(至福)한 것이라고 붓다는 설했다.”고 찬탄하면서 현실의 고정화와 실체화에 빠지기 쉬운 언어의 허구성을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언어에 의한 고정화가 완성과 미완성의 다이나믹한 상승작용을 잃게 하고, 일시적인 ‘안정(安定)’을 항구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해버립니다.
레오나르도나 용수도 ‘그러한 안정은 편안함에 안주하려는 나태한 정신상태의 온상(溫床)이 될 것’이라고 경종을 울리는 듯합니다.
“성급함은 어리석음의 어머니이다.”라는 레오나르도의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잠언(箴言)도 이러한 배경에서 비로소 뛰어난 광채를 발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은 또한 언어로써 묘사한 유토피아의 청사진을 실체(實體)라고 착각하여, 그것을 향해 ‘성급’하게 달리는 급진주의적 위험성마저도 드러내고 있습니다. 모든 정치적·사회적 문제와 마찬가지로 유엔의 활성화에도 급진주의는 금물입니다.
그것은 유엔에 대한 ‘과신(過信)’이며, ‘과신’은 사소한 실수도 쉽게 ‘불신(不信)’으로 전환하게 해버립니다.
그 결과 ‘목욕물과 함께 아이까지 버리고 마는’ 어리석음을 틀림없이 범하겠지요. 레오나르도적인 행보가 필연적인 까닭은 이때문입니다.
이상 ‘자기를 제어하는 의지’와 ‘끊임없는 비상(飛翔)’이라는 두 가지 점으로 요약하여 불교의 지견(知見)과 관련하여, 저 나름대로 레오나르도의 정신적 유산에 접근을 시도해보았습니다.
르네상스연구의 대가 부르크하르트는 일찍이 “위인(偉人)이란 그 사람이 없으면 이 세계는 무엇인가가 결여되어 있는 것처럼 많은 대중이 생각하는 사람들을 말한다.”고 말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실로 이러한 위인으로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에 불멸의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당시에는 ‘고고(孤高)한 사람’ ‘독보적(獨步的)인 사람’이었던 레오나르도적인 것이, 세기말의 카오스의 한복판에 있는 오늘날처럼 요구되는 시기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엔을 축으로 한 새로운 세계질서의 형성도, 결국 그것을 담당할 수 있는 코스모폴리탄을 얼마나 배출할 수 있느냐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민(人民)은 …’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유엔헌장이 상징하듯이, 민중이 곧 주체이며 인간이 곧 근본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시민은 더 한층 힘을 결집하여 유엔을 ‘민중의 소리를 살리는 인류의 의회’로 드높이고 싶습니다. 그와 함께 모든 살아 있는 것의 증거란 도대체 무엇인가, 인간으로서 가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의 친선우호는 무엇이 포인트인가?
그 지하수맥에 문화를 넘쳐흐르게 하고, 또 이문화(異文化)를 인정하면서 깊게 교류하는 새로운 인간주의의 맥동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실로 귀 대학의 의의 깊은 900년제(祭) 때, 우리 소카대학교도 서명한 저 ‘대학헌장(大學憲章)’에서 드높이 선언한 이념이겠지요.
저도 불법자(佛法者)의 처지에서 레오나르도의 유산을 계승하면서 여러분과 함께 저 인류사의 새로운 여명을 향해 끝까지 달려갈 결심입니다.
끝으로 ‘학문의 위대한 어머니’인 귀 대학에 영광이 한층 더하기를 기원하며, 귀 대학과 연이 깊은 대시인(大詩人) 단테의 《신곡神曲》 한 구절을 말씀드리며 저의 강연을 마치겠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안심해도 좋다,
우리는 상당히 앞질러 왔다, 물러서지 않고,
모든 용기를 불러일으켜야 한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라체(감사합니다). (큰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