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초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전통과 격식을 자랑하는 이곳 중국사회과학원에서 강연할 기회를 주신 것은 저에게 최대의 영예(榮譽)입니다.
또한 지금 권위 있는 ‘명예연구교수’의 칭호를 받게 되어, 이보다 더한 영광은 없습니다. 존경하는 후성(胡繩) 원장을 비롯해 중국사회과학원의 여러 선생님, 또 자리를 함께해주신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박수)
조금 전 후 원장께서도 말씀하셨듯이 21세기를 가까이에 둔 오늘날 세계정세는 더욱 유동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일찍이 귀국의 고(故)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는 ‘천하대동란(天下大動亂)’을 예측했는데, 그 말씀대로 미소(美蘇)의 대립을 축으로 유지되었던 세계질서가 붕괴한 이후의 정세는 시시각각으로 흔들리고 있어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해야 할 현상은 중국이나 일본, 한반도, 나아가서는 대만, 홍콩 등 동아시아지역에 자주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유교(儒敎)문화권’ ‘한자(漢字)문화권’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논의되는 가장 큰 동기는 경제적 요인이라는 것이 사실일는지도 모릅니다. 일본은 물론이고 니즈(NIES)라고 불리는 여러 나라의 근년(近年)의 경제성장은 눈부실 정도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중국의 거대한 활력을 아울러 생각해보면, 몇 가지 불안정요인을 안고 있으면서도, 동아시아지역이 21세기의 세계에 중요한 블록을 형성할 것임은 누가 봐도 명백합니다.
특히 제가 주목하는 것은 ‘… 문화권’이라는 말이 나타내듯이, 사람들의 관심이 단순히 경제차원뿐만 아니라 성장을 불러오는 문화적 요인·영역에까지 확대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런 경향은 지금까지 선진국이라고 불려온 서양의 지성인에게 특히 강한 듯합니다. 이른바 ‘하드’한 부분에서 ‘소프트’한 부분으로 관심이 이행(移行)했다, 또는 심화(深化)했다고 해도 좋겠지요.
동남아시아지역의 문화, 그중에서도 그 수맥(水脈)을 이루는 정신성의 특징은 도대체 무엇인가. 간단히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말하자면 거기에 ‘공생(共生)의 에토스(Ethos: 도덕적 기풍)’가 흘러 통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비교적 온화한 기후풍토에서 대립보다는 조화, 분열보다는 결합, ‘나’보다는 ‘우리’를 기조(基調)로 인간끼리, 또한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고 서로 지탱하면서 모두 함께 번영하자는 심적(心的) 경향입니다. 그중요한 수원(水源) 중 하나가 ‘유교’임은 논할 여지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공생의 에토스’라는 말로 유교의 전통적 덕목인 ‘삼강오상(三綱五常)’ ―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 및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 등을 상정(想定)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유교적 덕목은 대부분 개인보다 공동체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공생’에 통하지만, 반면에 기존의 위계질서를 고정화하여 쓸데없이 사회를 정체시켰습니다.
오랜 역사의 손때가 묻은 봉건주의이데올로기가 ‘5·4운동’ 이래 격렬한 비판의 돌멩이를 맞은 것은 두루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폐해를 불러온 가장 큰 요인은 한대(漢代)에 동중서(董仲舒)의 헌책(獻策)에 따라 유교를 국교화한 데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로마가톨릭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모든 종교는 권력과 유착하는 순간 어용종교로 화(化)하여, 민중에 뿌리내린 싱싱한 그 초심(初心)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구시대의 악취에 싸인 유물이 21세기 문명에 얼마만큼 공헌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근년에 계속해서 선전되고 있는 일본의 눈부신 경제발전을 덮어놓고 기뻐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성장과 발전에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구시대의 유제(遺制)를 남긴 채 개인의 인권이나 생활을 희생시키는 형태로 수행되어 왔다.”는 서양제국의 비난도 근거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회사지상주의(會社至上主義)’라고 불리는 것이고 그것을 지탱하는 것은 ‘공생의 에토스’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자기희생을 온당한 것으로 감수하는 폐쇄적 마음입니다.
이와 달리 ‘공생의 에토스’는 군신(君臣)이나 부모자식, 부부, 그리고 회사나 가정 같은 부분에 한정되거나 고정되지 않고, 노골적인 본능보다 더 순도(純度)가 높고 또한 다이나믹하게 확대되어 맥동하는 보편적인 마음입니다.
물론 ‘에토스’이기 때문에 노장류(老莊流)의 ‘무(無)’나 ‘혼돈(混沌)’과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나 사회를 얽어매는 것은 아니고, 시대의 변화에 유연하고도 자유자재로 대응할 수 있는, 본질적으로 열린 마음과 에너지를 의미합니다.
그 점에서 프랑스의 중국학 최고권위자인 반데르메르슈 교수가 “유교는 구사회와 함께 소멸되지 않을 수 없었다. (중략) 그러나 바로 또 유교가 결정적으로 사멸(死滅)했기 때문에, 그 유산이 발전의 여러 요청과 모순되지 않고 새로운 사유양식(思惟樣式) 속에 재투자된다.”고 한 말은 참으로 시사적입니다.
재투자된 후에 구미의 지나친 개인주의에 대한 어떤 종류의 해독작용과 상호촉발이 가져온 인도(人道)라고 하는 보편적 가치가 실현되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서부터 21세기 문명에 대한 귀중한 지표를 이해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한 귀국의 근대 유학사상의 커다란 수맥을 형성한 ‘대동사상(大同思想)’이 지향한 것이야말로 이 ‘공생의 에토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2년쯤 전에 일본에 온 귀 사회과학원의 쿵판(孔繁) 교수도 일본에서 강연하면서 캉유웨이(康有爲), 담사동(譚嗣同)에서 쑨원(孫文)에 이르는 근대의 ‘대동사상’의 흐름을 매우 긍정적으로 지적하여, 저도 귀중한 공부를 했습니다.
담사동의 “널리 법계(法界: 전대상계全對象界), 허공계(虛空界: 허환세계虛幻世界), 중생계(衆生界: 윤회전생輪廻轉生의 세계)에는 지대(至大)하고도 지미(至微)한 일물(一物)이 충만하여 구석구석까지 서로 붙고, 서로 용해되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순도(純度)에서나 보편성에서나 중국민족의 꿈이고 이상사회이며 장대한 유토피아인 ‘대동사상’에서 저는 ‘공생의 에토스’의 한 전형을 보는 느낌이 듭니다.
그럼 이러한 순도나 보편성의 연원(淵源)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 커다란 요인이 유교의 시조(始祖) 공자(孔子)의 격렬한 지적(知的) 격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논어論語》의 유명한 말에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이것이 아는 것이니라.” ―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그것이 안다고 하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아직 사람을 섬길 수 없는데 어찌 귀(鬼)를 섬기리오.” ― 사람을 섬기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신령을 섬길 수 있겠는가.
“아직 생(生)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사(死)를 알겠느뇨.” ― 생의 의미도 모르는데 하물며 사의 의미 같은 것을 알 수 있겠는가.
이러한 말들과 아울러 공자가 ‘인지(人知)·인위(人爲)’와 ‘인지·인위를 초월한 것’ 사이에 얼마나 정묘(精妙)한 폭을 두었는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무지(無知)의 지(知)’를 방불케 하는 이러한 강한 말은, 상당히 겸허하고 강직한 지성(知性)에서밖에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공자의 경우 한자(漢字)라는 미디어 특유의 시각에 호소하는 의미론적 명석함에 의해 결론부분이 잠언풍(箴言風)으로 요약되어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만큼의 지적 격투가 있었는지는, 소크라테스가 같은 신념을 벗과 공유(共有)하기 위해 저 방대한 목숨을 건 대화와 언론전을 전개했던 일을 상기하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 공자의 고투를 가장 잘 말해주는 것이, 후에 ‘정명론(正名論)’으로 계승 발전되는 ‘자로(子路)’의 한 구절입니다.
여러 선생님은 이미 잘 아시겠지만, 확인하는 의미에서 그 부분을 인용하겠습니다.
“자로(子路) 가로되 ‘위군(衛君), 자(子)를 대(待)하여 정(政)을 하면 자(子)는 바로 무엇을 먼저 하겠습니까.’ 자(子) 가로되 ‘반드시 명(名)을 바로잡으리라.’ 자로(子路) 가로되 ‘자(子)의 우(迂)하심이 있소이다, 어찌 그것을 바로잡으시겠나이까.’
자(子) 가로되 ‘비속(卑俗)하다, 유(由)여. 군자(君子)는 그 알지 못하는 바에는 또한 궐여(闕如)하도다. 명(名)이 바르지 않으면 언(言)이 순(順)하지 않고, 언이 순하지 아니하면 사(事)를 이룸이 없도다. 사를 이루지 못하면 예악(禮樂)이 흥하지 않음이다. 예악이 흥하지 않으면 형벌(刑罰)이 맞지 아니하고, 형벌이 맞지 아니하면 백성이 손과 발을 둘 바가 없게 되느니라. 고(故)로 군자(君子)는 이에 명(名)을 붙인다면 반드시 말할지니라. 이것을 말한다면 반드시 행(行)할지니라. 군자는 그 말에 소홀히 하는 바가 없을 뿐이로다.’”
— 자로가 말했다. “가령 선생님이 위(衛)의 군주(君主)를 보좌하는 처지라면 먼저 무엇부터 손을 대시겠습니까.”
자로의 질문을 받고 공자가 답하였다.
“올바른 명명법(命名法)을 확립하는 일이다.”
자로가 말했다. “미적지근한 말씀이군요. 좀 더 절박한 대책을 여쭈었는데.”
공자가 말했다.
“어리석구나 너는. 군자(君子)라면 군자답게 잘 생각하고 나서 말을 해야 한다. 알겠는가. 각자각자 제멋대로 자기류(自己流)의 명명법을 채용해보아라. 말이 상통하지 않게 되어버리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면 사회는 성립되지 않는다. 말이 상통한다는 전제가 있어야만 도덕이 확립되고, 법률도 규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 도덕이 혼란하고 법률이 유명무실해진다면, 그 나라의 국민은 어떻게 살아가면 좋은가? 위정자는 올바른 명명법을 확립하여 그것에 따라 공통언어를 성립해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모든 발언은 당연히 실행의 책임을 지게 된다. 그만큼 언어문제는 중요한 것이다.”
이 가운데 “군자는 그 알지 못하는 바에 또한 궐여(闕如)하도다.”는 앞서 말한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이것이 아는 것이니라.”에 상응하고, 이러한 말에 대한 리고리즘(엄격주의)과 스토이시즘(금욕주의)은 고금(古今)의 예민한 지성에 공통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명(名)’과 ‘실(實)’이 상응하는 문제이며, 그것을 둘러싸고 중세유럽의 스콜라철학은 ‘유명론(唯名論)’과 ‘실념론(實念論)’ 사이에서 끝없는 논쟁을 전개하였습니다.
난세(亂世)를 맞이해, 사람들의 위기의식이 커지면 커질수록 뛰어난 사상가는 아주 똑같이 언어의 음미로 향하는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가 그러했고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도 스콜라적 질서가 무너진 의지할 데 없는 혼돈 속에 살면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한마디’를 찾아내기 위해 놀랄 만큼 인내 강하게, 철저한 편력(遍歷)과 자기성찰의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그 사정은 공자의 “나는 말할 것이 없기를 원한다. ― 나는 이제 더 이상 말로 가르치는 일은 그만두려고 생각한다.”는 제자 자공(子貢)을 놀라게 한 고뇌의 술회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또 시대를 내려와 담사동이 “사람이 모르게 되는 것은 명(名) 때문이다.”라고 하여, ‘명’에 사로잡힌 인간의 ‘분별’이 허망함을 날카롭게 지적한 것도 청말(淸末) 중국의 위기의식을 농도 짙게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한 현대에서도 동서양을 불문하고, 말에 대한 압도적인 관심의 고조는 20세기의 세기말(世紀末)을 뒤덮는 어둠의 깊이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제쳐두고, 제가 주목하는 것은 질서의 기반이며 정치의 요체인 ‘예악(禮樂)·형벌(刑罰)’을 정비하려고 하면서 먼저 ‘명을 바로잡는’ 것을 주축에 둔 공자의 투철한 사색입니다.
자로(子路)와의 대화는 직접적으로는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누구를 왕이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왕이라고 부르기에 걸맞은가라는 즉물적(卽物的)인 정치논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명(名)’과 ‘실(實)’의 정합성(整合性)을 격렬하게 희구한 그의 사색은, 정치 차원의 속진(俗塵)을 털어버리면서 정신성의 순도(純度)를 높이고, 모든 질서를 구성하는 원점, 오늘날 문화인류학에서 말하는 ‘우주축(宇宙軸)’과 같은 것까지 예감하며 육박하려 한 것은 아닐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 예로부터 그 명(名)에 알맞은 종교나 철학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가치론(價値論)’의 측면과, 세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하는 ‘존재론(存在論)’의 측면을 함께 갖춘 포괄적인 세계관이었습니다.
공맹(孔孟) 등 고대의 유가(儒家)는 그 가치론은 풍요한데 존재론은 극히 빈곤하다는 것이 통설입니다만, “명을 바로잡으리라.”고 한 공자의 말에서, 후에 불교의 영향 등도 받으면서 정밀하게 전개되는 송학(宋學)의 존재론의 조짐을 감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쨌든 저는 공자의 말이 질서를 위해 끝없는 구심력(求心力)을 응결시킨, 너무나도 간결하고 힘찬 ‘한마디’인 만큼, 더욱 강하게 그 조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그 때문에 “명을 바로잡겠다.”고 한 ‘한마디’에서부터 그 후 ‘정명론(正名論)’이라는 언어철학의 독자적 계보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된 것이 아닌가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당돌한 것 같습니다만 여기에서 저는 공자의 말에 천태지의(天台智顗)가 《법화현의法華玄義》에서 말한 “겁초(劫初)에 만물에 명(名)이 없는데 성인(聖人)이 이(理)를 관(觀)하여 준칙(準則)해서 명(名)을 만들었다.” — 주겁(住劫)의 초(初)에는 만물에 이름이 없었는데, 성인이 도리에 근거를 두고 그 이에 적합한 이름을 붙였다 ― 고 한 말을 대치(對置)해보고자 합니다.
유교와 불교와 차이, 그리고 공자의 경우는 ‘정명(正名)’에 의한 질서의 모색이고, 지의(智顗)는 ‘작명(作名)’에 의한 질서의 창출이라는 뉘앙스 차이는 있지만 ‘명(名)’을 중요하게 여겨, 만상(萬象)이 이루어내는 질서에 ‘화룡점정(畵龍點睛)’으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공통됩니다.
이것은 극히 중국적 현상입니다. 같은 대승불교(大乘佛敎)라도 인도를 대표하는 용수(龍樹)는 《중론中論》에서 볼 수 있듯이 ‘명(名)’에 의해 구성된 ‘분별’과 ‘차별’의 현상세계를 간파한, ‘무분별’ ‘무차별’의 세계로의 지향성이 강합니다.
말하자면 ‘세간(世間)’을 나오는 ‘출세간(出世間)’으로의 경사(傾斜)입니다. 그런데 지의에서는 그러한 ‘출세간’에서 당연히 ‘해탈’의 경지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거기에서 다시 ‘세간’으로 돌아옵니다. 즉 ‘출(出)·출세간(出世間)’이라는 벡터(힘의 방향성)의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모두 불법자(佛法者)답게 세계종교로서 보편성을 구하면서도, 용수와 달리 지의는 그 보편성을 구체적인 현상세계에 기대 전개했습니다. 저는 거기에서 동아시아의 정신성의 반영을 분명히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쿵판 교수가 “불교사상 등도 유학의 도움을 빌려 유학과 융합했기에 비로소 중국사회 속에서 발전할 수 있었다.”고 말씀하신 뜻도, 그러한 면의 경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벡터의 전환은 불교의 변질이 아니라 계승적 발전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현상세계를 중시해야만 동아시아의 정신성의 오저에 흐르는 ‘공생의 에토스’를 퍼 올려 승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며, 그것을 무시하고는 ‘중생제도(衆生濟度)’라는 불교의 본의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4년 반 전쯤, 귀 사회과학원의 류궈광(劉國光) 제1 부원장을 단장으로 한 ‘중일우호 학자방일대표단’과 도쿄에서 만났을 때, 저는 천태지의의 사상을 언급하면서 “진실한 불법(佛法)은 이 시시각각으로 진보·변화하는 사회, 거친 현실에서 동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경제·정치·생활·문화 등과 절대로 떨어질 수 없으며, 그것들 전부에 항상 생생하게 활력을 주어 가치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거기에 불법의 중요한 사명도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자리를 함께한 주사오원(朱紹文) 교수가 그 취지에 깊이 찬동하신 것을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말하면, 대승불교의 진수에서는 지의의 《법화현의》의 문을 석(釋)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지리(至理)는 이름이 없는데 성인(聖人)이 이(理)를 관(觀)하여 만물에 이름을 붙일 때 인과구시(因果俱時)·불가사의(不可思議)의 일법(一法)이 있으니, 이를 이름하여 묘법연화(妙法蓮華)라고 하였다. 이 묘법연화의 일법에 십계삼천(十界三千)의 제법(諸法)을 구족(具足)하여 궐감(闕減)이 없음이라. 이를 수행(修行)하는 자(者)는 불인(佛因)·불과(佛果) 동시에 이를 득(得)하느니라.”(‘당체의초’, 어서 513쪽)
— 묘법의 지리(至理)에는 원래 이름은 없었는데, 성인이 이 이(理)를 관하여 만물에 이름을 붙일 때, 인과구시의 불가사의한 일법이 있어, 이를 일컬어 묘법연화라고 하였다. 이 묘법연화의 일법에 십계삼천의 일체법(一切法)을 구족하여 일법도 빠뜨린 것이 없다. 따라서 이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수행하는 이는 부처가 되는 인행(因行)과 과덕(果德)을 동시에 득하는 것이다. —
앞부분은 《법화현의》를 받아 ‘작명(作名)’의 순서를 말하였고, 그에 이어지는 “묘법연화의 일법에 십계삼천의 제법을 구족하여 궐감이 없음이라.”가 지의의 ‘일념삼천론(一念三千論)’에 기댄 존재론의 요약임은 여러 선생님께 말씀드릴 것까지도 없습니다.
또 “수행하는 자는 불인·불과 동시에 이를 득하느니라.”란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의 기축(機軸)이 되는 수행론과 가치론입니다.
사회적 실천을 강하게 촉구한 점에서 에토스라고 하기에는 조금 실천성이 부족한 천태불법의 약점을 보완했다고 보아도 좋을지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존재론과 가치론을 함께 갖춘 종교적 세계관의 웅경(雄勁)하고 단호한 표백(表白)을 이루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정신성의 아름다운 성질인 ‘공생(共生)의 에토스’는 수천년 역사를 지하수맥과 같이 관철해, 예를 들면 중국의 사회주의이데올로기 등에도 독자적인 인간주의적 광채를 던지는 것이 아닐까요.
시간 관계상 그 점에 대한 고찰은 줄이겠습니다만, 저는 ‘공생의 에토스’가 상징하는 인격, 이상적 인간상의 한 전형(典型)으로서 고(故)저우언라이 총리를 들고 싶습니다.
총리께서 돌아가시기 1년 전쯤, 저는 병석의 총리와 한 번 만났습니다. 실은 올해(1992년) 4월에 일본에 오신 중국 인민대외우호협회의 한쉬(韓敍) 회장과 간담했을 때, 이 불세출의 명재상을 둘러싼 갖가지 에피소드를 듣고 새삼 깊이 감명하였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한쉬 회장은 저우 총리 밑에서 오랜 세월 외교부 일을 하신 분입니다.
예를 들면 외국 손님을 맞이할 때 빈틈없는 세심한 배려, 전용기(專用機)의 승무원에게도 정중한 인사를 잊지 않는 예절, 아무리 피곤해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고 부하가 피곤하여 졸고 있으면 슬그머니 뉘어주는 따스함, 중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머리에 들어 있는 듯한 진지함과 책임감으로 뒷받침된 경이적인 기억력, 측근이나 친족이 자신의 이름을 이용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았던 엄격함, 공정함 등 과연 저우 총리다운 인품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대국(大局)을 간파하고 세부를 잊지 않으며, 안으로 추상(秋霜)과 같은 신념을 간직하고 겉으로 봄바람 같은 미소를 띠며, 자기중심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상대 마음을 중심으로 하며, 좋은 중국인이면서 코스모폴리탄(세계시민)이고, 항상 민중이라는 대지에 따뜻하고 공정한 눈길을 쏟아온 그 탁월한 인격은 “혁명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지 죽이는 것은 아니다.”라는 루쉰(魯迅)의 외침을 체현(體現)하였습니다.
제가 앞에서 “대립보다는 조화, 분열보다는 결합, ‘나’보다는 ‘우리’를 기조로, 인간끼리 또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고, 서로 지탱하면서 모두 함께 번영하자는 마음의 경향”이라고 말씀드린 ‘공생의 에토스’가 맥동하고, 유례 드물게 그것을 구상화(具象化)하는 것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인간관계가 깊이 병든 세기말의 오늘날에 그러한 인격만큼 요청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동아시아의 정신성에서 특징적인 것은, 그러한 에토스가 인간사회에 한정되지 않고 자연마저도 끌어들인 우주대의 크기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상세하게 말하지 않겠습니다만, 불교의 ‘산천초목(山川草木) 실개성불(悉皆成佛)’에서 상징하는 자연과 ‘공생’하는 사조(思潮)는 틀림없이 환경파괴와 자원·에너지문제 등이 심각해질수록 더욱 중요해진다고 하겠습니다.
그때 동아시아는 21세기 문명의 새벽에서, 경제라는 표층차원만이 아니라 정신성의 깊이에까지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어져 인류사의 구동력(驅動力)으로서 한층 더 전 세계의 기대를 모으리라고 믿습니다.
끝으로 저의 심정을 도연명(陶淵明)의 시 한 구절에 맡겨 강연을 마치겠습니다.
상지(相知)는 어찌 반드시 구(舊)뿐이겠느뇨
경개(傾蓋)는 전언(前言)에 결정되도다
객(客)이 있어 나의 취미를 칭찬하고
매매(每每) 임원(林園)을 돌아보도다
담(談)은 해(諧)하여 속조(俗調) 없고
설하는 바는 성인의 편(篇)
― 친우(親友)관계는 오랜 세월에 걸쳐 교제를 거듭한 결과 생겨나는 것이 아니며, 다만 잠시 길을 지나며 서로 이야기한 것만으로도 친한 벗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옛날 사람의 말에 의해 정설(定說)이 되어 있다.
나에게도 친우가 있으니, 즉 그대가 그러한 사람이다. 그대는 나의 취미를 잘 이해하고 칭찬하며 항상 나의 임원(林園)의 풍경을 돌아보아 준다.
그대와의 담화는 항상 화기애애하고 장단이 잘 맞으며, 세속(世俗) 사람들의 담화처럼 명리(名利)를 추구하는 일이 없다. 이야기하는 것은 옛날의 이른바 성인의 말을 실은 전적(典籍)에 관해서이다.
셰 - 셰 - (감사합니다). (큰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