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매우 바쁘신데도 참석해주신 대학기금위원회의 존경하는 라마 레디 의장, 간디기념관의 판디 부의장, 아쇼카 코시 이사, 라다크리슈난 관장을 비롯한 여러분에게 충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신의 대국’ 인도(印度)의 전통 깊은 간디기념관에서 초청하여 이와 같이 강연기회를 주신 것은, 저에게 최고의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마하트마 간디가 생애를 마친 땅을 원점으로 삼아, 그 불멸의 정신을 세계에 미래에 맥맥히 전하고자 하는 귀 기념관의 노력에 저는 충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작년 가을에 일본을 방문하신 관장과도 서로 스승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정신의 계승’에 대해 충분히 대화하였습니다.
실은 오늘 2월 11일은 작고(作故)하신 저의 은사(恩師) 도다(戶田) 제2대 회장의 탄생일입니다. 은사는 1900년 출생이므로 간디와는 나이 차가 거의 서른 살이나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간디가 마지막 옥중투쟁을 하고 있을 때, 저의 은사도 일본의 군국주의와 싸우며 감옥에 있었습니다. 은사는 간디와 같이 신념에 찬 평화주의자였습니다. 자애로운 민중지도자였습니다. 독창적인 역사변혁자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펼치는 ‘평화·문화·교육운동’은 모두 이 은사의 정신과 행동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은사는 각별히 귀국을 경애했습니다. 어느 날엔가 이 동경하는 인도의 대지(大地)를 밟고 인도의 철인(哲人)들과 흡족할 때까지 대화하고 싶다고 원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 자리에 은사와 둘이서 참석하고 있는 것 같은 감개를 금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현재 한 세기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대변혁기에 맞닥뜨렸습니다. 세기말에는 변동이 반드시 있다고 말합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에 이끌린 역사의 흐름은 문자 그대로 둑을 터뜨린 세찬 흐름이 되어 페레스트로이카마저도 삼켜버렸습니다.
베를린장벽의 붕괴에서부터 소련의 붕괴에 이른 이 몇 해 동안의 움직임은 모든 역사가의 예측을 크게 벗어나버렸습니다. 그 결과 자유를 구하는 민중의 소리는 이미 어떠한 권력을 가지고도 억압할 수 없는 사실이 분명해진 반면, 역사는 어떠한 이데올로기나 이념의 지표도 갖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해도(海圖) 없는 항해를 하게 된 것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러한 카오스(혼돈)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성난 파도가 광란(狂亂)하며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강 밑바닥 깊은 곳에서 조용하게 호소하듯이 이야기를 걸어오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러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수수께끼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러시아에 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았는데, 러시아의 경험이 끝내 성공하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비폭력주의(非暴力主義)에 대한 도전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성공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배후에는 폭력이 있습니다. 저는 사회를 좁은 길 속에 유지하는데 그 힘이 얼마나 오래 유효할지는 모릅니다. 러시아의 영향 아래 있었던 인도 사람들은 극도로 비관용적(非寬容的)으로 되고 있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이 말은 1931년 12월 스위스의 레만호수 부근에서 투병 중인 로맹 롤랑을 방문한 간디가 롤랑에게 한 말입니다. 당시는 파시즘의 군화 소리가 다가오면서 러시아혁명은 인류사상(人類史上) 희망의 별로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볼셰비즘의 어두운 면인 테러나 폭력도 그다지 표면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열렬한 평화주의자 롤랑도 “간디의 혁명과 레닌의 그것 이 두 가지가 오늘날 동맹하여 구세계(舊世界)를 뒤엎고 새로운 질서를 건설하려고” 하는 가교작업(架橋作業)에 대해 부심(腐心)하였습니다. 그러한 시기이니만큼 간디는 한정된 정보 아래 한결같이 체험에 의해 단련된 밝은 눈으로, 폭력과 비관용을 내세운 볼셰비즘의 숙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악을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그 선견성은 특필해도 좋을 것입니다.
소련 연방이 붕괴하는데 결정타가 된 작년 8월의 쿠데타 실패 직후, 모스크바광장에서 비밀경찰 창설자 제르진스키의 거대한 상(像)이 쓰러지고 민중에게 발길질 당하는 영상(映像)을 보면서, 선입관에 사로잡히지 않고 일직선으로 사물의 본질에 육박하는 간디의 정확한 안식(眼識)을 저는 다시 통감했습니다.
미증유의 ‘전쟁’과 ‘폭력’의 세기가 끝나려고 하는 오늘날, 이 ‘인류의 지보(至寶)’이자 ‘20세기의 기적’이라고 할 선철(先哲)에게서 전쟁 없는 세계를 지향하기 위해 우리가 배우고 이어받아야 할 유산은 무엇일까요.
제 나름대로 찾아낸 ‘낙관주의’ ‘실천’ ‘민중’ ‘총체성(總體性)’ 이 네 가지로 요약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그 투철한 ‘낙관주의’입니다. 사상가(思想家)든 경륜가(經綸家)든 예로부터 탁월한 인물은 거의 예외 없이 낙관주의자의 풍격(風格)을 지니고 있는 듯합니다. 그중에서도 간디만큼 가식 없이 신선한 궤적(軌跡)으로 끝까지 낙관주의를 관철한 사람은 참으로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낙관주의자다. 정의가 번영한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구극(究極)에는 정의가 틀림없이 번영할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낙관주의자다. 나의 낙관주의는 비폭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개인능력(個人能力)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신념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 말에서도 분명하듯이 간디의 ‘낙관주의’는 정세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거나 전망하여 얻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단순한 상대론(相對論)밖에 되지 않습니다.
정의(正義)도 그러하거니와 비폭력도 철저한 자기통찰의 결과 조건 없이 자기 심중에 세워진 인간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이며, 죽음으로도 빼앗을 수 없는 불괴(不壞)의 신념입니다.
저는 거기에서 항상 자신에게 되돌아가는 데서 출발하는 동양의 연역적(演繹的) 발상(發想)의 정수를 보는 느낌이 듭니다.
무조건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영원히 막힘은 없고, 스스로 신념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의 ‘낙관주의’는 한없이 희망에 찬 전망과 승리를 약속 받습니다.
“비폭력에는 패배가 없다. 이에 비해 폭력의 종말은 반드시 패배이다.”라는, 조용한 속에서도 무적(無敵)과 같은 자신을 엿보게 하는 말은, 참으로 자기자신의 흉중을 제패(制覇)한 사람만이 발할 수 있는 정신의 개가(凱歌)입니다. 승리의 함성입니다.
상상하건대 많은 시련으로 단련된 간디의 경애는, 옥중에서 단식하며 항의를 계속할 때도, 파시즘의 위협 앞에서 폭력이냐 비폭력이냐의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을 강요 받을 때도, 또는 콜카타나 벵골에서 지역항쟁 때문에 악전고투를 강요당할 때도, 먹구름을 꿰뚫고 나간 끝에는 한없이 앞으로 펼쳐지는 활짝 갠 창공이 있는 것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관주의’를 표방했으며 거기에 비폭력이라는 인간의 선성(善性)의 극한(極限), 즉 겁쟁이나 비굴한 ‘약자(弱者)의 비폭력’이 아니라, 용기가 뒷받침하고 있는 ‘강자(强者)의 비폭력’을 민중과 서로 나누어 가지려고 한 간디주의의 진수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원리를 나쁜 방향으로 왜곡하여, 안이하게 ‘약함’이나 ‘폭력’의 유혹에 굴복해서 불순물을 혼입해버리면, 설령 일시적으로는 성공을 거둘지 몰라도 간디주의와는 다른 것이 되어버립니다.
로맹 롤랑이 말한 ‘타고난 종교가이며 부득이 필요에 의한 정치가’였던 간디에게, 인간의 인간으로서의 증거라 할 수 있는 비폭력이야말로 생명선(生命線)이며 그것을 배제한 세속적인 성부(成否) 따위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달관한 삶의 자세는, 거기까지는 달관하지 못한 롤랑이나 네루 같은 이해자(理解者), 많은 동지에게마저도 때로는 곤혹스럽게 하고 혼란스럽게 했을 것입니다. 짧은 간격으로 보면, 나치에 대한 비폭력 저항을 권장하는 간디의 주장은 현실과는 너무 멀리 떨어진 이상론(理想論)으로 여겨지는 때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긴 안목으로 전후(戰後)의 흐름을 되돌아보면, 전화(戰火) 속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는 비폭력으로써만 구제할 수 있다고 한 ‘황야(荒野)의 외침’을 지치지도 않고 끝까지 외친 간디적(的) 과제를 우리가 극복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습니다.
세기말을 뒤덮은 인간불신(人間不信)의 비관주의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자랑스럽게 노래한 간디의 투철한 ‘낙관주의’를 중요한 과제로 부상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둘째, 간디의 유산(遺産)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실천’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간디는 평생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바라문(婆羅門)에게서 명상생활에 들어가기를 권유 받았을 때, 그는 “나도 역시 혼의 해탈(解脫)인 천국에 이르려고 매일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하여 나는 일부러 동굴에서 은둔생활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언제나 동굴을 메고 걸어 다니니까.”라고 대답한 유머러스한 에피소드는, 이 맨발의 성자(聖者)의 진면목을 잘 전해줍니다.
같은 비폭력주의자라도 톨스토이 등과 비교하면 간디의 행동력과 행동반경이 더 뛰어났습니다.
‘실천’은 단순한 행동과는 다릅니다. 단지 신체를 움직이는 행동은 동물도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동물 쪽이 더 행동적일지도 모릅니다.
적극적으로 과감하게 행동하는 사람인 그는 현실에 대한 외경(畏敬)과 겸허한 자세도 잊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유일한 정통이라고 생각해버리는 고압적인 마음과는 가장 멀리 있었습니다.
또 단호하게 확신에 찬 사람인 그는 그 확신의 근거를 이론의 정합성(整合性)이 아닌 혼에서 구하기 위해 크게 남을 받아들이는 아량과 관용을 가진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좋은 일이란 달팽이처럼 느리게 움직이는 것이다.”
“비폭력은 성장이 느린 식물이다. 그 성장은 거의 눈에 보이지 않으나 확실하다.”
이런 인상 깊은 말은 ‘실천’하는 사람이 조용히 토로하는 신조로서 지금도 천금의 무게를 갖습니다.
간디에게서 볼 수 있는 이런 ‘실천상(實踐像)’은 20세기에 맹위를 떨친 급진주의적 이데올로기가 낳은 혁명가상이나 인간상과는 현저한 대조를 이룹니다.
헌신적인 이상주의자이지만 편협하고 독선적이어서, 자신의 주의(主義)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유혈(流血)을 수반하는 무단주의(武斷主義)에 호소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 볼셰비즘은 이러한 혈기에 만연한 혁명가 무리를 엄청나게 배출했습니다.
러시아의 시인인 파스테르나크가 《닥터 지바고》에서 엄하게 규탄한 것도 이런 종류의 급진주의적인 이데올로기입니다.
그는 급진주의의 사도(使徒)들을 가리켜 “한 번도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았던 일이 없는 무리, 인생의 숨결, 인생의 혼을 느껴본 일이 없는 무리”라고 질타했습니다.
문호 타고르의 조카인 소미엔드라나트 타고르 씨도 그 참혹한 증례(症例)였습니다.
전에는 간디주의자였으나 후에 공산주의자가 된 이 청년이 간디에게 심한 적의를 불태우고 방문했을 때의 상황을 로맹 롤랑이 《일기》에 썼습니다.
그것은 ‘고결한 이상주의자로서 매우 진지하고, 자신의 신앙을 위해서라면 일체를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뛰어난 한 청년이 ‘혁명의 선풍(旋風)에 말려든 개인의 혼들이 치명적인 광기’에 빠져드는 비극이었습니다.
작년 소련 연방이 붕괴함으로써 러시아가 프랑스혁명을 종결시켰다는 소리가 일부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분명히 공산주의의 죽음은 프랑스혁명에서 러시아혁명으로 계속 이어온 근대의 합리적이고 급진주의적인 이데올로기의 죽음과 연결된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간디는 재빨리 그러한 이데올로기의 ‘아킬레스건’을 간파했습니다.
“합리주의자는 매우 훌륭하다. 그러나 합리주의가 전능(全能)을 주장할 때에는 소름 끼치는 도깨비가 된다.”
간디의 일생을 색채도 짙게 물들인 점진주의적 ‘실천상’은 그 때문에 존귀하고 영원히 불멸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셋째, 당연한 일이지만 간디에게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민중관(民衆觀)’입니다.
오늘날 민주주의 세상에서 민중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얼마만큼의 사람이, 얼마만큼의 지도자가 진실로 민중 측에 서서 일하고 있는가. 대부분은 민중에게 아첨하고 민중을 이용하며 뒤에서는 민중을 우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간디는 진정한 민중의 ‘벗’이며 ‘아버지’였습니다. 온몸으로 민중 속에 들어가, 온몸으로 고락을 함께하고, 온몸으로 민중의 마음을 깊이 파악했습니다. 그의 무사(無私)와 헌신의 일생은 문자 그대로 ‘성자(聖者)’라는 이름에 어울립니다.
간디는 “신(神)은 왜 그러한 ‘비폭력’의 대실험(大實驗)을 위해 나와 같은 불완전한 인간을 선택했을까.”라고 자문하면서 말합니다.
“신은 일부러 그렇게 하셨다고 생각한다. 신은 빈약하고 말이 없으며 무지(無知)한 대중에게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완전한 사람이 선택되었더라면 대중은 절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대중은 자신들과 같은 결점을 가진 인간이 비폭력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고 자기역량에 자신을 가졌던 것이다.”
저는 이 민중에 대한 애정과 동고(同苦)의 생각이 넘쳐흐르는 모습에, 마음 깊이 감동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신봉하는 니치렌(日蓮) 대성인도 이름 없는 한 어부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러한 자신을 오히려 자랑으로 삼으시고 민중불법(民衆佛法)의 깃발을 드높이 내걸고 나가셨습니다.
간디의 ‘민중관(民衆觀)’은 저에게 대승불교(大乘佛敎)의 보살도(菩薩道)의 진수, 진가를 방불케 합니다.
그의 ‘민중관’은 학대 받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 동고, 연민이라는 ‘자모(慈母)’와 같은 측면만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비폭력을 체득(體得)시킴으로써 민중에게 자기자신을 ‘약자’에서 ‘강자’로 단련시키는 ‘엄부(嚴父)’와 같은 측면도 아울러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간디는 “한 사람에게 가능한 것은 모든 사람에게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 항상 나의 변하지 않는 신조이기 때문에 실험은 개인적 공간이 아니라 야외에서 행하여 왔다.”라는 신념대로 망설임 없이 민중의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한 사람에게 가능한 것’이란 말할 나위 없이 ‘인간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완전한 자기정화(自己淨化)’를 목표로 하는 강자(强者)의 비폭력입니다.
이 비폭력의 높은 이상을 ‘모든 사람에게 가능케’ 하기 위해 민중에게 호소하여 ‘강자가 돼라, 강자가 돼라’ 하고 계속 부르짖으며 저렇게 대규모 대중운동으로 조직화한 예는 역사상 일찍이 없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우리 시대에서 최대의 정치적 천재”라고 간디를 찬탄했습니다. 저는 그 ‘우리 시대’를 ‘인류사상(人類史上)’이라고 바꾸어도 결코 지나친 칭찬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천재성은 많은 사람이 의심스러워하는 가운데 결행되어 근대 인도 역사상에 찬연히 빛나는 성과를 거둔 저 ‘소금행진’의 착상(着想) 등에 유감없이 발휘되었습니다. 그 천재를 지탱한 것이 바로 간디의 독자적(獨者的)인 투철한 ‘민중관’이었습니다.
그것을 신변 가까이에서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맹우(盟友)인 네루 초대 총리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저서 《인도印度의 발견》에서 간디의 등장을 ‘한바탕 부는 시원한 바람’ ‘한 줄기 밝은 빛’에 비유하여 참으로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주목한 것은 간디가 민중의 마음에서 ‘검은 공포의 옷’을 제거함으로써 “민중의 마음 자세를 크게 바꿨다”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오랜 세월의 식민지 지배가 불러온 권력에 대한 공포, 그에 따르는 비굴, 두려움, 체념 같은 약함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강자가 되는 첫걸음이었습니다.
“강해져라, 강하여라.” 하는 그의 격려는 “선량함에는 지식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단순히 선량함만으로는 그다지 소용이 없다. 사람은 정신적인 용기와 인격에 따르는 뛰어난 식별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말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선량함이나 강함은 현명함이라는 뒷받침이 있어야만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네루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 교훈이 간디가 인도민족에게 준 최대선물이라고 했습니다.
민중이 어떠한 권위나 권력에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이 민주시대의 여명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간디의 메시지는 인도에 한하지 않고 지구상의 모든 민중에게 준 선물로서, 미래 영원히 빛을 계속 더할 것입니다.
끝으로 문명론적 관점에서 ‘총체성(總體性)’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서구가 주도해온 근대문명의 결함은 한마디로 말하면 모든 면에서 ‘분단’과 ‘고립’을 깊게 한 점입니다. ‘인간과 우주’ ‘인간과 자연’ ‘개인과 사회’ ‘민족과 민족’ 그리고 ‘선과 악’ ‘목적과 수단’ ‘성(聖)과 속(俗)’ 등 모두 분단되고, 그 가운데서 인간은 ‘고립화’로 내쫓겼습니다. 인간의 자유나 평등, 존엄을 추구한 근대의 역사는 반면에 고립화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간디가 모든 인격과 모든 생애에 걸쳐 이야기한 것은, 이러한 근대문명과는 대립되는 주장이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확실히 유명한 차르카(실을 뽑는 물레)로 상징되는 그의 문명비판은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극단적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무엇보다도 존귀하게 생각하는 것은, 간디의 한마디 한마디 그리고 행동에서 꾸밈없이 발산되는 일종의 세계적인 감각이며 우주적인 감각입니다. 즉 ‘분단’과 ‘고립’을 극복하여 ‘조화’와 ‘융합’을 지향하는 ‘총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감각입니다. 그것은 간디의 다음과 같은 심정에 단적으로 토로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전 인류와 일체화되지 않았더라면 종교생활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정치에 들어섰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오늘날 인간의 온갖 활동은 전체적으로 불가분의 처지가 되고 있다. 인간의 일을 사회적인 것, 경제적인 것, 정치적인 것, 순수한 종교적인 것으로 완전히 구분할 수는 없다.
나는 인간의 활동에서 동떨어진 종교는 모른다. 종교는 다른 모든 활동에 도의적(道義的)인 기초를 제공한다. 그 기초를 빠뜨리면 인생은 ‘의미 없는 소음과 노기(怒氣)’의 미궁으로 바뀌고 말 것이다.”
참으로 명쾌한 논지(論旨)입니다.
그의 종교관은 종교와 생활을 불가분의 것으로 삼아 종교를 모든 인간활동의 원천이라고 포착한 대승불교의 본연의 자세와 멋지게 부합합니다.
정교분리(政敎分離)는 근대정치의 원칙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종교를 인간의 내면적 사사(私事)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순화된 종교성이 인간사회의 만반(萬般)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다 — 마하트마는 이렇게 호소하며 말을 걸어오는 것 같습니다.
저는 13년 전, 간디의 고제(高弟)인 J.P.나라얀 씨와의 만남을 상기합니다.
갠지스강 중류의 전원도시 파트나에 있는 그의 저택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한 시간에 걸친 대화는 지금도 선명하게 뇌리에 새겨져 있습니다.
나라얀 씨의 ‘총체혁명(總體革命)’이라는 사고방식에 강하게 끌린 저는 솔직하게 물었습니다.
“나도 이전부터 총체혁명을 제창해왔습니다.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혁명(人間革命)이 기본이며, 거기에서 정치, 교육, 문화 등 각 분야의 변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대해 나라얀 씨는 “전면적으로 찬성합니다.”라고 즉시 응하였습니다.
날마다 병마와 싸우는 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힘찬 어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에게서 저는 여러 시련에 부딪히면서도 맥맥이 계승되는 간디의 혼을, 그 깊은 숨결을 느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전에 현대의 ‘탈(脫)이데올로기의 시대’를 예견한 미국의 사상가 대니얼 벨은 “신성(神聖)한 것의 부활 즉 새로운 종교형태의 발흥(勃興)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이에 관해 의문을 갖고 있지 않다.”고도 말하였습니다.
저는 간디가 “종교란 종파주의를 뜻하지 않는다. 우주질서의 바른 도덕적 지배에 대한 신앙을 뜻한다.”고 호소한 열린 정신성·종교성이야말로 그것에 호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간디가 ‘이 위대한 정신성·종교성은 모든 사람 속에 평등하게 깃들어 있다. 그 내면의 힘을 잠재운 채로 있게 해서는 결단코 안 된다. 그것을 전 인류에게 자각시키자.’고 호소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간디가 ‘진리는 신(神)이다’를 모토로 삼고 종파성을 철저히 배제하면서 마음에 품고 있던 ‘성스러운 것’은 바로 이 정신의 힘이 아닐까요. 그것만이 흉포한 이데올로기에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소생시켜 인류사(人類史)를 열어갈 대도(大道)임을 저는 굳게 믿습니다.
제가 이 ‘평화의 왕도’를 은사에게 배운 때는 전쟁 후 얼마 안 된 열 아홉살 때였습니다. 이래 45년간 파란만장한 민중운동에 몸을 던져왔습니다.
이제부터도 더욱 간디가 일생 동안 민중 속에서 혼과 혼의 아름다운 공명(共鳴)을 연주해온 그 모습을 상기하면서, 존경하는 인도의 여러분과 함께 ‘부전(不戰)’ ‘평화’를 위해 위대한 정신의 연대를 세계로 넓혀 나아갈 결심입니다.
끝으로 간디에게 ‘마하트마(위대한 혼)’라는 존칭을 보낸 타고르가 ‘인간’과 ‘사회’와 ‘우주’를 꿰뚫는 영원한 생명의 율동을 멋지게 읊은 시 한 구절을 낭독하겠습니다.
‘낮도 밤도 없이 나의 혈관을 흐르는 똑같은 생명의 흐름이, 세계를 꿰뚫고 흘러 율동 있게 고동치면서 약동하고 있다.
그 똑같은 생명이 대지(大地)의 먼지 속을 뛰어다니고, 무수한 풀잎 속에서 기쁨이 되어 싹트고, 나뭇잎이나 꽃 들의 속삭임은 파도가 되어 부서진다.
그 똑같은 생명이 생(生)과 사(死)의 바다의 요람에서 조수간만(潮水干滿)에 따라서 흔들리고 있다.
이 생명의 세계에 닿으면 나의 손발은 넓게 빛나는 느낌이다. 그리고 지금 이 찰나에도 많은 세대의 생명의 고동이 내 피 속에 맥박치고 있다는 생각에 나의 긍지는 끓어오른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