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창립 355년이라는 미국 최고의 전통을 자랑하는 귀 대학의 초청을 받고, 스피치의 기회를 얻게 되어 매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지금 저를 소개해 주신 몽고메리 교수, 이 이후에 저의 스피치에 대해 평을 해 주실 나이 교수, 카터 교수를 비롯해 오늘 참석해 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세계를 놀라게 한 소련의 변혁은, 대하의 흐름과 같은 역사의 동향 - 근년(近年)에 나이 교수 등이 지적하시고 있는 '소프트파워의 대두'라는 현상을 더한층 부각시켰습니다.
즉 역사를 움직이는 요인으로써 예전에는 권력, 부(富)라는 하드파워가 결정적인 요소였으나, 최근에는 그 비중이 줄고 지식이나 정보, 문화, 이데올로기, 시스템 등의 소프트파워가 현저하게 힘을 더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드파워가 주역인 듯했던 걸프전쟁에서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드파워의 행사도 현대에 있어서는 UN이라는 시스템이나 그 배후에 있는 국제여론을 무시하고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한 시류를 역행(逆行)할 수 없는 것으로 해가는 일이야말로, 현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역사적인 사명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때 소프트파워의 시대를 열어나가는 가장 중요한 요점으로써 저는 '내발(內發: 외부에서의 자극이 없어도 내부에서 자연히 일어남)적인 것'이라는 부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드파워라는 것의 습성은 '외발적(外發的)'으로 때로는 '외압적(外壓的)'으로 인간을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게 합니다만, 그것과는 반대로 사람들간의 합의와 납득에 의한 '내발적(內發的)'인 촉구, 내발적인 에너지를 축으로 하는 곳에 소프트파워의 커다란 특징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로부터 인간의 정신이나 종교성에 뿌리내린 넓은 의미에서의 철학이 갖는 본래의 특색이었습니다.
소프트파워의 시대라고 해도 그러한 철학이 없으면 즉 인간쪽에서의 '내발적'인 대응이 없으면 지식이나 정보가 아무리 풍부해도, 예를 들면 용이하게 권력에 의한 정보조작을 허용하여 '미소짓는 파시즘'을 초래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소프트파워의 시대를 뒷받침하고 가속(加速)해 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전적으로 철학의 두 어깨에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이 '내발성'과 '외발성'의 문제를 예리하게 또한 상징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것이, 유명한 '양심예학(良心例學)' -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양심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미리 판례(判例)로써 정해 두는 것 - 을 둘러싼 파스칼의 예수회(Jesuit) 공격이 아닐까요.
아시는 대로 예수회는 신앙이나 포교에 임해서 양심이 따라야 할 판례의 체계를 풍부하게 갖추고 있습니다만, 파스칼은 내적인 혼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중시하는 장세니스트의 입장에서, 예수회류(流)의 그러한 외면적인 규범이나 계율이 본래의 신앙을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가를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인도나 중국에 있어서의 '양심예학'을 파스칼은 이렇게 공격합니다.
"그들(예수회)은 우상숭배를, 다음과 같은 교묘한 궁리까지 짜내어 신도들에게 허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옷 밑에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숨겨서 갖게 하고, 공공연하게는 석가나 공자의 상(像)을 예배하듯이 보이며, 마음 속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예배하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Provincial) >라고.
파스칼은 이국(異國)에 있어서 그러한 신앙 본연의 자세 그 자체를 모두 비난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확실히 그런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양심의 고뇌와 갈등, 망설임, 심사숙고, 결단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내발적인 기능 그 자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선택의 기준을 미리 판례로써 만들어 외발적으로 받아들여 버리면 안이하게 그것에 의존한 결과 양심의 기능은 꽉 막히고 마비되어 타락해 버립니다.
따라서 '안이함을 구하는 다수(多數)'에 대한 아첨에 지나지 않는 '양심예학'이란 파스칼에게 있어서는 양심의 자살행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파스칼의 논란은 단순히 예수회나 장세니스트의 다툼이라는 차원을 넘어 널리 인간의 보편적인 양심 본연의 자세라는 점에서, 실로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파스칼 정도의 순수함은 바랄 수조차 없다고 해도, 이러한 내발적인 혼의 기능이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결정되어, 사회에 생기를 주는 예는 역사상 극히 드물지 않을까요. 그 드문 예증의 하나를 저는 1930년대의 미국 사회를 방문하고 유례없는 분석을 한 프랑스의 역사가 토크빌(Tocque ville)의 고전적 명저(名著) <미국의 민주정치>의 묘사에서 발견했습니다.
말할 나위도 없이 19세기 초의 건국 후 반세기가 지난 미국을 방문했던 토크빌에게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은, 모국 프랑스와는 모습을 달리하는 그 지역의 종교사정, 종교적 양상이었습니다.
그 놀라움을 그는 "종교는 어떻게 외견적인 힘을 줄일 수 있는 가에 따라, 그 힘을 늘릴 수 있지 않은가"라는 의문으로 던지고 있습니다.
즉 프랑스에서는 종교가 교회 아래에서 많은 번잡한 의례(儀禮), 형식으로 되어 자칫하면 혼(魂)의 질곡(桎梏)으로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의 외적인 힘을 줄이는 것은 그대로 종교로부터 해방, 신앙심의 쇠약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흥국(新興國)인 미국에서는 도리어 의례나 형식을 적게 하면 할수록 사람들의 신앙심은 넘쳐흐르는 것 같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아메리카 연방만큼 기독교가 형식과 의례와 상(像)을 조금밖에 포함하지 않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또한 여기만큼 기독교가 인간의 정신에 대해서 명확하고 단순한 그리고 일반적인 이념을 나타내고 있는 나라도 볼 수 없다"라고. <전게서(前偈書)>
토크빌의 지적은 일단 프랑스에 있어서 카톨리시즘(천주교)의 유명무실화와 미국에 있어서 퓨리터니즘(청교도)의 융성을 말하고 있는 듯하지만, 더 부연해서 생각하면 신앙에 있어서의 '내발적인 것'이, 가장 순수한 형태로 시대정신의 흐름으로 결정되어 가는 것에 대한 감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어쨌든 종교라고 이름할만한 종교라면, 개인적인 측면과 제도적인 측면을 갖습니다. 고등종교는 반드시 무엇인가 절대적인 것 아래에 모든 인종, 신분, 계급을 초월한 개인의 존엄성을 설합니다만, 그것과 동시에 종교가 운동체로서 전개하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제도화의 요청이 생깁니다.
그러나 제도적 측면은 시대와 함께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것이며, 개인적인 측면을 '주(主)'로 하면 제도적인 측면은 '종(從)'에 해당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종교가 빠져왔던 것은, 제도적인 측면이 경직화되는 것에 의해 제도가 인간을 구속하고, 종교 본래의 순수한 신앙심을 잃어 간다고 하는 본말전도입니다. 제도나 의례 등의 외발적인 힘이, 신앙심이라는 힘을 억눌러버리는 것입니다.
토크빌이 대서특필하고 있는 것은 당시 미국의 종교사정만큼 이러한 본말전도의 악폐에 빠지지 않고 신앙 그 자체의 순수함이 간직되어 있는 사회는 드물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시대정신을 배경으로 하여 비로소 "내 안에 신을 나타내는 것이 내게 힘을 붙인다. 내 밖에 신을 나타내는 것은 나를 사마귀나 혹처럼 작은 것으로 한다" (<에머슨 선집 제1권>)라고 했던 에머슨의 '내발적인 것'을 노래한, 관대한 낙관주의도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그런 사정은 바다가 잔잔해지는 것에 비유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 이전의 공인 종교로서의 정교일치적(政敎一致的) 색채의 강한 흐름과, 그 이후의 세속화 속에서 내면적이며 개인적인 일로 왜소화해 가는 흐름과의 사이에 생긴 행운이며 행복한 잔잔함과도 닮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동시에 그것은 단순히 사라져간 한 시기가 아니라, 미국 사람들의 역사의식의 심층에 귀중한 전통으로서 쌓여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근대 일본에서는 그러한 정신의 내발적 발로의 예증을 구하려 하면 약간 무리가 있는 듯합니다.
메이지(明治)의 개국(開國) 이래 일본은 '서 선진국을 따라잡아라 앞질러라'를 슬로건으로 근대화의 길을 쉬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거기에는 문호(文豪) 나쓰메 소세키가 바로 정통으로 '외발적 개화(開化)'라고 이름 붙였듯이, 목표나 규범은 항상 밖에서 주어져 내발적인 것을 육성할 여유도 시간도 없었습니다.
여기에서도 하나의 에피소드를(메이지시대의 니도베 이나조(新渡戶稻造)를 둘러싼 에피소드) 소개하고 싶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니도베는 '태평양에 우호의 무지개를 걸자'라고 요람기의 미·일관계의 개선에 분주했던 인물입니다만, 그가 벨기에의 지인(知人)과 종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을 때 "당신 나라의 학교에는 종교교육은 없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깊은 반성 끝에 발견한 것이 종교를 대신해서 에도(江戶)기에 형성되어, 메이지의 말년까지 일본인의 정신형성에 관계하여 힘이 있었던 무사도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사도 일본의 혼>이라는 책을 쓰고 부제(副題)로 '일본 사상의 해명'이라고 이름 붙였던 것입니다.
그 내용은 생략하지만 무사도의 정신성이 프로테스탄티즘이나 청교도와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메이지시대 일본에서 벤자민 프랭클린의 글이 메이지시대 일본에서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것보다도 더한층 내가 본론의 문맥에서 강조해 두고 싶은 것은, 무사도에 의한 정신 형성이 일본인에게 있어서 내발적이었다 라는 것입니다.
내발적이란 자제(自制)적인 것이며, 외부(外部)의 압력에 의하여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무사도가 형성된 에도시대의 일본에서 독직(瀆職)이나 범죄가 현대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적었다는 것은, 사회에 내발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었던 증거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것은 또한 저에게 "아메리카 연방에 있어서 만큼 형법이 관대하게 시행되고 있는 곳은 없다"라는 토크빌의 말을 상기시킵니다.
정신의 작용이 내발적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를 다루는데 실수하는 일이 적고 인간의 증거라고 해야 할 극기(克己)의 형태에 무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이렇다 할 마찰도 불안도 없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거기에서 형성되는 문화의 형태는 일본 독자(獨自)적인 아름다움과 매력을 풍기고 있습니다.
귀 대학 출신으로 오모리패총(大森貝塚)의 발견자인 E. S. 모스가 일본의 서민사회 속에서 발견했던 놀랄만한 미풍도(美風), W. 휘트먼이 맨해튼의 큰 길을 가는 일본의 사절에게서 느꼈던 기품도, 모두 이 문화의 형태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이래 백여 성상(星霜), 어쨌든 현재의 미·일간에 기본적으로 우호관계가 유지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일본의 경제력이 증대됨에 따라서 갑자기 불협화음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최근의 구조협의(構造協議) 등을 통해서 떠오르는 문제는, 본질적으로 경제적인 부분보다 문화적 마찰을 더 부각 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문화라고 해도 반드시 우호를 촉구한다고 할 수 없고 고유의 생활양식에 깊이 뿌리내린 부분에 영향을 미칠 때, 다른 문화간의 접촉은 종종 혐오와 반목을 일으키게 됩니다.
다른 문화끼리 충돌하여 그러한 혼란 상태를 일으켰을 때만큼 깊고 내발적인 자기규율, 자기제어의 마음이 사람들에게 요청되는 때가 없습니다.
파트너십이라고 하는 면에 있어서 그러한 정신적인 뒷받침이 되어 있지 않으면 결국 그림의 떡으로 끝나고 말겠지요.
또 정신적 뒷받침이 없었기 때문에 근대 일본은 어느 때는 외국, 특히 서양에 대해서 쓸데없이 비굴해지기도 하고, GNP 통계만으로 오만불손해지며, 불신과 과신 사이를 왔다갔다 해 왔습니다. 진주만 습격 5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자기규율의 철학부재가 무참한 파국을 초래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합니다.
덧붙여서 <무사도>라고 하면, 이 조그만 책이 러·일전쟁 종결을 위한 포츠머스 회담에서 상당히 만족스러운 역할을 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개전(開戰) 직후 다음에 올 강화(講和)를 위한 중재의 노력을 테오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기대했던 일본 정부는, 대통령과 하버드대학의 동창생으로 그 후 깊이 교류하고 있던 귀족원 의원 가네코 겐타로(金子堅太郞)를 미국으로 파견했습니다.
대통령은 흔쾌히 그 의뢰를 받은 다음, "일본인의 성격이나 그 정신교육면에서의 원동력을 보여주는 책"을 요청하자, 가네코가 건네준 것이 <무사도> 였습니다.
몇 개월 후 가네코를 만난 대통령은 "이 책을 읽고 일본인의 특성을 잘 알 수 있었다"라며, 기꺼이 강화를 위한 활동을 해주셨던 것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결코 평온하지 않았던 미·일 근대사에 상쾌한 빛을 더하고 있습니다.
니도베가 선구적인 교육자였던 것을 생각하니, 몽고메리 교수가 소장으로 계시는 소카대학교 로스엔젤레스분교의 환태평양 평화·문화연구센터도, 미·일 신시대에 무지개를 만드는 노작업(勞作業)의 일단을 담당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공헌할 것을 기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지난날의 그러한 내발적인 파워, 에너지를 세기말의 고갈된 정신의 대지에 어떻게 하여 소생시켜 가는가. 일본에 있어서도 미국에 있어서도 그것은 용이하지 않은 작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저는 불법철리의 골격 중의 골격이라고도 해야 할 '연기(緣起)'라는 사고방식에 대해 언급하고자 합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불법에서는 인간계이든 자연계이든 삼라만상 모두, 서로 '인(因)'으로 되고 '연(緣)'으로 되어 서로 뒷받침하고 서로 관련하고 있으며, 사물은 단독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런 관계성 속에서 생긴다 - 라고 설합니다.
이것이 '연(緣)해서 일어남' 이라는 것이며 단적으로 말해 '개별성' 보다 '관계성'을 중시하는 것입니다.
또한 관계성을 중시한다 해도 그 속에 개인이 매몰되어 버리면, 인간은 사회의 움직임에 떠내려갈 뿐으로, 현실에서의 적극적인 관계는 희박해져 버립니다.
불교사에서 그 경향을 현저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베르그송이나 귀 대학에서 오래 교편을 잡았던 화이트헤드 등 지성(知性)이 예리하게 지적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참된 불법의 진수는 더욱더 그 앞에 빛을 비추고 있습니다. 즉 진실한 불법에 있어서는 그 관계성을 인식하는 방법이 뛰어나게 역동적이며, 총합적이고 내발적입니다.
앞에서도 이(異)문화간의 접촉이 초래하는 혐오와 반목에 대해 언급했습니다만, 관계성이라고 해도 반드시 우호적인 것이라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저 쪽이 서면, 이 쪽이 서지 않는다 라고 하는 적대관계에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조화 있는 관계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 역시 에피소드에 의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석존은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생명은 존엄하다고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죽이고 먹으며 살아간다. 어떤 생물을 죽여도 되고 어떤 생물을 죽여서는 안 되는가?"라고.
누구나 딜레마에 빠지기 쉬운 간단한 의문입니다만, 이것에 대한 석존의 대답은 "죽이려는 마음을 죽이면 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석존의 대답은 도망치려는 핑계도 아니고 속임수도 아닙니다. '연기'관(觀)에 근거를 둔 훌륭한 해답입니다.
생명의 존엄이라는 조화로운 관계성은 '죽여도 좋은 생물'과 '죽여서는 안 되는 생물'이라고 하는, 때로 적대하고 반목하는 현상계(現象界)의 표층이 아니라 심층에서 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단순한 객관적인 인식의 대상을 넘어서 '죽이려는 마음을 죽인다'라는 인간의 주체적 생명 속 깊이 맥동치는 자타의 구별을 초월하는 자애의 에너지입니다. 이 다이나믹하고 총합적이며 내발적인 생명의 발동은 베르그송이나 화이트헤드가 지적하고 있는, 단순한 자아의 소멸(=무아)이 아니라 자타의 생명이 융합하면서 넓혀 가는, 소아에서 대아로의 자아의 우주대의 확대를 지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신봉하는 불교의 가르침에는 '정보(正報) 없이 의보(依報) 없다'( : 생명 없이 환경은 존재할 수 없다.)라고 있습니다.
'정보' 즉 주관세계와 '의보' 즉 객관세계가 이원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필수불가결한 관계에 있다고 하는 것이 불법의 기본적인 생명관, 우주관입니다.
그와 동시에 그 상호관계는 객채화된 두 개의 세계가 일체로 된다는 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의보'인 삼라만상도 '정보'라고 하는 내발적인 생명의 발동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고 하는, 극히 역동적이며 또 실천적 색채가 강한 것입니다. 요는 그 '정보'인 '내발적인 것'을 어떻게 끌어내는가.
'양심예학'에 따라서 극히 가까운 예로 말하자면, 나도 불법자로서 이 정신에 따라, 예를 들면 이혼문제로 상담을 청해 왔을 경우, "이혼한다, 안 한다는 개인적인 문제이고 당연히 본인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타인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는다'라는 삶의 태도는 불법에는 없습니다. 그것을 기준으로 생각해 주세요."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딜레마에 따르는 고뇌와 인내와 심사숙고 속에서만이 파스칼적 의미에서의 양심에 내발적인 기능은 선한 것으로 단련되어, 인간관계를 분단하고 파괴하는 악을 최소한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그리고 이러한 내발적인 정신으로 뒷받침된 자기규율, 자기제어의 마음만큼 현대에 필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깊은 존경을 북돋아 줄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가 희박해져 가는 세계에서 약해져버릴 수 있는 우정, 신뢰, 애정 등 더없이 소중한 인간의 연대를 생생하게 소생시켜 가기 위해, 귀중한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적인 의미에서 그 작업은 넓은 의미에서 철학의 복권이며 또 그러한 철학의 토양 위에 소프트파워의 시대는 참으로 풍요롭게 열매를 결실시키겠지요. 아울러 그것은 국경이 없는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시민의 훈장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경애해 마지않는 에머슨, 솔로, 휘트먼 등 '아메리카 르네상스'의 기수(旗手)들도 또한 그러한 세계시민의 일원이었던 것이 아닐까요.
끝으로 내가 청춘 시대에 애송했던 에머슨의 우정을 노래한 아름다운 시의 일절을 여러분께 바치며, 저의 이야기로 하겠습니다.
나의 가슴은 말했다.
오 벗이여.
그대 한 사람 있음에 하늘은 개이고
그대 있음에 장미는 붉고
만물은 그대 있음에 그 모습은 기품이 있고,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보인다.
숙명의 수차(水車)의 길도
그대의 고귀함에 일륜(日輪)의 대도(大道)로 된다.
그대의 고결함은 나에게도 가르쳤다.
나의 절망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나의 감추어진 생명의 샘은
그대의 우정 있음에 아름답다.
<에머슨 선집>제2권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