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저께 촌락박물관을 견학하고, 그곳 광장에서 조국 루마니아의 미래를 짊어질, 아름답고 늠름한 마음으로 성장하는 소년소녀들의 민족무용을 보고 감동했습니다.
아름다운 눈동자의 소년소녀 한 사람 한 사람이 “평화를, 평화를!” 하고 노래했습니다. 또 춤을 추며 “태양과 자유와 평화가 없으면 우리의 미래는 어둡다”고 부르는 노래는 평생 저의 귓가에 울리며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얼마나 평화를 사랑하고, 얼마나 평화를 위해 배워야 하는지 그 강한 생명의 울림을 느꼈습니다.
또 각 촌락에 수백년 된 집 일흔한채를 그대로 보존한 모습을 보고, 귀국의 마음속에 있는 정신은 태양과 자유와 평화를 일관되게 희구하고, 그것은 그 심정의 발로(發露)라는 사실을 저는 알았습니다.
어쨌든 이번에 아름다운 꽃, 그리고 신록에 감싸인 귀국에 ‘루마니아민주주의사회주의통일전선(FDUS)’의 초청을 받고 처음 방문하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더욱이 전통 있는 부쿠레슈티대학교에서 강연할 기회를 주셔서, 이온 이오비츠 포페스쿠 총장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깊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또 자리를 함께 해주신 교수님과 학생 여러분에게 깊이 경의를 표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소카대학교 창립자로서 또 국제창가학회(SGI) 회장으로서 세계 각국을 방문하며 평화·문화·교육의 교류에 온 힘을 다해왔습니다.
존귀한 역사의 연륜을 새긴, 신록이 우거진 거목에 둘러싸인 산들과, 석유저장소 저편에서 찬란하게 태양이 떠오르는 국장(國章)이 상징하듯이, 양양한 신세기를 향한 귀국의 앞길을 생각하면서, 또 루마니아와 일본의 교류가 더한층 발전하기를 기원하면서, ‘문명의 십자로(十字路)에 서서’라는 제목으로 조금 시간을 내어 소감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귀국은 풍부한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경제성장을 이뤄내, 세계대전 후 사회주의 제국(諸國) 중에서 선두를 달리는 나라입니다. 그와 동시에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민간전승(民間傳承)의 보고(寶庫)로서 일본에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일본 최대의 음악감상단체인 민주음악협회의 창립자입니다. 그 민주음악협회가 지지난해 여름 ‘실크로드 음악여행’을 개최했습니다. 그때 루마니아에서도 연주자 세명을 초대해 전국적으로 연주회를 열었습니다.
‘나이(Nai)’라는 민족악기가 내는 경쾌하고 묘한 음률은 귀국의 민족과 민중의 혼의 울림을 싣고 일본 각지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혼의 울림에 귀를 기울이면서, 저는 귀국의 파란만장한 역사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귀국은 기원전 게테족의 고대국가로 시작해 로마제국에 합병, 고트족과 훈족의 침입, 슬라브족의 남하에 따른 비잔틴문화권에 편입, 오스만제국의 지배, 그리고 19세기 후반부터 독립하기 위한 길로, 몇 성상에 이르는 시련을 거쳤습니다.
그런 거대한 역사의 물결 속에 자유와 독립과 존속을 바라 마지않는 루마니아민족의 마음은, 꽁꽁 얼어붙은 대지 아래 갇혔을 때에도 잠시도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다양한 문화가 귀국의 대지에서 교차하며 비옥한 정신적 토양으로 축적된 것이 아닌가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것이 민간전승의 보고(寶庫)인 까닭이기도 합니다만, 역사의 도태작용을 견디며 현대에 남아 있는 몇개의 대문명 중에서도 귀국은 서유럽 그리스도교문명, 비잔틴문명, 이슬람문명, 이 세 문명에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 의의에서 봐도, 저는 분명히 귀국은 역사적으로도 그리고 지리적으로도 ‘문명의 십자로’에 엄연히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문명의 교차는 반드시 평화롭게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주 무력에 의한 침략이나 정복을 동반하고, 그 결과 쇠망한 문명도 많습니다.
그러나 문명과 문화는 언뜻 보기에 멸망한 듯이 보여도 그 민족의 마음속 깊이 지하수맥처럼 계속 흐릅니다. 그 수맥은 다양하게 변형되면서도 언젠가 또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지상에 분출합니다. 그것이 문화적 전통이 지닌 힘이기 때문입니다.
동양에 온고지신(溫故知新), 즉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랜 역사와 문화를 소중히 해야 미래의 전망도 열린다는 뜻입니다. 저는 그러한 관점에서 21세기를 향한 전망을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제 나름대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부분과 전체’라는 관점입니다. 이 ‘부분과 전체’라는 두 가지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21세기를 향한 진로를 결정짓는 열쇠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대사회가 하나의 세계, 하나의 전체로 긴밀히 연결을 강화하는 것은 이제 상식입니다.
15세기 대항해시대가 시작되고, 산업혁명을 거쳐 급격히 발전한 근대 과학기술문명은 민족과 민족, 문명과 문명을 가로막은 거리공간을 단숨에 단축했습니다.
비근한 예를 들면, 오일쇼크나 최근에 일어난 역(逆)오일쇼크가 주는 교훈은, 한 나라의 경제만을 생각해서는 그 나라뿐 아니라 세계경제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또 몬트리올과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올림픽경기에서 크게 활약한 귀국의 나디아 코마네치 선수의 화려한 연기는 위성중계를 통해 즉시 일본의 각 가정에 방송되었습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핵무기의 출현이 있습니다. 만약 미소 양대국이 전면 핵전쟁에 돌입하면 이제는 승자도 패자도 없고, 인류는 멸망의 구렁에 처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핵무기는 지구를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선악 양면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세계를 하나의 전체, 또는 무언가의 형태로 통일되는 하나의 사회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는 시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가 하나로 되는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발생하는 국제분쟁이 40건, 그 분쟁에 관계되는 나라가 45개국에 이릅니다.
어리석게도 인간의 역사는 비극적인 무대를 너무나도 크게 연출해왔습니다. 그리고 인간끼리 잔학한 방법으로 서로 죽이고 있습니다.
어쨌든 저명한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게테인(人)을 “트라케인 중에서는 가장 용감하고 정의심이 강하다.”고 간결하게 평했습니다. 참으로 예리한 통찰이라고 저는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게테인은 그 후 로마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완고(頑固)한 지배와 예속(隸屬)이 아니라, 인종적으로 혼혈을 반복하고, 우수한 로마문명과 융합함에 따라 루마니아의 민족을 형성했습니다.
오늘날 귀국이 전개하는 과감한 자주, 평화, 외교 등을 볼 때, 그러한 역사의 연혁에 제 생각이 미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건 그렇고, 세계가 하나로 되는 도정(道程)에 국가 간, 민족 간의 대립이 큰 장벽이라는 사실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이 대립을 해소하는 데는 유엔 등이 끈질기게 노력해야겠지요.
그러나 제가 ‘전체’에 대한 ‘부분’이라고 말씀드린 것은 반드시 그러한 국가와 민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어느 쪽이냐 하면, 정치 차원에 무게를 둔 구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러한 구분도 ‘평화 5원칙’ 등을 축으로 하면서 당연히 존중되어야 합니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그것들이 서유럽 제국(諸國)이 주도한 근대 내셔널리즘이 불러온, 겨우 수백년밖에 안 된 지난 역사의 소산이라는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18세기 말에 《불가리아황제사》와 《성자전聖者傳》을 저술하고, 훗날 귀국의 ‘문화의 아버지’로 칭송받은 수도사 파이시 힐렌다르스키의 활약이 상징하듯이, 5세기에 걸친 오스만 지배하에서도 불가리아정교인들은 민족의 혼을 계속 지켰습니다. 그 공적은 릴라수도원 창립 1000년 기념식에서 당시의 게오르기 디미트로프가 “불가리아 인민의 민족의식과 생명을 지킨다는 역사적인 대사업에 대한 명예는 우리 정교회가 받아야 할 것이다.” 하고 말한 대로입니다.
그 배경에는 인류의 수천년 역사와 전통이 뒷받침하고 있는 풍요롭고 다채로운 문화적 토양이 있습니다. 풍부한 민간전승이 나타내듯이 루마니아에는 루마니아 고유의, 그리고 일본에는 일본 고유의 문화가 민중의 마음속에 맥맥이 계승되고 있습니다.
스위스의 사상가 베르너 캐기는 “하나의 세계, 즉 그것이 갑(甲)의 형태든 을(乙)의 형태든 우리의 미래를 형성할 것이라는 하나의 세계도, 고향이라는 세포군 — 정신생활이 동이든 서든 그때그때 번창한 세포군 — 이 건강을 유지했을 때만 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캐기가 말한 ‘고향이라는 세포군’은 각 민족 고유의 문화이고, 제가 말하는 ‘부분’도 그것을 의미합니다. 암 같은 악성세포가 인간의 신체를 차츰 해치듯이, 하나의 세계라는 ‘전체’를 향한 발걸음도 고유의 문화입니다.
‘부분’을 소홀히 하면 그림의 떡으로 끝나고 말겠지요. 그래서 어떻게 양자의 균형을 맞추느냐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행위인지는 과학기술로 근대화를 추진하는 나라들이 한결같이 전통과 근대화 문제로 고투하고 있다는 사실이 잘 말해줍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근대화는 하나의 세계화라는 또 다른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기서 호수 건너편 기슭을 향해 노를 저어 건너는 한척의 작은 배를 가정해보겠습니다.
작은 배는 전통문화, 노는 근대화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배를 타고 전력을 다해 노를 저어도, 호수의 파도가 심하면 배는 도저히 건너편 기슭에 닿을 수 없습니다. 시련에 방치된 현대문명은 필사적으로 노를 젓지만 오도가도 못 하는 배와 어딘가 닮았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지금 요망되는 것은 잔잔하고 평온한 호수입니다. 그리고 이 호수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개개의 전통문화를 빛내면서 그것들을 하나로 잇는 보편적·정신적 가치가 아닐까요. 다시 말해 이 원점인 정신의 세계화를 성취하지 못하면, 빠르게 진행되는 근대화와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응할 수 없다고 저는 깊이 우려합니다.
저는 여기서 귀국이 낳은 세계적인 종교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의 말이 생각납니다. 엘리아데는 “내 소망은 현대의 서양인과, 잘 알지 못하는 혹은 친숙하지 않은 의미의 세계와 만남으로써 ‘새로운 휴머니즘’이 창출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새로운 휴머니즘’이라는 평이한 표현 속에 문명의 십자로에서 탄생해 성장한 사람이면서 비로소 가능성 있고 풍부한 미래성을 잉태하고 있습니다. 단지 유감스럽지만, 엘리아데의 소망에도 불구하고 이 ‘새로운 휴머니즘’에는 아직 확실한 윤곽이 부여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스웨덴의 알바 뮈르달 여사가 평화를 외치는 데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은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아서, 실은 저는 조금 피곤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하고 솔직하게 말했듯이, 분별 있는 사람들을 실의(失意)에 몰아넣는 현실이 앞에 가로막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역사의 깊은 흐름에서 시선을 돌리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의 수면 위에서는 다양한 현상이 물거품처럼 떠올랐다 사라지고, 사라지면 떠오르기를 반복합니다만, 장기적으로 역사를 결정짓는 것은 물 아래 깊이 느릿하게 흐르는 강의 흐름입니다.
저는 다른 것이 아닌 민중의 대지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의 문을 두들기고 보면 그 깊고 느릿하게 흐르는 소리가 분명히 들린다고 확신합니다.
화제가 바뀝니다만, 도쿄의 중심지에는 루마니아요리를 먹을 수 있는 세련되고 깔끔한 ‘다리에’라는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다리에’는 귀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인 자하리아 스탄쿠의 명작 《맨발의 다리에》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은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많은 독자가 읽고 있습니다. 저는 바빠서 전부는 읽지 못했지만 내용의 요점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압정(壓政)에도 굴하지 않고, 가난하지만 강인하고 명랑하게 꿋꿋이 사는 농민들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중에 가장 인상에 남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맨발의 다리에》의 무대는 도나우강 바로 앞에 있는 불가리아와의 국경 부근인 듯합니다. 그래서 다리에마을 사람들과 불가리아인의 교제는 매우 일상적이었습니다. 강을 건너 봄에는 씨앗을, 가을에는 채소를 팔러 오는 그들은 흙냄새가 풍기는 우정으로 맺어졌습니다.
그런데 불가리아와 터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불가리아인들이 발길을 딱 끊고 다리에마을에 통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이반, 스토얀, 베르치우, 안톤 … 등 친한 이름이 잇달아 전쟁터에서 사라졌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다리에마을 사람들이 불가리아인과 싸우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광장에 모여 헌병에게서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저마다 소곤거리기 시작했다.”고 스탄쿠는 썼습니다.
“우리가 불가리아인에게 무슨 원한이 있다고? 친구들이 아닌가. 이반도, 스토얀도 죽어서 잘 됐네. 살아 있었으면 저네들과 전쟁터에서 서로 얼굴을 맞대야 했을 텐데. 어찌 이런 부끄러운 일이 있는가. 우리는 서로 싸우고, 서로 총을 쏘아야 했을 텐데 …. 오, 신이시여, 신이시여!”
얼마나 아름답고 따뜻한 인간성이 용솟음칩니까. 분명히 그들은 배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왜곡된 민족적 편견이나 적의(敵意)와는 무연(無緣)했습니다.
배우지 못했지만 생활의 대지에 확실히 뿌리를 내리고, 루마니아인과 불가리아인을 불문하고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잠재해 있는 아름다운 인간성과 정신적인 면을 한층 더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는 배우지 않는 것을 장려할 마음은 별로 없습니다만, 모든 지식과 학문은 그러한 민중의 신선한 생활감각에 봉사해야 한다는 점만은 절대로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뛰어난 문학작품은 민족의 마음속 주름 하나하나를 예리하게 그대로 그리고, 모든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보편적인 모습을 보여 줍니다.
스탄쿠가 훌륭하게 묘사했듯이 민중의 마음, 널리 인간의 마음은 불필요한 장식물을 제거해버리면 상상 이상의 평화주의자이고 세계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번에는 일본의 민중에 관한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일본과 제정러시아가 전쟁을 시작한 1904년 무렵의 이야기이므로 《맨발의 다리에》의 무대와 같은 시기입니다.
어느 때, 일본군이 연대본부에 러시아 장교 한명과 병사 한명을 사로잡아 왔습니다. 첫 포로였습니다. 한 중대장이 병사들을 모아놓고 “포로견학을 희망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라.” 하고 말하자, 손을 든 사람과 들지 않은 사람이 거의 반반이었습니다. 중대장이 견학을 희망하지 않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한 병사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저는 고향에 있을 때는 직공이었습니다. 군복을 입은 후에는 일본 병사입니다. 저는 포로가 어디의 어떤 사람인지 모릅니다만, 적이긴 하나 그는 운이 나빠서 포로가 되어 여기저기 끌려다니면서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비록 적일지라도 저는 그가 딱해서 견딜 수 없습니다. 저는 견학하러 가서 그를 부끄럽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중대장은 병사의 말을 듣고 매우 기뻐했고, 견학을 희망했던 병사들도 그의 말에 공감해 마침내 포로견학을 중지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일본의 유명한 작가가 써서 남긴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전쟁의 와중에 있었던 사건이어서 더욱 각별히 마음이 맑아지는 듯한 에피소드입니다. 저는 이러한 아름다운 인간성을 상징한 발상이 직공이라는 평범한 민중의 마음에서 생겨나고, 순식간에 전 중대원을 공감케 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고귀하게 생각됩니다.
그 병사는 절대로 전쟁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직공으로서 하루하루의 일을 가장 소중하게 또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전쟁터에 와서도 인간이라는 긍지만은 잃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포로를 “어디의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만 …” 하고 가엾게 여기는 말에는, 포로들도 자기 나라에 가족이 있고, 노동자 생활을 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애석하게 생각하는 정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다리에마을 사람들의 생각과도 같고, 생활의 향기가 나는 민중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전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두 가지 사례가 모두 ‘치욕’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을 유념해주십시오.
불가리아 벗들과 서로 살상하는 것을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마음, 러시아인 포로를 ‘부끄럽게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마음, 이 두 마음은 멀리 떨어져서 아직 알지 못하는 이방인이라 해도 반드시 어딘가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있겠지요.
“과제는 발밑에 있다.”고 합니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새로운 휴머니즘’은 관념이나 슬로건이 아니라, 틀림없이 이러한 민중이 지닌 마음의 토양 위에서만 찬란하게 꽃을 피울 것입니다.
또 민중의 마음에 지탱되어야만, 마치 노를 확실히 저으며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이 나아가는 배처럼 전통과 근대화, 제가 말하는 ‘부분과 전체’도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어쨌든 앞으로 21세기까지 남은 기간은 20년이 채 못 됩니다. 그리고 역사는 잠시도 흐름을 멈추지 않습니다.
‘새로운 휴머니즘’을 구축하는 작업은 모두 여러분의 또 우리의 양 어깨에 달렸습니다.
저도 인간의 존엄을 끝까지 설한 니치렌(日蓮) 대성인의 불법(佛法)을 신봉하는 사람으로서, 지금까지도 그 작업에 온 힘을 다해 왔고, 앞으로도 힘이 있는 한 몸 바쳐 일할 결심입니다.
다가올 세기를 물심양면으로 번영하는 하나의 세계로 장엄하게 하기 위해, 아득히 먼 길을 함께 손잡고 나아가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물추메스크(감사합니다). (큰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