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황금빛이 출렁이는 가을에 모스크바를 방문했는데, 어느덧 8개월이 지났습니다. 가깝고도 평생 잊지 못할 벗과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심정으로 러시아의 대지를 다시 밟았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기탄없이 솔직한 의견을 교환하는 일은, 얼마나 오랫동안 교류했느냐와는 상관없이 체제라는 장벽마저 초월해,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와 같은 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꽁꽁 얼어붙은 시베리아벌판에도 봄이 찾아와 어린 풀이 움트듯, 기나긴 압제를 참고 견디며 인간해방이라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연 민중의 굽히지 않는 의지와 힘은, 러시아의 풍토가 낳은 긍지 드높은 특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 이런 국민성이 오늘날 소련을 형성하는 독자적이고 전통적인 민중문화를 활짝 꽃피우게 했다고 해도 좋겠지요. 이 점은 러시아문화의 정화(精華)라고 할 수 있는 문학세계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러시아문학에서 어떤 특징을 볼 수 있을까요. 모스크바대학교 학생인 여러분 앞에서 당연한 말을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해외의 벗이 말하는 솔직한 느낌이라 여기고 들어주기 바랍니다.
저는 모든 민중의 행복과 해방 그리고 평화라는 이상을 위해 문학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늘 목표로 높이 내건 점이 러시아문학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결코 일부 특권계급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또 문학은 압제 아래에서 기아와 빈곤에 시달리며, 거듭되는 전란에 강제로 희생당하는 압도적 다수의 민중을 무시하고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예술지상주의적(藝術至上主義)이고 특정분야에 한정된 경향을 보이는 유럽 여러 나라의 문학에 비해, 러시아문학이 대부분 사회문제에 보내는 강한 관심은, 실로 민중과 동고동락하며 운명공동체적인 삶을 살려는 진지한 구도심을 반영한 것이겠지요. 이런 구도심이 러시아문학에 등장하는 인간군상에 한없는 깊이를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고리키의 《밑바닥》을 읽으며 느꼈던 선명하고 강렬한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고리키는 글자 그대로 퇴폐적이면서 밑바닥 인생을 사는 등장인물 사틴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첼로벡(인간)’,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울림인가.”
당시 저는 전쟁에 패해 황폐한 땅에서 열일고여덟이라는 감수성이 예민한 청춘시절을 맞았습니다. 모든 가치관이 무너졌습니다. 친구들과 빈 배를 움켜쥐고 다 타버리고 얼마 남지 않은 책을 들고 모여, 내일의 빛을 찾아 탐욕스러우리만큼 독서에 빠져 있던 제 마음은, 《밑바닥》에 나온 이 구절을 읽고 한 줄기 빛이 번쩍이는 듯한 감동을 받았으며, 아직도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실로 고뇌에 차고 황폐한 밑바닥에서 용솟음치며 나오는 듯한, 이 ‘첼로벡’라는 전 인간적인 외침이 바로 러시아문학의 특징적인 인간관을 응축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러시아혁명의 위대한 지도자 레닌과 고리키가 친분이 매우 두터웠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이 파란만장한 혁명가에게 한층 더 깊은 친근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압제 아래서 참고 복종하며 괴로움에 시달리면서도 더욱 희망을 잃지 않고, 러시아의 전통과 미래를 깊이 믿고 묵묵히 사는 민중에 러시아의 문학가들은 끊임없이 빛을 비추며 나아갔습니다.
우리 창가학회가 펼치는 사회운동의 원점도 민중입니다. 민중에서 시작해 민중으로 돌아간다, 즉 민중의 자발적인 의지를 결집해 평화의 에너지로 삼는 운동입니다. 따라서 저는 러시아문학이 추구하는 가장 큰 주제가 민중의 굴하지 않는 의지라는 점에 크게 공명(共鳴)합니다.
“우리가 지닌 정치적 자유는 농노해방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선언한 국민시인 푸시킨을 비롯해 고골리, 네크라소프,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체호프 등은 모두 평생 ‘인민의 벗’이었습니다.
설령 아무리 유럽적인 교양을 몸에 익힌 지식인이나 귀족계급을 묘사할지라도, 거기에는 그런 틀에 끼워 넣을 수 없으며 글자 그대로 ‘러시아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인간상이 등장합니다.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에 나오는 타티야나가 그렇고,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플라톤 카라타예프가 그렇습니다. 이 등장인물들을 빌려 묘사한 뛰어난 문학가들의 예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당시 난숙기(爛熟期)를 맞은 유럽문명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서도 그 한계를 뛰어넘어, 우리 시대의 인간해방까지 멀리 내다보는, 마치 기원(祈願)과 흡사한 전면적인 인간성의 개화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앙드레 지드를 비롯한 유럽의 문학가들은 러시아문학에 이어지는 수많은 인간산맥을 한결같이 경탄했습니다.
이런 특징은 단지 문학에 그치지 않았으며, 민요로 유명한 스테판 라진의 반란과 푸카초프의 난, 그리고 19세기에 들어와서는 데카브리스트의 봉기를 비롯해 나로드니키운동 등에도 널리 맥동하고 있습니다.
이 인간적 해방을 바라는 에너지가 축적되지 않았다면 러시아혁명에서 민중이 승리하는 일도 없었겠지요. 저는 혁명 이후 소련에서도 문화 전반에 걸친 정신풍토 속에서 이 전통을 충분히 계승하고 있으리라 믿고 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화제가 조금 바뀌지만, 러시아문학 애호가인 젊은 친구와 간담을 나눌 때 있었던 일입니다. 마침 각 나라 국민성을 상징하는 말이 무엇인지가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이를테면 프랑스에는 ‘에스프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에는 ‘유머’일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러시아에 이르자 그 친구가 ‘파슬레다바체리노스티’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러시아어를 못하므로 발음이 어색합니다만, 번역하자면 ‘철저함’을 뜻한다고 합니다. 사물을 일정한 단계까지 연구하고 만족해버리지 않고 끝까지 규명하는 끈질기다고 할 정도의 철저함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저는 그 말을 들으며 과연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러시아민족과 문화의 저류에는 그처럼 기성개념에 적용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존재합니다. 이것을 문학적으로 구체적인 형태를 부여했을 때, 인종과 민족 그리고 언어의 장벽을 초월해 사람들의 마음과 가슴을 뒤흔들어대는 고리키의 ‘첼로벡’과 같은 외침으로 분출한다고 생각합니다.
본디 이런 전통은 결코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그 역사는 오래되었으며 이른바 구전문학(口傳文學)이나 가요(歌謠)에서 그 싹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자고이래로 러시아만큼 민화나 속담 등을 풍부하게 만들어낸 국민이 없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 데다, 대부분 민중을 창조하는 구전문학에는 주인공이 ‘악’에 맞서 싸워 이기는 내용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지주(地主)에게 시달린 농민이 이윽고 감연히 일어나서 승리를 거둔다는 풍자적 색채가 강한 이야기를 많이 만든 사실은 러시아의 문학적 토양을 나타내고, 동시에 차르(황제)를 타도하고,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침략마저 물리친 힘찬 저항정신을 짐작하게 합니다.
또 예로부터 러시아 전국에서 사람들이 애창하는 민요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일본사람도 러시아민요를 알고 있는데, 카자크의 노래와 볼가의 뱃노래 등에 흐르는 느낌은 단순한 절망도 아니고 그냥 참고 견디는 슬픔도 아닙니다.
고뇌의 밑바닥에 있으면서도 오히려 늘 행복을 향한 희망을 잃지 않으며 까닭 없는 불행에 항의하는, 인간생명의 강력한 고발이 울린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볼가의 뱃노래에서는 마치 깊은 땅속에서 솟아나오듯 혼을 울리는 장중함이 느껴지고, 괴로움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 시련을 극복했을 때, 오스트롭스키가 말한 ‘강철’ 같은 정신을 지녔음을 웅변한다고 생각합니다.
19세기 러시아문학이 현란하게 꽃을 활짝 피울 수 있었던 이유도, 분명히 이렇듯 노래를 사랑하며 한데 모여 민화를 이야기하고, 문화와 예술에 각별한 애착을 지닌 민중이라는 토양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문학가들이 늘 민중의 고뇌를 날카롭게 직시하고, 진실한 문학 본연의 자세에 대한 물음을 거듭하는 구도자적 자세를 관철했음도 당연한 사실입니다. 이 점이 저를 러시아문학에 공감하도록 만들고, 저의 마음을 뒤흔들며, 저에게 평생토록 평화와 문화창출이라는 서사시를 쓰도록 결심하게 만든 마음의 도약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일찍이 프랑스의 어느 고명한 철학자(샤르트르)는 “문학이 굶주린 어린이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인간의 생존마저 위협당할 수밖에 없는 많은 사회적 모순에 관심을 나타내지 않는 문학은 문학으로서 가치를 지닐 수 있느냐 하는 의문입니다.
확실히 이 지적은 폐쇄된 생활공간 속에 틀어박히기 쉬운 유럽의 여러 선진국의 문학이 지닌 결함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듯합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런 설문은 이미 극복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민중의 행복과 해방 그리고 평화라는 만인의 공통적인 소원을 늘 함께 호흡한 러시아문학이나 예술에서는 이런 의문이 생길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저는 러시아문학이 인간을 깊이 파악하는 점은 국민성이나 민족성을 형성하는 모체인 민중이라는 토양에 단단히 발을 내려놓은 결과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민중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제 신념이기 때문입니다.
문화나 예술영역에서 독자성은 결코 보편성과 대립하지 않습니다. 독자적인 개성을 지니므로 보편적입니다.
모든 의미에서 인류적 연대가 급선무라고 말하는 오늘날, 인간성을 깊이 파고든 러시아문화의 향기가 널리 인간을 촉발하며, 앞으로 21세기에 걸쳐 인류의 문화교류에 필연적으로 공헌할 것입니다. 또 외람되지만, 그렇게 하는 곳에 젊은 여러분 세대의 사명과 책임이 있음을 호소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동서문화교류의 새로운 길’이라는 주제로 소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문화교류라 하면 여러분은 일찍이 동서교류의 가교로 불린 실크로드를 떠올릴 것입니다. 아시아를 횡단하는 오아시스와 스텝이라는 두 육로를 중심으로 선로가 여러 갈래로 갈라진 실크로드는 물자를 교역하는 데 중요한 길이었을 뿐 아니라, 동서의 문화가 교류하는 경로이기도 했습니다.
이란, 스키타이문화가 이후 세계문화에 크게 기여했고, 인도에서 일어난 불교가 거의 모든 동아시아지역으로 퍼졌으며,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등 실크로드 주변에서 일어난 여러 종교가 미술과 건축 그리고 음악을 비롯해 세계 여러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요인도 이 실크로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유라시아대륙에서 일어난 다양한 문화는 실크로드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극동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나라 일본에까지 전파됐습니다.
일본의 옛 도읍으로 알려진 나라지방에 쇼소원(正倉院)이라는 건물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역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사료(史料)가 되는 1300년 전 무렵의 유품이 소장돼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다섯 개의 현을 가진 비파가 있습니다. 표면에는 호박(琥珀)으로 꽃술을 만들고, 귀갑(龜甲)과 광택을 지닌 조개껍질로 꽃잎을 세공한 작은 꽃문양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열대나무 사이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새와 암석을 정교하게 곁들였습니다. 제작하는 데 꽤 많은 세월을 소비했을 듯합니다. 언뜻 보기에도 우아한 기품이 가득 넘치게 고안한 오현비파는 보는 이에게 만든 사람의 뛰어난 기술과 함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진심을 느끼게 합니다.
똑같은 비파라도 사현비파의 기원은 페르시아지방이라고 합니다. 이에 비해 오현비파는 인도에서 발생해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의 북위(北魏)로 들어갔으며, 당나라시대에 이르러 완성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오현비파의 디자인은 페르시아 사산조 양식입니다. 그러므로 머나먼 페르시아, 인도의 문화가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서 융합하고 그 후에 태평양을 건넜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크로드는 문화를 융합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유기적인 대동맥이었습니다.
이 밖에 쇼소원에는 메소포타미아의 하프, 이집트의 목공예상자, 동로마의 로마유리 등이 보존돼 있습니다. 다만 이 문화유산들은 대체로 일부 특권계급의 전유물이었으며, 어느 의미에서는 지배자를 위한 문화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민중은 그 은혜를 입는 일이 적었고, 세계민중의 마음과 마음을 맺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일부 지배계급에 한정됐다고는 하지만, 민족을 초월해 문화를 교류한 사실을 나타내는 예라고 해도 좋겠지요.
그렇다면 문화가 이처럼 광범위하게 전파되고, 교류할 수 있었던 요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교역과 원정에 따른 친교가 문화교류의 실마리가 된 것은 당연하지만, 더욱 근본적으로는 문화가 지닌 성격이 교류를 촉진했다고 생각합니다. 즉 본디 문화의 골수는 가장 보편적인 인간생명이 약동하는 숨결입니다. 그러므로 환희로 고동치는 선율이 마치 사람들 가슴속 현에 파동 쳐와 음률을 연주하며 공명(共鳴)하듯, 문화는 인간 본래의 영위(營爲)로서 모든 차이를 초월해 어느 누구의 마음도 사로잡습니다.
저는 그 인간과 인간의 공명에 문화교류의 원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인간성의 공명을 기조로 하는 문화의 성격은 조화이고, 무력(武力)은 대극을 이룹니다. 군사와 무력은 외적인 억압으로 인간을 위협하고 지배하려 하지만 문화는 내면에서 인간을 활짝 꽃피우고 해방합니다.
또 무력은 군사적·경제적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한다는 힘의 논리로 일관하지만, 문화교류는 섭취 즉 받아들이는 쪽의 주체적인 자세를 전제로 합니다. 더 나아가 무력의 기저에서는 파괴를 잉태한 데 비해 문화의 기저에서는 창조를 잉태했습니다.
문화는 조화성, 주체성, 창조성을 골격으로 한 강인한 인간생명의 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문화를 활짝 꽃피우는 일이 바로 무력과 권력에 대적할 수 있는 인간해방의 길을 여는 유일한 방도이며, 러시아문학의 발자취가 그 점을 확고하게 시사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서의 문화교류에 크게 관여하고, 또 중계지역으로서 중앙아시아에 문화적 혜택을 가져다 준 실크로드는 8세기 무렵부터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해 이제는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사라센제국의 흥륭에 따른 동서교류의 분단과, 후세에 이르러 몽골인이 여러 오아시스 도시를 철저히 파괴한 데에 커다란 요인이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문화에 대한 무력의 파괴성은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력충돌로 문화가 접촉하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문화교류를 불러왔다는 학설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현대를 사는 여러분은 무기가 발달해 파괴력이 증가함에 따라 무력이 문화에 치명적인 타격을 안기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이미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전쟁이 문화를 파괴할 뿐 아니라 사멸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역상인들은 동서교류의 통로를 실크로드 이용이 어려워지자 바닷길에서 찾았습니다. 특히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희망봉항로를 개척한 이래, 근대과학의 진흥도 큰 몫을 하여 서구 여러 나라의 항해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며, 여기에 유럽과 극동지역을 연결하는 해상통로를 개척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따라 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육로는 사실상 모든 가치를 잃었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역사적 흐름 속에서 귀중한 동서교류를 이룬 실크로드는 소멸되고 말았습니다.
20세기도 사반세기만을 남겨놓은 오늘날, 눈부시게 발달한 교통망과 통신망은 바야흐로 멀리 떨어진 나라들을 단시간에 연결하고, 먼 곳에서 일어난 사건도 그날로 세계 구석구석까지 전달할 수 있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오늘날 동서교류의 양을 따지자면 실크로드와 비할 바가 아닙니다.
세계가 거리적으로는 좁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사람의 마음 사이에는 여전히 망막한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저는 늘 불가사의하게 느낍니다. 현대에는 물건과 물건 그리고 정보와 정보의 교환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러나 인간과 인간의 교류, 특히 마음과 마음의 교류는 얼마나 희박한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식 있는 세계의 지성인들은 동서문화의 전반적인 교류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참으로 더할 나위 없는 마음의 유대를 형성하는 일이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대화를 나눈 많은 우인(友人)과 각국의 지도자도 모두 그것이 조기에 실현되기를 염원하였습니다. 동서문화의 교류를 바라는 목소리가 세계적 조류(潮流)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저는 민족, 체제, 이데올로기의 벽을 초월해 문화의 모든 영역에 걸친 민중이라는 저류(底流)에서의 교류 즉 인간과 인간의 마음을 연결하는 ‘정신적 실크로드’가 지금처럼 요청되는 시대는 없다고 강하게 말씀 드리는 바입니다. (큰 박수)
왜냐하면 민중과 민중의 의사가 자연적으로 고양되는 데 따른 문화교류가 ‘불신’을 ‘신뢰’로 바꾸고, ‘반목’을 ‘이해’로 바꾸며, 이 세계에서 전쟁이라는 이름의 괴물을 몰아내고, 진실하고도 영속적인 평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류는 민중과 민중의 연대가 결여된 단순한 정부 간 협정이 하룻밤에 무너지고, 무력충돌이라는 비극으로 역전(逆轉)한 역사를 수 차례 경험했습니다. 결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개중에는 역사적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배양된 민족적인 적대감에 염려를 나타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진작부터 민족적 적대감 등은 거의 만들어진 허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읽은 책 중에 그리스 여배우가 반평생을 돌아보며 쓴 책이 있는데, 이렇게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터키인은 적이라고 배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키프로스의 니코시아에 갔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마을은 그리스와 터키의 영토로 분단되어 검문소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계선을 넘어 양쪽을 오가는 그녀에게 그리스인이 터키 우인에게 보낼 전언을 비롯해 자그마한 선물을 자주 맡겼다고 합니다. 터키 측에서도 이와 마찬가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친구가 될 수 있다. (중략) 정치가에게는 적대감을 자극하는 쪽이 낫다는 점만 없다면, 그리스인과 터키인은 충분히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
비록 지워버릴 수 없는 역사적 대립이라는 배경이 있을지라도, 현재를 사는 민중이 과거의 증오를 짊어질 의무는 전혀 없습니다. 서로의 사이를 가로막는 모든 장벽은 상대방 속에서 ‘인간’을 발견했을 때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날 것입니다.
실제로 저는 지금 여러분과 함께 대화하고 있습니다. 교류를 나누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공통적으로 평화를 바라는 친구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박수)
해결하기 힘든 난문제(難問題) 같아도, 인간이라는 차원에서 빛을 비춰보면, 무력항쟁에 기대지 않고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떠오른다고 믿고 싶습니다. 어떤 지위를 지닌 인간에게도 사람과 사람을 대립하게 만들고 유혈참사를 일으키도록 부추길 권리는 결코 없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고리키가 말한 ‘첼로벡’이라는 충심 어린 외침을 인류연대의 하모니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융화의 세계 그리고 항구평화의 미래를 구축하는 데는 동서의 민중과 민중의 마음을 연결하는 ‘정신적 실크로드’가 긴요한 과제라고 강조합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교류를 추진할 때 발생하는 실제적인 문제에 관해서입니다. 이 지구상에는 이른바 선진국으로 불리는 나라도 존재하고, 개발도상에 있는 나라도 매우 많습니다. 현실적으로 다양한 개발 정도를 나타내는 나라들이 존재합니다.
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들이 교섭할 경우에는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할까요. ‘북(北)의 가진 나라들’과 ‘남(南)의 가지지 못한 나라들’ 사이의 교류 즉 문화교류를 근본으로 하는 ‘남북문제’입니다. 이 남북이라는 관점은 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관점임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기존의 교류에 관한 서술은 ‘동서문제’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여러 사회주의 국가들과 자본주의 국가들의 교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동양문화권과 서양문화권의 교류를 가리킨다고 생각했으면 합니다.
제가 이 시점에서 남북의 문화교류를 굳이 언급하는 까닭은, 바로 이 점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건전한 교류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문화가 지닌 근본적인 의의마저 오인할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새삼스럽게 언급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가진 북’ ‘갖지 못한 남’이라는 분류는 ‘경제’의 발전 정도에 따른 구분입니다. 그러나 고도의 경제발전 정도는 결코 그 나라가 문화영역 전반에 걸쳐 우월하다는 점을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경제적으로는 개발도상국일지라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어떤 문화적 재산(그것은 인류 공유의 재산이기도 하지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덧붙여서 말하면, 이 세계를 경제가 아니라 다른 각도에서 빛을 비추고 눈여겨보기 바랍니다. 이를테면 음악이라는 빛입니다. 그 빛으로 비춘 세계는 어떤 광경을 나타낼까요. 앞서 나온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라는 구별과는 전혀 양상이 다른 광경이 분명히 눈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또 문학이라는 빛은 세계를 어떤 모습으로 떠오르게 할까요. 그리고 예술, 종교, 전통, 생활양식, 심리적 성향 등 여러 가지로 다른 빛을 비추면 우리 인류 40억이 생존하는 푸른 지구는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양상을 전개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이른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라는 구별이 완전히 사라지리라는 점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남북 쌍방 여러 나라의 접촉에 과연 교류라고 부를 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대부분은 이른바 경제적 차원의 접촉이고, 또 ‘북’에서 ‘남’으로 일반적이고도 직선적으로 이동합니다. 이런 이동은 늘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문화적 ‘직류(直流)’일 뿐입니다. 때로는 경제침략, 문화침략이라는 비난이 터져 나오는 까닭도 이 점에 있습니다.
문화교류는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연결하고, 심금을 울리는 공감의 하모니를 연주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디까지나 상호성과 대등성을 관철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문화가 일방적으로 이동하면 문화를 방출하는 국민의 마음에는 오히려 오만이라는 번거로운 씨앗을 심고, 반대로 문화를 수용하는 국민의 마음에는 비굴함과 때로는 증오의 감정마저 움트게 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참으로 상호성과 대등성 그리고 전반성은 진정한 문화교류의 생명선이라 해도 좋습니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이민족과 이문화에 대해 존경하고 존중하는 마음도 키울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때 비로소 동서뿐 아니라 남북마저 감싸 안은 ‘정신적 실크로드’가 세계를 종횡으로 굳게 연결할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서 이처럼 솔직한 견해를 피력한 까닭도 실은 소비에트연방이 서양문화와 동양문화의 가교역할을 짊어지고, 게다가 남북 여러 나라 사이의 건전한 문화교류에도 귀중한 교훈을 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큰 박수)
왜냐하면 앞에서 말한 러시아문화에서 볼 수 있는 특유한 인간파악의 깊이와 보편성에 더해, 지리적으로 보아도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는 소련은 자신들이 동서문화의 ‘거대한 접점’이며, 동시에 여러 경제발전도를 보이는 15개 공화국으로 이루어진 연방이라는 방식은, 남북문화교류에 ‘귀중한 실험’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류학적으로는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 그리고 저와 같은 몽골인에 이르기까지, 126개에 달하는 다종다양한 민족을 거느리고 있는 소련은 분명히 문화교류의 위대한 ‘도가니’입니다.
또 제정러시아시대의 일이긴 하지만, 당시로서는 동양학연구도 가장 진보했습니다. 그리고 인도 시성(詩聖) 타고르의 모든 작품이 10월혁명 이후 단기간에 번역된 사실만 보더라도, 러시아인의 마음속에는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공감의 가교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찍이 일어난 서구파와 슬라브파의 대립도 이런 사정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소련은 분명히 아시아의 마음도 유럽의 마음도, 그리고 ‘북’의 마음도 ‘남’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소련이 동서문화교류를 위해 그리고 남북문화교류를 위해 기여해야 할 임무가 매우 많다고 믿습니다. (박수)
이와 더불어 무엇보다 저는 러시아의 대지에 확실히 살아 숨쉬는 평화의 희구(希求)에 최대한으로 경의를 표하고자 합니다.
일찍이 러시아는 13세기부터 거의 2세기에 걸쳐 유명한 ‘타타르의 속박’으로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또 서쪽에서는 독일기사단, 스웨덴군 등에 침략당했고, 19세기에는 러시아의 대지는 나폴레옹의 원정, 20세기에는 히틀러의 전격적인 침공을 받았습니다.
그곳에 사는 러시아 민중의 가슴속에 배양된 것은 분명 어떤 압제에도 강인하게 한결같이 끝까지 사는 인간의 기개와 더할 나위 없이 평화를 원하고 바라는 순수한 심정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소련을 다시 방문함으로써 이 점을 이전보다 훨씬 더 크게 통감할 수 있었습니다. (박수)
저는 세계시민의 마음과 마음에 찬연히 빛나는 ‘정신적 실크로드’를 확립하기 위해, 미래 소비에트연방을 짊어질 여러분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평화를 희구하고 인간이 원점이라는 귀중한 러시아의 정신적 유산을 유감없이 발휘해, 소비에트연방의 발전과 더할 나위 없는 영속적인 세계 평화의 실현을 짊어질 것입니다. 저도 창가학회도 앞으로도 여러분과 함께 민중차원에서 문화교류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교류할 수 있도록 평생 앞장서서 성심성의를 다해 세계를 뛰어다니겠습니다. 그리하여 어느 날인가는 인간교류의 무대에서 여러분을 다시 만나 뵐 수 있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