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조 학원장님의 축사를 받았습니다. 축사의 첫머리는 저를 동생과 같이 귀여워해주시고 과대하게 평가해 주신 말씀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어서 말씀하신 일본 군국주의와의 싸움. 저는 피눈물이 날 정도의 마음입니다. 오만한 일본과, 싸우시다가 하신 옥중생활, 그 것을 인내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학원장님은 당신을 투옥한 일본마저도 자애와 인내로써 감싸주시고 있습니다.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입니까.
저도 일본의 오만함과 계속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원장님은 앞으로의 세계를 전망하셨습니다. 유럽과 같이 아시아에도 지역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이것은 절대적으로 올바른 아시아관이며 세계관이라고 나는 찬동합니다.
학원장님이 최후로 말씀하신 “문화세계의 창조” - 문화를 통해 평화를 창조한다는 귀 대학의 신조는 실로 진리이고 정의입니다. 중요한 논조(論調)로써 깊이 감명하였습니다. 훌륭한 환영의 연주 감사합니다. 내년은 경희대학 창립 50주년이라고 삼가 듣고 있습니다. 그것을 축하하여 저희 소카(創價)대학의 취주악단과 경희대학의 여러분들이 일본과 한국의 어느 한 군데에서 합동으로 기념연주를 행할 것을 삼가 제안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인간교육의 최고학부’인가 그런데 진심으로 존경하옵는 조영식 학원장님 그리고 영부인. 조정원 총장님을 비롯한 경희대학교의 여러 선생님들, 그리고 임석해 주신 여러분. 『무릇 이 지상에 있는 것으로 대학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노래한 영국의 시인이 있습니다. 지금 저의 가슴에는 이 시가 선명하게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고황산 기슭에 신록(新綠)으로 감싸인 이 얼마나 장려한 캠퍼스입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귀 대학에는 창립자 조 학원장께서 내거신 ‘문화세계의 창조’라는 고매한 건학의 이념이 찬연하게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이 한없이 아름다운 ‘인간교육의 최고학부’ 로부터 저는 지금 영광스러운 ‘명예철학박사’의 칭호를 수여 받았습니다. 최대의 감사와 긍지를 가지고 삼가 배수(拜受)합니다. 참으로 참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5월 18일’은 귀 대학의 영광스러운 개교기념일이라고 삼가 들었습니다. 이 반세기에 걸쳐 귀 대학은 세계 1백35개의 대학과 교육의 교류를 추진하시고,또 ‘평화복지대학원’등을 중심으로 평화 탐구의 최전선을 개척해 오셨습니다. 나아가 ‘밝은 사회운동’ 이라는 숭고한 민중봉사의 전통도 실로 유명합니다. 귀 대학이야말로 바로 저희 소카대학교가 ‘위대한 형’이라고 우러러 볼 만한 존재입니다.아무쪼록 앞으로도 어린 동생인 소카대학을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5월15일 ‘스승의 날’ ‘5월 15일’은 귀국에서는 의의 깊은 ‘스승의 날’에 해당하며, 제자가 스승에게 또 학생이 교수에게 감사를 표하는 날이라고 들었습니다. 과연 이름 높은 ‘동방예의지국’이 아니고는 가질 수 없는 미풍이라 할 것입니다. 일본은 먼 옛날부터 귀국에서 온갖 문화를 배워 왔습니다. 여기서 저는 ‘스승의 나라’인 귀국에게 다시금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인생의 스승이신 도다 조세이, 그리고 그 스승이신 ‘소카교육’의 창시자 마키구치 쓰네사부도로 문화의 대은(大恩)이 있는 귀국에 대해서는 각별하게 깊은 경애를 보내셨습니다.
젊은 도다 선생님이 생에의 스승으로 마키구치 선생님을 모시기 시작한 것은 1920년의봄입니다. 즉 귀국의 위대한 ‘3ㆍ1독립운동’이 시작된 지 1년. 정의의 소녀 유관순이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장절하게 순사했던 해입니다. 너무도 고귀한 귀국 청년들의 싸움은 중국의 ‘5ㆍ4운동’으로 연동되고 간디의 비폭력투쟁, 나아가 아시아ㆍ아프리카 제국의 독립운동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저희들 ‘소카교육’의 정신투쟁도 또한 이 ’3ㆍ1운동’을 원류로 하는 세계 민중운동의 조류 속에서 흥기(興起)했던 것입니다.
젊은 날의 학원장께서 옥중에서 항일의 금강(金剛)과 같은 신념을 관철하셨던 그 시기에 마키구치ㆍ도다라는 사제(師弟)도 일본의 국가 악과 대결하여 투옥되셨습니다. 그리고 마키구치 선생은 73세로 옥사하셨습니다. 일본인의 편협한 섬나라 근성을 증장(增長)시켜 온 큰 요인은 확고한 ‘철학’이 부재한 데 있으며,또 ‘국가주의’라는 왜곡된 교육에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인각주의’ 의 철학과 교육의 연대를 세계에 펼쳐 왔습니다. 학원장님의 우인이며 저의 우인이기도 한 로마클럽의 창립자 펫체이 박사와도 대담 집에서 서로 논했습니다.
긴박한 시대상황을 정시하면서 ”새로운 생명의 철학을 구축하고 흔들리지 않는 인류의 ‘지혜의 기둥’을 확립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교육의 교류에 의해 낡은 국가의 틀을 벗어나 상호 협력하는 지역공동체를 형성하고 더불어 살아가고 더불어 번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생각하면 학원장님의 저 엄한 냉전하인 1981년,유엔의 ‘세계 평화의 날’과 ‘평화의 해’를 제정할 것을 코스타리카에서 개최된 세계ㆍ대학총장 회의에서 제창하셨습니다.그리고 총장회의의 총의(總意)를 거쳐 유엔에서 그 제창이 채택될 수 있도록 문자 그대로 목숨을 내걸고 동분서주하셨던 것입니다.
뉴욕의 유엔으로 가실 때 학원장님은 영부인께 “결의안의 통과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그 때 학원장님의 호주머니에는 단도(短刀)가 간직되어 있었으며 유서도 준비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만에 하나 실현될 수 없는 경우에는 당신의 죽음마저 불사할 결심이셨습니다. 그 정도로까지 준엄한 학원장님의 열렬한 각오의 일념이 있었기에 귀 대학의 교화인 ‘목련’과 같이 평화 선구(先驅)의 꽃이 늠름하게 피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유엔의 ‘세계 평화의 날’ 결정과 1986년 ’평화의 해’ 제정이 ‘냉전의 종결’을 향해 얼마만큼 큰 파동을 일으켜 전 세계 사람들의 의식을 결집시켜 갔습니까. 저 자신도 이 해 연두의 한 평화제언에서 ‘평화의 해’ 의 의의를 언급하고, 보다 광범위한 행동을 전개한 한 사람입니다.
작년 가을 11월 학원장님은 소카대학에서 인자한 아버지와 같이 호소하셨습니다. 즉 ”앞으로는 ’환태평양의 시대’ 입니다. 한국, 중국, 일본이 힘을 합하여 유럽연합(EU)과 같은 지역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토인비 박사도 이 삼국의 기축으로 하는 동아시아에 대한 기대를 제게 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또한 유럽연합에서는 지역간의 교육교류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어 유럽의 8백만 대학생 가운데 실로 40퍼센트의 학생들이 상대국가로 유학할 수 있는 계획도 추진되고 있다고 합니다.
여하튼 오늘부터 저도 영예로운 귀 대학의 일원으로서 저 ’미소 짓는 사자’처럼 ‘제2의 르네상스’를 목표로 하여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한일 양국, 또한 아시아ㆍ환태평양 청년들을 위하여 ‘교육’과 ’철학’의 대도를 더욱 깊게 더욱 넓게 열어 나갈 결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미국 소카대학도 건설되고 있는 중입니다. 끝으로 제가 진심으로 경애하는 ’경희대학’이 그 존귀한 이름과 같이 21세기를 향해 무한한 영광으로 둘러싸여 갈 것을 염원해 마지않습니다.
그리고 세계 교육계의 지고한 보배이신 학원장님 내외분을 비롯하여 임석해 주신 여러분께서 더욱더 건장하시고 장수하실 것을 진심으로 기원해 올리며 저의 사사(謝辭)로 대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