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거무스름한 빛깔의 산수화 속으로 나아갔다. 강의 양쪽 벼랑에는 기암기봉(奇岩寄峰)이 두루마리 그림처럼 차례차례 나타난다. 중국의 옛 이야기에 자신이 직접 그린 산수화 속으로 들어가 그대로 사라져 버린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그 인물이 된 듯한 ‘구이린강의 뱃놀이’였다. 붓처럼 치솟은 봉우리가 있다. 긴 칼처럼 생긴 바위산이 있다. 부용꽃과 닮은 산. 두 개의 산꼭대기가 용의 뿔로 보이는 용두산. 천봉의 빼어남을 겨루고, 만봉의 뛰어남을 가려내는 대파노라마다. 봄비가 자욱했다.
“안개 끼듯이 이슬비가 내릴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라고 안내원은 말한다. 산은 바림을 한 듯이 흐릿하고, 하늘은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기이한 산과 수려한 물이 자아내는 풍광은 산에 혼(魂)이 있는 것 같았고, 물에 넋[魄]이 있는 것 같았다. 이 천연의 명화(名畵)를 그린 ‘지구라는 대화백’의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신필(神筆)을 접한다면 누구라도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고 사념(思念)은 대공을 향해 춤출 것이다.
1980년 4월 26일. 다섯 번째 중국 방문 일정은 후반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구이린시에서 차로 양제 거리로 가서, 리강변의 선착장까지 좁은 대나무 숲길을 잠시 걸었다. 강가의 어린이들이 다가왔다.
그중에 약을 파는 두 소녀가 있었다. 천평봉(天枰棒)을 어깨에 메고 “약은 뭐든지 있어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씀하세요.”라고 외친다. 집안일을 도와주는 것일까, 꾸밈없이 빗어내린 머리에 시원한 눈동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럼 미안하지만 머리가 좋아지는 약은 없나요?” 하고 내 이마를 가리켰다. 소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아, 그 약은 방금 다 팔렸어요.”라며 생긋 웃는다. 주위에 해맑은 웃음이 터졌다. 나는 소녀의 재치에 감탄하면서 “중국 방문단 일행의 머리를 위해서는 대단히 유감스런 일입니다.”라고 말하며, 아내와 함께 선물용으로 많은 약을 샀다. 지금 저 똑똑한 소녀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배는 리강의 아름다운 비취색 수면 위를 미끄러져 간다. “강은 푸른 무명 띠를 두르고, 산은 푸른 옥비녀와 같다.”고 구가(謳歌)되었던 절경이 이어진다. 봉우리들은 병풍처럼 겹치고, 그 깊은 곳에서 나온 새 한두 마리가 나무 사이를 난다. 수면으로 바짝 붙어 제비가 하늘을 가른다. 그러나 배 안에는 녹수청산(綠水靑山)의 시정(詩情)과는 정반대로 냉엄한 대화가 계속되고 있었다.
당시 중국과 소련의 대립은 격렬했다. 그 전해에 소련이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하자 비난의 소리는 더욱 높아져 갔다. 중국 측의 일부에서는 내가 중국과 소련 양쪽을 우호 방문한 것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일본과 중국에 황금의 다리를 놓은 당신이 소련에 가면 진정한 중일 관계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되도록이면 소련에 가지 않기 바랍니다.”라고. 솔직한 의견에 감사하면서도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점점 변화하고 있습니다. 21세기를 앞두고 ‘전 인류의 평화’라는 방향으로 시대를 움직여 가야 합니다. 지금은 대국이 서로 다투고 미워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서로의 좋은 점을 함께 끄집어 내면서 조화롭게 만들어 갑시다. 인간이 서로 도와가며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갑시다. 그러한 인간주의야말로 필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이야기도 좀처럼 이해해 주지 않았다.
곧바로 ‘중국과 소련 어느 쪽이 소중한가’ 하는 이야기로 되돌아가고 만다. 그 사이에도 창밖에는 잇달아 예측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경관이 이어지고 있었다. 잠시 눈을 떼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역사의 흐름도 눈앞의 광경만 보고 있으면 알 수 없다. 도도하게 흐르는 리강의 굽이굽이인가, 우여곡절을 거듭하면서 마침내 계강(桂江)과 합류하고 나아가 대하 주강(珠江)이 되어 남해로 흘러들어간다.
때(時)의 흐름도 어느 누가 멈추게 할 수 없다. ‘하나의 인류’라는 바다로 이어진다.
“나는 중국을 사랑합니다. 중국은 매우 소중합니다. 동시에 인간을 사랑합니다. 인류 전체가 소중한 것입니다. 소련의 수뇌로부터 “절대로 중국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확언(確言)을 받아 귀국의 수뇌에 전했습니다. 중국과 소련이 사이 좋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 생각과 마음을 언젠가 반드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10년도 지나지 않아 중소 대립은 끝났다. 소련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의 흐름은 모든 것을 바꿔가는 것처럼 보인다. 바뀌지 않는 것은 내일을 믿고 살아가는 서민의 늠름함이다.
강변에는 한가로운 농촌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모내기철이라고 한다. 강변에서 세탁하는 사람, 야채를 씻는 사람이 있다. 양(洋)이 보인다. 물소가 보인다. 사람에게 길들여져 물고기를 잡는 가마우지가 쉬고 있다.
그림 속의 뱃놀이처럼 어느새 비는 개어 있었다. 봄비는 천천히 옅은 구름으로 바뀌어 봉우리들을 감싸고 있다. 뱃놀이의 종점인 양삭 마을에 도착했을 때에는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강 수면은 청자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산들이 거꾸로 비친다. 벽수(碧水)에 떠오르는 산정(山頂)에서 산정으로 배는 가볍게 달렸다.
“리강의 뱃놀이는 날씨가 개인 때도 좋다. 비가 자욱한 때도, 안개가 낀 때도 좋다.”고 한다. 짧은 사이에 그것들을 전부 볼 수 있었다. 양삭의 선착장을 내려서 나는 리강의 봄 경치에 다시 한 번 눈을 돌렸다. 이 땅은 3억 년 전에는 해저(海底)였다고 한다. 수중(水中)의 태곳적 궁전이 지상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 구이린의 연봉(連峯)이다.
아아, 유구한 천지(天地)에서는 천 년도 주마등처럼 지나고 마는가. 만고(萬古)의 파도에 노를 저으면서 구이린의 마을로 돌아가는 배 한 척.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금’을 열심히 뛰는 민중의 상징처럼 사랑스럽게 보였다. 나는 “중국의 벗에게 큰 행복 있어라.” 하고 기원하며 셔터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