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도시 피렌체가 빛의 샤워를 하고 있었다. 언젠가 미켈란젤로광장에서 본 파노라마는 시간을 뛰어넘는 명화(名畵)였다. 거리 그 자체가 '살아 있는 미술관'이었다. 아름다운 활 모양의 언덕 앞에 붉은 갈색 지붕, 돌로 쌓은 벽. 거리는 광선의 강약(强弱)에 따라 금색에서 엷은 보라색까지 미묘하게 색조를 바꾸고 있었다.
5백 년 전의 르네상스 무렵과 변함없는 분위기다. 지금도 거리를 걸으면 시성(詩聖) 단테가, 만능인(萬能人)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거장(巨匠) 미켈란젤로가, 건물의 그늘에서 불쑥 나타나 스쳐 지나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르네상스, 그것은 '유럽의 청춘'이었다. 청춘의 화려함과 근심, 걱정. 이 모든 것이 거기에 있었다. 그 중심지가 피렌체 '봄의 도시'였다. “그대여 아는가. 남쪽 나라를. 레몬 꽃 피는 나라 황금으로 바뀌는 오렌지의 나라를.” 북방의 사람 괴테는 이탈리아를 동경하는 노래를 불렀다.
태양이 가득 찬 이 자유도시에서 유명 무명의 천재가 기예를 다투었다. 품격 높은 '백합'을 문장(紋章:집이나 단체를 나타내는 일정한 표지)으로 한 이 도시에서 미(美)의 화원(花園)이 개화했다. 미켈란젤로광장에 선 것은 1994년 5월. 괴테의 나라 독일에서 빛의 나라 이탈리아로 들어간 다음 날, 나는 정겨운 이 푸른 언덕을 찾았다.
1981년, 1992년에 이어 세 번째다. 1981년에는 불과 몇 사람에 불과했던 이탈리아 청년부는 50배로 늘어나 있었다.
앵매도리(櫻梅桃李)의 생기 발랄한 밝은 얼굴이 눈부실 정도로 피어 있었다. 청춘의 이탈리아였다. 나는 '인류의 봄'으로 향하는 '제2 르네상스'의 고동이 기뻤다.
르네상스란 '소생(蘇生)'.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된다”는 생명에 내재한 역동성의 개화다. '봄'이 오기 전 이탈리아에는 전란(戰亂)이 계속되어 경제와 정치 위기가 계속되었다. 페스트에 의한 대량 죽음. 희망 없는 종말 사상.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암흑 속의 사람들은 빛을 고전(古典)에서 구했다. 그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문예부흥이 되었다.
이윽고 사람들은 환희에 차 깨달았다. '인간은 하나의 소우주다! 대우주는 끊임없는 창조자이며, 그와 닮은 모습인 인간도 또한 무한히 자기를 확대해 가야 한다! 인간이 무언가 이루고자 원한다면,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말이다.
거기서부터 봄은 시작되었다. 보티첼리의 명화 <봄>에는 피렌체를 상징하는 '봄의 여신(女神) 플로라'가 화관과 목걸이를 하고 귀여운 꽃을 온몸에 감고 있다. 여신이 일어선 푸른 대지에도 꽃이 만발해 있다. 장미, 딸기, 데이지, 패랭이꽃, 제비꽃, 물망초, 수레국화, 등대초, 아네모네, 히아신스, 민들레 …
그림 속 꽃들은 피렌체 들판에 실제로 피는 5백 종이나 되는 꽃이라고 한다. "우리는 저마다 잠재력을 전부 꽃피우지 않으면 안 된다!"
르네상스인은 품위 있는 '예술가'이기보다는 장인(匠人)이었다. 소매를 걷어 올리고 일에 임했다. 피렌체는 '무엇이라도 해보자'는 활력으로 넘쳤다. '꽃'은 힘들게 투쟁하는 진흙탕 속에서 핀 것이다. 광장 끝에 다가서자 아래로 아르노강이 보인다. 에메랄드빛 물이 영원한 하늘을 비추며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예술의 생명은 길고 권력의 생명은 짧다. 모든 복잡괴기한 권모술수가 시간이라는 강 저편으로 떠내려 간다. 그러나 마음과 혼을 담은 문화만큼은 불로(不老)이고 불사(不死)다. 혼(魂)을 담은 청춘은 영구히 썩지 않는다. 피렌체는 불멸하는 청춘의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