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이 곳은 시인이 오는 섬이로구나.’
제주도에 도착하여 곧바로 나를 사로잡은 감개(感慨)였다.
자동차가 푸르른 길을 간다. 나무들은 한 그루 한 그루 빌로드 같은 윤기로 빛나고 있었다.
말(馬)이 있었다. 초원이 있었다. 소(牛)가 있었다. 편안하고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바위가 많은 길이었다. 바람을 막는 돌담 하나하나에서 고생하며 힘껏 살아 온 섬사람의 거칠고 무딘 손을 보는 듯했다.
한라산을 우러러 보았다. 불가사의한 산이었다.
우주의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마음을 모아 만든 것 같았다. 생명에서 솟아나는 기쁨의 소리도 깨문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한탄의 소리도 모두 꼼짝달싹 못하게 하고, 조용히 하늘과 대화하고 있는 그런 크고 큰 어머니의 모습으로도 보였다.
이 곳은 시인이 와야 할 섬이다. 정치가도 경제인도 이 섬에 일단 오면 눈앞의 이해 등을 잊고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순수한 시인의 마음이 되어 사이 좋고 허심탄회하게 큰 마음으로 미래를 주시하며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정치의 비극으로 가장 고통받았던 섬이기에. 수탈당한 경제로 인해 고통당해온 섬이기에. 인간이 서로 싸우는 일에 진절머리가 난 섬이기에.
제주도는 화산섬이다. 지금은 화산활동을 멈췄지만 거듭된 분화로 화산재가 쌓여 토지는 메말라 있다. 30센티미터만 파 들어가도 용암 암반이 나온다.
섬은 가난하여 많은 여성이 해녀가 되고, 많은 남성이 돈벌이 하러 섬을 떠났다.
일본에도 많은 제주도 출신자가 있다. 그중에는 고향의 섬을 그리워하면서도 사정이 있어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도 너무나 많다. 통지 받은 부모님의 부고(訃告)에 눈물 흘리면서도 달려갈 수도 없었던 사람들. 그 가슴에는 밤마다 꿈에 고향의 바람이, 빛이 찾아왔을 것이다.
송아지와 뛰놀던 저 초원. 바람이 거센 갑(岬)에 서서 주시한 저 짙푸른 바다.
노란 유채꽃이 만발한 들판.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든 가을 산 언저리. 창공에 뜨는 백설의 한라산.
봄도 아름다웠다.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아름다웠다.
“고향은 말이야, 고향은 말이지”라고, 일본밖에 모르는 아들이나 딸에게 먼 곳을 바라보며 말하면서, 섬을 다시는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갔던 ― 아버지여 어머니여.
한국 본토에서도 차별받고 일본인한테도 차별당하고 그래도 긍지 높게 끝까지 살아온 부모님이여. 이유 없는 굴욕에도 참고 참으며 눈을 감지 못했던 형이여 누나여.
한라산은 그 사람들의 마음의 소리도 틀림없이 들었을 것이다. ‘알고 있어요, 전부 알고 있어요, 모두 내 자식들입니다.’ 라고.
살기 힘든 환경이기에 모두가 서로 도와가며 살아왔다.
어떤 사람은 회고한다.
“가족의 요리는 전원이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가득 담은 큰 접시 하나뿐. 아이들은 내가 먼저라며 볼이 미어지게 먹는다.
지켜보는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밥 먹어라, 더 먹어라.”고 말하기만 할 뿐, 자신은 젓가락 한두 번 집을 뿐이었다.”라고 ―.
“밥 먹어라, 더 먹어라.” 이 말이야말로 어떠한 명시(名詩)보다도 고상한 이론 보다도 훌륭한 인간의 시다, 사랑의 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섬사람들은 소박하다. 싸움은 언제나 바다 건너편에서 걸어왔다.
일본군 지배하에서 한라산은 요새화되었다. 미군 침공으로부터 일본을 지키기 위해 제주도는 ‘방패’가 되고, ‘희생양’이 되었다. 사랑해 마지않는 산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파헤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종전 ― 광복의 기쁨도 잠시뿐, 한라산은 해방 후에도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극을 겪게 된다.
1948년의 ‘4·3사건’. 조국의 남북분단을 반대한 사람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섬 전체가 철저하게 유린되었다.
대다수의 섬사람은 아무것도 모른 채 당국으로부터 ‘북(北)’에 협력했다고 살해당하고, 빨치산한테서는 정부에 협력했다고 살해당했다.
희생자 수 조차 알지 못한다. 3만 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사건 후에조차 제주도 사람들은 최대의 희생자이면서 범죄자처럼 여겨져 왔다.
‘사상(思想)’이란 무엇인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을 죽이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가 냉전이라는 광기에 중독되어 있었다. 그 첫 번째로 희생된 곳이 이 제주도였다.
살아남은 노인도 어린 손자를 생각하면 죽을 수도 없었다. 눈물도 말라붙은 채 주름살뿐인 손으로 얼마 안 되는 밭을 경작했다. 남편 잃은 어머니는 분함에 치를 떨면서도 아이를 바구니에 뉘어 놓고 일했다. 혹서 속의 밭에서는 아이가 잠들지 못하고 큰소리로 울어댔다. 겨우 키워 놓아도 학교에 보낼 여유가 없었다 ―.
말하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 한 마디 말하기 시작하면 통곡하는 이외는 없으므로 가슴속에 묻고 묻어 이를 악물고 침묵해 왔다. 침묵한 나머지 슬픔은 돌이 되었다.
한라산에서는 큰소리를 질러서는 안 된다고 한다. 큰소리를 지르면 돌이 되어 있는 슬픔이 안개가 되어 주위를 떠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살아왔다. 아침저녁으로 산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어떠한 폭풍이 불어닥쳐도 앞으로 앞으로 살아간다, 살아간다. 희망을 향해 손을 뻗친다. 손을 뻗친다. 이 불굴이야말로 제주도의 마음일 것이다.
한라산의 ‘한(漢)’은 ‘하(河)’, ‘라(拏)’는 ‘손으로 쥐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은한(銀漢), 은하(銀河), 은하수.
찬란하게 빛나는 희망의 하늘 은하수를 잡으려고 손을 계속 뻗고 있는 산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산 정상은 하늘의 꿈을 향해 펼친 손바닥으로도 보였다.
출발하는 날, 제주대학교 조문부 총장이 일부러 공항까지 배웅하러 와 주셨다. 그리고 만면에 미소를 띠며 “오늘 아침 무지개가 떴어요!”라고 하셨다. 총장의 기세 있는 소리에 나는 제주도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기뻤다. 나는 믿는다. 제주도는 앞으로 꼭 ‘동양의 하와이’로 번영해갈 것을. 한국, 중국, 일본을 묶는 ‘평화의 섬’. 미래의 해양시대의 거점. 자유무역항. 꿈은 펼쳐진다.
한라산이 거듭거듭 되풀이되는 불꽃에 타면서 지금의 아름다움을 만든 것처럼 ‘어디보다도 고달팠던 섬’이 ‘어디보다도 행복한 낙원’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죽은 사람들은 말이 없다. 그러기에 우리들이 정의를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철저하게 고생해온 부모의 몫까지 지금 세대가, 다음 세대가 행복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무지개는 그러한 신세기를 향해 걸린 다리라고 믿고 싶다.“영원히 평화의 무지개여 떠라, 제주도여.”라고 기원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