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은 평화운동가, 불교철학자, 교육자, 작가 그리고 시인으로 대화를 통한 평화 증진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 Words of Wisdom 희망찬 내일을 위한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의 명언

  • Dialogue with Nature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의 사진 작품, 자연과의 대화

  • The Life Story of Daisaku Ikeda 이케다 다이사쿠 생애

에세이

아름다운 지구

모스크바의 푸름

비 갠 뒤 상쾌한 아침이었다. 모스크바의 5월. 신생 러시아의 아침이었다. 1994년. 소련이 붕괴하고 2년 반이 지나 새로운 시대를 향한 갈등이 계속되고 있었다. 계속되는 여러 행사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볼 수 있었지만, 그 변화를 나는 직접 피부로 느껴 보고 싶었다. "자, 걷자." 아내와, 동행하는 몇 사람과 함께 나는 밖으로 나갔다.

크렘린 성벽을 따라 서쪽으로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이 펼쳐진다. 공원은 봄비에 촉촉히 젖어 나무도 튤립 꽃도 부드러운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환희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가르쳐 주었다.

"길고 긴 겨울입니다. 4월에도 외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모스크바 사람들에게 5월은 정말로 즐겁고 그리운 계절입니다."

나무숲도 화초도 애타게 기다렸던 태양을 향해 한꺼번에 목숨의 불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손에 쥔 '자유'의 봄기운 같이 모스크바의 봄에는 기세가 있었다. 이번 겨울은 특히 힘들었다. 혼란 속에 물자는 서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겨울을 넘길 수 있을까 어떨까, 나는 일본에 있으면서도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공원에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러시아 민중의 늠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사회 속에서 유연하게 미소 지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무언가에 쫓기는 듯이 안달하는 일본인을 생각할 때 과연 어느 쪽이 풍요로운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의 카오스(혼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몇십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서민의 늠름함이 있는 한 러시아의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된다는 것을 나는 확신했다.

공원 북쪽에 '무명전사(無名戰士)의 비(碑)'가 있다. "당신 이름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당신 공적은 영원히 남는다"고 새겨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죽은 소련인은 20만 명이라고도 한다. 어느 나라보다도 막대한 희생이었다. 귓가에 그 옛날 배운 노래가 떠올랐다.

러시아인에게 전쟁하고 싶은지 물어 보게.
이 넓은 대지와 자작나무 숲에게, 그 밑에 자고 있는 병사들에게.
러시아인에게 전쟁하고 싶은지 물어 보게.
러시아의 어머니들에게,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아내들에게,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에게.

이 '인간의 부르짖음'에는 국경도 체제도 없다. 이 인간성의 부르짖음을 결집하여 전쟁 그 자체를 포위하여 근절할 수밖에 없다. 내가 냉전이 한창일 때 "왜 소련에 가는가?" 하는 비판을 받으면서 굳이 교류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단지 "그곳에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첫 소련 방문 때 헌화한 '무명전사의 비'에 나는 재차 엄숙하게 기원을 드렸다.

가까운 곳에 야외수업을 나온 초등학생 일행이 있었다. 근심 걱정 없는 해맑은 얼굴의 아이들과 잠시 환담하며 "크면 일본으로 오세요"라고 하자 귀여운 환성이 터졌다.

소련은 붕괴했지만 민중은 살아 있었다. 인간은 살아 있었다. 정치는 변하고 경제도 변했지만 인간의 삶은 변하지 않고 계속되어 갔다. 푸르름. 그것은 생명의 색채. 희망의 색채. 평화의 색채. 푸르름. 그것은 지구의 색채. 21세기의 색채. 러시아어로 '지구'와 '평화'는 같은 단어다.

나무숲 저쪽에서 다른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눈길을 돌리자 푸르른 아치 안쪽에 사이 좋게 노는 소년들의 모습이 있었다. 꾸밈이 없는 평화의 순간을 향해 나는 셔터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