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은 평화운동가, 불교철학자, 교육자, 작가 그리고 시인으로 대화를 통한 평화 증진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 Words of Wisdom 희망찬 내일을 위한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의 명언

  • Dialogue with Nature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의 사진 작품, 자연과의 대화

  • The Life Story of Daisaku Ikeda 이케다 다이사쿠 생애

에세이

아름다운 지구

피라미드의 풍격(風格)

황금빛 폭우였다. 태양이 사막에 군림하고 있었다. 바라보면 눈이 타고, 만지면 손가락이 타들어가는 강렬함. 그 빛의 바닷속에서 피라미드만이 염열(炎烈)에 지지 않는 압도적인 힘으로 당당하게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다.

그 옛날 ‘태양이 떠오르는 계단'이라고 불렸던 ‘돌(石)의 기하학'. 올려다보면 선단(先端)은 하늘 속에 용해되어 있었다. 쿠푸왕 피라미드는 높이 137미터. 남서로 향해서 카프레왕, 멘쿠레왕 피라미드가 줄지어 서 있다.

1992년 6월 17일. 오후 3시를 지나고 있었다. 1천 만 도시 카이로에서 서쪽으로 13킬로미터. 나일강 서쪽 해안의 시가지를 자동차로 달리자 곧 사막이 시작된다. 그 높직한 평지에 있는 것이 기자의 3대 피라미드다. 30년 만에 방문한 이집트며 피라미드였다.

그러나 30년은 이 ‘영원한 집' 앞에서는 잠깐 동안에 지나지 않는다.

이집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시간은 모든 것을 비웃는다. 그러나 피라미드는 시간을 비웃는다." 나는 '영원한 시간'의 결정체를 앞에 두고 끓어오르는 감개(感慨)를 느꼈다. "나도 또한 삼세에 불멸(不滅)하는 성(城)을 쌓지 않으면 안 된다”고.

특별 빈객을 위한 영빈관에 초대되었다. 유적감독관(遺跡監督官)인 사무엘 여사께서 여러 가지 질문에 친절하고 정중하게 대답해 주셨다. 영빈관의 전망용 큰 창에서 카프레왕 피라미드가 정면에 보였다.

그리고 앞쪽에는 건물을 따라 무성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단색(單色)의 세계에서 그 나무의 푸르름만이 '생(生)'이었다. 언젠가는 죽어야 할 목숨을 태워 죽을 힘을 다하여 '지금'을 살고 있었다. 거대한 돌 피라미드는 ‘사(死)’와 ‘영원’을, 나무의 푸르름은 ‘생(生)’과 ‘무상(無常)’을 상징했다. 우주를 꿰뚫는 '생과 사'의 넘실거림을 응축한 묘(妙)한 공간이 거기에 있었다. 자연히 렌즈가 향했다.

사람도 또한 무상의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무언가를 추구한다. 죽음도 무너뜨릴 수 없는 무언가를! 죽음을 이겨 내는 불멸의 힘을! 그 탐구가 종교를 낳고 예술을 낳고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었다.

나를 초대해 주신 분은 전부터 알고 있었던 호스니 문화부 장관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저는 사색에 잠길 때 대피라미드 앞에 섭니다. 그러면 일상을 초월하여 우주로 향하는 듯한 감정이 솟구칩니다. 저는 믿습니다. 피라미드와 우주 사이에는 어떤 형태의 관계가 존재하고 있다고."

최근에도 '3대 피라미드의 배열과 크기는 오리온자리 별 3개의 배열과 광도에 대응하고 있다'는 가설(假說)이 화제가 되었다. 피라미드는 '천좌(天座)의 영원함을 지상에 옮기고 싶다'는 사람들의 기원(祈願)에서 태어난 것일까.

최근 연구에 의하면 피라미드는 긍지 높은 장인(匠人)들이 자발적인 의지와 굉장한 정열로 쌓아올렸다고 한다. 권력자가 강제하여 노예가 억지로 쌓은 것이라면 도저히 시간의 무게에 견딜 수 없다. 피라미드는 불멸의 영광스러운 성(城)을 남기려는 민중의 도전이고 개가(凱歌)이며 생과 사를 뛰어넘어 맥동하는 '우주 법칙'의 찬가였던 것은 아닐까.

"살아 있는 증거를 남기자!"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가자!" "인간이 극한(極限)의 힘을 짜내면 얼마나 위대한 것을 건설할 수 있을까. 민중의 힘을 후세에 보이는 것이다!" 피라미드는 지금도 우리에게 계속 묻고 있다. "당신은 일생을 걸고 도대체 무엇을 남기려는가?" 피라미드의 다른 이름을 '금자탑(金字塔)'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