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복(至福:더할 나위 없는 복)의 도시’라는 이름이었다.
‘젤리겐슈타트’ 라인강의 큰 지류(支流) 마인강 근처다.
독일의 벗은 이곳을 최고회의 장소로 선택했다.
괴테가 태어난 프랑크푸르트시에서 자동차로 30분.
인구 1만 8천 명의 작은 도시였다.
납작한 돌을 깐 작은 길을 걸었다.
뾰족한 지붕에 작은 창. 나무 조립으로 장식된 벽. 그림 동화(독일 그림 형제가 모은 민화집)에 나올 것 같은 집들이 우아하게 늘어서 있었다. 주민들은 지은 지 4백 년, 5백 년이나 되는 집에 지금도 살고 있다고 한다. 도시에는 전설이 있었다. 1,200년 전의 일. 유럽의 틀을 만든 ‘칼 대제(大帝)’가 생이별을 한 딸과 이 도시에서 재회했다고 한다. 대제는 기뻐하여 “지복의 도시라고 이름을 짓자”고 말했다고 한다.
코발트 블루의 강가에서 우리들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 진지하다. 1994년의 5월 23일. 독일통일로부터 4년이 지났다.
이 마인 강이 아버지격인 대하 라인 강에 흘러 들어가듯 독일 벗들의 평화운동도 대하로 되어 가고 있었다.
저녁 무렵이었지만 이 시기 유럽의 하늘은 아직 밝다. 갑작스레 흐려져 비가 심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빗소리는 천 개의 손가락으로 치는 피아노 소나타처럼 떠들썩하게 지붕을 때렸다. 은가루 같은 비였다. 커다란 테라스 창문 너머로 은색 커튼이 달려갔다. 강의 수면을 치듯이 비는 내렸다.
이윽고 빗소리는 조금씩 속삭이는 노래처럼 가늘어졌다. 양광(陽光)이 비쳤다. 하늘이 다시 밝아졌다. 짧게 한때 지나가는 비였다. 대기(大氣)는 상쾌하게 씻겨져 천지가 꽃처럼 웃었다. 그때였다. 하늘과 땅을 잇는 빛의 다리가 나타났다. 모두가 놀라 숨을 죽였다. 다리는 순식간에 선명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빨강, 주황, 파랑. 가늘고 긴 ‘삼색기’가 대공에 펄럭이고 있었다.
테라스에 나가 보았다. 무지개는 점점 빛을 더했다. 오렌지, 녹색, 남색, 짙은 보랏빛. 일곱 빛깔로 불타는 하늘의 아치를 올려다보려고 도시의 사람들도 밖에 나와 있었다. 무지개는 한쪽 발을 눈앞의 선착장에 내려놓고 있었다. 마치 여기에서 솟아난 무지개 같았다. 평화로운 미래를 주시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소에 떠오른 무지개였다.
이 투명한 빛의 기둥 너머로 푸른 나무들이 서 있었다. 마치 황금빛 햇살이 은빛 하프의 빗줄기를 현처럼 켜서 무지개라는 일곱 색깔의 선율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인간 세상이 이만큼 아름다울 수 있을까!
하늘의 활(弓)은 크게 반원을 그려 도시를 감쌌다. “이렇게 멋있는 무지개는 본 적이 없다”고 한 지역 주민이 말했다. 이때 누군가 외쳤다.
“하나가 더 있다!”
두 번째 무지개가 떠 있었다. 첫 번째보다 엷었으며, 색 배열은 반대였다.
빨강이 안쪽에 있었다. 지역 주민들은 강가의 큰 캐노피 아래서 소풍을 즐기고 있었다. 아이도 어른도 모두 나왔다. 쌍으로 만들어진 천궁(天弓:무지개)에 넋을 잃고 누구나 시인이 되었다. 비는 완전히 그쳤다. 사람의 꿈을 하늘로 나르는 통로 같았다. 이체동심의 단결과도 같았다. 인류 연대의 미래를 떠올리게 했다. 무지개가 생기고 난 뒤, 강물이 더 푸르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의 무지개는 격렬한 비에서 태어났다. 비의 선물이었다. 이 라인과 마인 지방이 낳은 현자(賢者) 괴테는 썼다.
“이 무지개야말로 인간의 노력을 비추는 거울이다.”《파우스트》그것은 ‘악전고투’의 노력에 의해 신성한 ‘영원의 생명’이 빛난다는 지혜였다. 일순간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 ‘물방울’에 태양의 ‘영원한 빛’이 비친 것이 ‘무지개’다.
인내 없이 행복은 없다. 고뇌의 비라는 번뇌에만 보리의 무지개는 뜬다.
괴테는 말한다.
“나는 모두에게서 특별히 행운을 타고난 인간이라고 높이 칭찬받아 왔다. 하지만 실제 내 인생은 고생과 일을 빼면 그 무엇도 아니다. 75년의 생애에서 정말로 유쾌한 기분으로 보낸 시간은 1개월도 안 된다. 큰 돌을 반복하여 밀어 올리려고 하면서 끊임없이 고뇌하며 왔을 뿐이다.”
재능과 건강, 외모와 부 등 모든 것을 타고난 괴테의 인생에서도 고뇌와 고생이 끊이질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살아있는 한 생기 있게 살자! 괴테는 마치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 같았다.
울적함이나 부질없는 걱정으로 끙끙거리지 마라!
하찮은 욕이나 푸념으로 인생을 망치지 마라.
매일 얼마나 많은 즐거움을 꺼낼 수 있을까, 하루하루를 공손하게 살자.
남을 시기하지 마라.
칭찬하라.
남을 부러워하지 마라.
능가하라.
용기를 내어 원기 왕성하게 일하라!
눈앞의 해야 할 일을 하라! 지금 바로!
항상 현재에 집중하라!
오직 현재에 영원성이 있다!
그렇다. 생기 있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 기쁨이야말로 생명의 용수철이다. 우주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꽃봉오리를 피우고 태양을 불태우는 것, 그것은 기쁨이다. 사람이 기쁨을 이루면 하늘도 춤춘다.
비여, 바람이여, 올 테면 오라 하고, 이 강처럼 강하고 인내 강하게 계속 나아가면 무지개는 뜬다. 비에 젖고 또 젖을지라도 그래도 계속 태양을 향해 나아가면 무지개는 뜬다. 게다가 물방울이 클수록 무지개는 선명해진다. 흘린 땀과 눈물이 클수록 승리의 무지개도 선명하게 뜬다. 오오, 인생에서 몇 번이나 ‘승리의 무지개’를 볼 수 있을까. 그 즐거움이야말로 끝까지 싸운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하늘의 ‘포상’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