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자 바다 냄새가 스며들어왔다. 와이키키 해변은 언제나 그렇듯이 북적거린다.
어린이들의 환호성. 친구를 부르는 소리. 햇볕에 달아오른 모래 위를 달리는 원색 수영복 차림의 사람. 야자수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태평양의 낙원을 찾아 동(東)과 서(西)에서 사람들은 모이고, 벗이 된다. '즐겁게 하자!' 이것이 '알로하(하와이의 인사말)' 정신이다. 그리고 내 눈은 이끌리듯 해변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모래사장에서 백마(白馬)가 태어나고 있었다. 누가 만들었을까? 금방이라도 우아하게 질주할 것 같다. 나는 무명(無名)의 예술가에게 존경을 담아 경례했다. 백마는 모래에 묻혀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예술가의 가슴에 묻혀 있었던 것일까? 창조의 손길을 거친 모래는 단지 모래가 아니었다.
더 이상 단순한 '사물'이 아니었다. 모래는 아름다운 백마가 되었다. 그것은 사물과 마음의 융합.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으로 변하는 순간. 오오, 창조력의 신비여. 사람도 또한 우주가 ‘별과 같은 소재’로 창조한 예술이다.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을 소재로 창조한 '달려가는 백마'다.
인간만이 아니다, 자연이 창조한 것은 언제나 걸작이다. 거대하게 뻗은 반얀나무. 붉은색 하이비스커스. 무지개 빛 열대어. 자연은 자기도 모르게 '미(美)'를 지향한다.
생명은 '미'를 지향한다. 생명 있는 것에 추한 것은 없다. 카메라를 쥔 손에 열대의 강한 햇살이 내리쬔다. 건조한 공기에 강한 향기가 떠돈다.
생강꽃인가, 플루메리아 꽃인가. 느끼는 마음만 있으면 이 세상은 아름다움으로 넘친다. 파도도 예술가다.
구름도 예술가다. 그리고 지구는 외친다. "사람이여, 아름다워라. 강하여라. 나처럼! 선심을 베풀어라.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라. 망설이지 마라. 멋진 무언가를 창조하라." 낳는 일은 기쁨. 창조하는 일은 기쁨. 사람을 북돋워 주는 것도 창조다.
우정을 만드는 것도 창조다. 인재를 키우는 것도 창조다. 창조의 기쁨! 그것이야말로 생명이 승리하는 함성이다. '호모 루덴스'. 인간은 본래 '놀이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한다.
문화는 놀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물질적인 요구에 속박된 경애에서 탈출하여 자유롭게 무엇인가를 창조한다. 그것이 문화며, 그것이 인간이다. 법화경에도 얼마나 '유(遊)'라는 글자가 많은가! "유행(遊行)함에 두려움 없음이 사자왕(師子王)과 같고", "보거(寶車)를 타고 사방(四方)으로 즐기고", "일야겁수(日夜劫數)로 항상 유희(遊戱)"라고.
"사자유희세보살(師子遊戱世菩薩)"도 있다. "여래(如來)의 신통유희(神通遊戱)"도 설해진다. 그리고 수량품에는 "중생이 유락(遊樂)하는 곳이니라"고 있다. "사람은 이 세상에 즐기러 왔다"는 것이다. 보살은 "여러 국토(國土)에 즐겨 중생을 도탈(度脫: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것)한다"고.
광대한 우주 가운데 지구를 선택해 우리들은 '행복을 창조하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괴로움조차도 파도를 타는 것처럼 즐겁게 타고 넘자. 생명력이 강할 때 이 세상은 '유락(遊樂)'의 장소가 된다. 그 힘을 흉중(胸中)의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퍼내자!
'와이키키'란 '솟아오르는 샘’을 뜻한다. 솟아나라, 뿜어내라, 생명력을. 그때 그 곳이 '낙원'으로 된다. 사소한 것을 마음에 두지 마라! 비장(悲壯)해지지 마라! 흉중의 비애를 타고 넘어라! '즐겁게 살아가자!' 그것을 위해 우리들은 태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