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30일
“세계평화의 구조는 한 인간이나 한 정당이나 한 국가만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 세계가 협력해서 노력한 결과로만 성취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유엔 창설을 주도한 한 사람으로서, 그 대부이기도 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1945년 3월 미국연방의회에서 한 연설 입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자신이 꿈꿨던 세계 평화를 위한 국제기구의 탄생을 보지 못하고, 그 다음달(4월) 유엔헌장 채택을 위한 ‘샌프란시스코회의(1945. 4. 25 ~ 6. 26)’가 개막하기 직전 서거했습니다. 그 장대한 이상(理想)을 계승하듯이, 세계 50개국 대표가 힘차게 모인 이 회의는 ‘전쟁과 비극(悲劇))의 유전사(流轉史)와 결별하고 반드시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해야 한다’는 열기에 감싸였습니다. 당시 회의 자체가 ‘보다 좋은 미래를 지향한 인류의 오랜 전진의 이정표(里程標)’라고 형용됐을 만큼 세계는 유엔창설이라는 꿈에 뜨거운 기대를 보냈습니다.
2개월에 걸친 토의 끝에 채택된 유엔헌장은 하나의 큰 맹세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우리의 일생 중에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두 번이나 인류에게 가져온 전쟁의 불행에서 다음 세대를 구하고….”
전문에 명시한 이 맹세는 단순한 ‘과거’ 반성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미래’ 세대를 위한 숭고한 책임감으로 일관한 것이었습니다. 나도 지금부터 13년 전(1993년 3월), 유엔헌장을 채택했던 샌프란시스코 회의장을 방문했습니다.
‘인류의 의회’인 유엔이 탄생의 첫 소리를 낸 세계사의 극적인 순간을 생각하면서 유엔이 맡은 큰 사명을 새삼스럽게 음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계를 연루시키는 세계대전을 결코 두 번 다시 일으키지 않는다는 당초의 이 목적은 동서 냉전대립을 비롯한 수많은 위기 속에서, 늘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위태로움을 안고 간신히 생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각 지역에서 분쟁은 끊이지 않고 계속됐습니다.
21세기에 접어들어서는 테러의 위협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더욱이 빈곤과 기아(飢餓), 환경 파괴, 난민 문제 등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는 지구적 문제군도 더욱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창설한 지 60년. 유엔을 둘러싼 상황에 눈을 돌렸을 때 떠오르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아난 사무총장이 지적한 것처럼, “가맹국간의 깊은 균열, 또 유엔 제 기구의 전체기능이 불완전해, 우리가 일치단결해 오늘날의 위협에 대처도 못하고 기회도 잡을 수 없게 됐다”(2005년 9월, 유엔총회특별정상회의 연설에서)라는 심각한 현실입니다.
정부간 조직이라는 성격을 지닌 속에서 대담한 개혁과 도전을 시작하려고 해도 각국의 국익이라는 두터운 벽이 앞을 가로막아 버립니다. 이것이 유엔이 오랫동안 직면한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런 가운데, 유엔에 실망하는 소리와 유엔 무용론을 일부에서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분명히 유엔에는 시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면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 많은 과제와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계 각지에서 여러 가지 위협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유엔의 큰 사명이 상실되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192개국이 가맹한 가장 보편적인 기구인 유엔을 제외하고, 유엔협력의 기초가 되고 그 활동에 정통성을 부여할 수 있는 존재를 다른 곳에서 찾는 일은 사실상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60년이라는 세월동안 ‘글로벌한 대화의 장’으로서 국제적인 합의만들기에 노력하며 각 지역에서 인도(人道)지원 활동을 계속 맡아온 귀중한 실적을 가진 유엔을 더욱 힘있게 지지하고 활성화하는 이외에 길이 없지 않겠습니까.
내가 지금까지 세계의 리더나 식자들과 대화를 거듭하며 일관해 초점을 맞춘 것은 ‘유엔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주제였습니다. 그 의견들을 요약하면, 유엔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나 유엔에게 바라는 요망(要望)은 있다 해도 ‘유엔 지지’라는 일점에서는 거의 완벽하게 일치(一致)했습니다.
다만, 막상 유엔을 중심으로 행동을 시작하면 자국의 처지나 이해(利害)때문에 거리를 두는 정치지도자가 적지 않다는 것이 대부분의 견해였습니다. 실제, 데 쿠에야르와 부트로스 갈리 씨를 비롯해 역대 유엔 정상과 대화 속에서 부각된 것도 “유엔에 ‘최대의 기대’는 보내지만, 현실적으로는 ‘최소의 지원’ 밖에 보내지 않는다”라는 본의 아닌 실정이었습니다.
그럼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면 좋은가.
이를 위해 우선 당연하겠지만, 유엔이 ‘인류의 의회’라는 원점(原點)으로 늘 되돌아가는 것이고, 국익(國益)이나 주장으로 서로 충돌해 아무리 심한 대립적인 구도(構圖)에 빠졌다 해도, 각 국이 ‘대화’를 중심축으로 흔들림 없이 인류가 함께 싸우는 지반을 한 걸음씩이라도 확고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대화’가 없으면 세계는 분단의 어둠 속을 계속 헤매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화’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사는 미궁(迷宮)같은 막다른 골목길에서 인류가 빠져 나오기 위한 ‘아리아드네의 실’주1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대화’를 인내심 강하게 계속해야만 시대가 요청하는 ‘공생(共生)’과 ‘관용’의 에토스(도덕적 기풍)가 발전합니다. 나는 그것이 마침내 인류사를 전환하는 ‘평화의 문화’ 토양이 된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지금 세계에는 매우 혼미한 이라크와 중동 정세를 비롯해 북한과 이란의 핵개발 문제, 또 아프가니스탄 정세의 악화, 그리고 아프리카 각 지역에서 계속되는 분쟁 등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심각할지라도, 유엔의 최고 특성인 소프트 파워의 원천이 되는 ‘글로벌한 대화의 회로’를 가능한한 구사하면서 사태를 타개할 수 있는 실마리를 계속 찾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글로벌화의 물결과는 정반대로 국가간 대립이나 내전 등, 분단이 진행되는 세계에서 전쟁과 폭력이라는 수단에 호소해 자기 주장을 관철하려는 ‘전쟁의 문화’가 증장하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그 뿌리를 단절하는 도전이 요망되는 때는 없습니다. 그 도전은 서로의 처지를 대화로 이해하면서 함께 인간 존엄이 빛나는 ‘평화로운 지구사회’를 지향하는 단호한 전진입니다. 이 ‘대화의 문명’ 대건설을 향해 유엔이 엄연하게 중심적인 역할을 사수하기를 나는 강하게 호소합니다.
여기서 21세기에 유엔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확인하기 위해, 지금도 여전히 ‘유엔의 양심’으로서 존경받으며 유엔사에 불멸의 빛을 발하는 다그 함마르시욀드 제2대 사무총장의 업적에 조명을 비추고자 합니다.
스웨덴 출신 경제학자인 함마르시욀드 사무총장은 동서(東西)냉전으로 긴장이 고조되는 와중에, 유엔이 수동적인 대응에 머물지 않고 세계 평화를 위한 주체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을 지향한 리더입니다. 지난해는 탄생 1백 주년을 맞았습니다. 수에즈 운하 위기를 비롯해 레바논 사건과 라오스 문제 등에서 수완을 발휘해, 직접 현지에 가서 ‘조용한 외교’로 중재한 것도 불멸(不滅)의 발자취입니다.
그런 적극적인 외교자세에 비판적(批判的)인 나라도 있었고, 흐루시초프 소련 총리에게 사임을 강요 받은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함마르시욀드 사무총장은 이것을 단호히 거부하고 유엔 중심자로서 이 난국을 수습하기 위해 계속 도전했습니다. 사무총장이 서거한 후 발간된 ‘길잡이’에는 그 불굴의 신조를 쓴 말이 있습니다.
“‘정을 박지 않은 석괴(石塊)’. 네 자신과 전 인류의 중핵(中核)으로 남아라. 그를 위해 네게 부과되는 목표를 향해 행동하라. 순간순간에 가능한한 힘을 다해 행동하라. 결과를 고려하지 말고, 자신을 위한 어떤 것도 바라지 말고 행동하라.”
함마르시욀드 사무총장은 종교적이라고도 해야 할 고매한 사명감을 갖고 ‘세계가 기대하는 유엔’의 중책을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수행 했습니다. 그리고 1961년 9월, 콩고 분쟁 해결하고자 카탕가의 모이즈 촘베 대통령과 회담하기 위해 가던 중 북(北)로디지아(현재 잠비아)에서 비행기 사고로 순난(殉難)해, 56년의 일생(一生)을 마쳤습니다. 그 일련의 공적을 찬탄해, 서거 후 노벨평화상이 수여됐습니다.
이 함마르시욀드 사무총장은 서거(逝去) 직전, 콩고 분쟁 중재와 더불어 완수하려고 결심한 일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존경한 ‘대화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 씨의 ‘나와 너’를 스웨덴어로 번역하는 일이었습니다. 두 분의 교류는 함마르시욀드 씨가 사무총장에 취임하기 전해인 1952년에 시작됐습니다.
함마르시욀드 사무총장은 서로 깊은 공감대를 갖고 부버 씨의 저작을 직접 번역하고 싶다고 강하게 결심했습니다. 그 마음을 편지로 써보냈던 바, 부버 씨에게서 ‘나와 너’를 번역하면 어떤가라는 제안을 받은 것은 콩고로 출발하기 불과 몇 주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즉시 스웨덴에 있는 출판사와 연락을 취해 출판승낙을 얻은 함마르시욀드 사무총장은 부버 씨에게 그 뜻을 편지로 다시 전했습니다.
함마르시욀드 사무총장은 뉴욕을 출발해 콩고로 향하는 도중에도 부버 씨에게서 받은 독일어판 책 ‘나와 너’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행기로 이동하는 시간이나 잠시 체류한 페오폴드빌(현 콩고민주공화국 수도 킨샤사)에서 격무 속에 틈을 내 번역작업에 매달렸습니다. 마지막 체류지에는 유고(遺稿)인 12쪽 분량의 ‘나와 너’ 번역원고가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부버 씨가 함마르시욀드 사무총장이 보낸 편지를 받은 것은 라디오에서 비행기 사고 뉴스를 들은 지 꼭 1시간 후였습니다.
부버 씨는 “사명을 위해 순교했다”라고 그의 죽음을 깊이 애도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이뤄야 할 일을 성취하려고 시도한 선의와 정열적인 인생을 진심으로 그리워했습니다.
함마르시욀드 사무총장이 부버 씨와 공유하며 저작 번역으로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한 신념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인간은 어떠한 난국을 만나더라도 타자(他者)와 ‘진실한 대화’를 지속할 수 있다는 확신이 아닐까. 그리고 ‘진실한 대화’가 이뤄지면 불신과 분단의 세계에도 반드시 다리를 놓을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음에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것을 상징하는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1954년 말, 함마르시욀드 사무총장은 한국전쟁(6·25전쟁) 때 북한에 포로가 된 미국인 비행사의 석방을 요청하러 유엔 의석이 미회복 상태이던 중국으로 갔고, 새해가 밝자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회견했습니다.
주위에서는 반대를 하고 또 통역 동행도 인정하지 않아, 단신으로 회견에 임한 총장은 저우 총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간원(懇願)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당신의 지혜와 평화를 실현하려는 강한 마음을 신뢰해서 왔습니다. 지금 포로가 된 미국인 비행사의 운명이 평화를 위한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을 이해하기 바랍니다.
대면해서 솔직하게 회담함으로써 지금 여기에 있는 마찰을 악화시키지 말자는 절박한 요청이라고 이해해 주기를 사무총장으로서, 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가진 큰 근심거리라는 것을 부디 알아주기 바랍니다”라고
인간만이 인간을 안다. 나도 저우 총리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저우 총리가 서거하기 1년 전 무렵(1974년 12월)의 일입니다. 이보다 앞선 1968년 9월, 중국과 일본 사이에 전쟁상태가 정식으로 종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중일 국교정상화와 중국이 유엔에서 의석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제언을 했습니다. 그런 경위를 잘 알고 있던 저우 총리는 요양 중에, 이쪽이 사양했음에도 불구하고 베이징의 병원에서 나를 따뜻하게 맞아 주셨습니다.
저우 총리는 30세나 젊은 내게 열렬한 기백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서로 평등한 처지에서 서로 도우며 노력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전망하면서 만대에 걸친 중국과 일본의 우호를 간절히 염원하셨습니다. 이런 내 체험에 비춰 봐도 저우 총리와 함마르시욀드 사무총장 사이에 어떤 혼과 혼의 대화가 오갔는지 그 광경이 눈앞에 선합니다.
사실 이 회견으로 총리와 사무총장에게 어떤 형태의 공감대가 싹튼 것이 실마리가 돼, 11명의 미국인 비행사가 석방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여하튼 나라와 나라의 관계, 또 유엔과 각국의 관계라도 그 근원은 인간과 인간의 만남, 그리고 마음을 연 대화에서 모든 것은 시작됩니다.
아무리 정세가 심각해도 직접 만나 대화를 거듭하는 속에 문제 해결의 돌파구는 반드시 열 수 있습니다. 함마르시욀드 사무총장이 재임 중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각 지역으로 달려갈 때 늘 염두에 둔 것은 이 확신뿐이었으리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세계 평화를 위해 끝없는 노력을 기울인 함마르시욀드 사무총장의 이 정신이 바로‘대화의 문명’을 담당하는 유엔이 일어서야 할 지침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21세기를 사는 인류가 계승해야 할 중대한 혼이 깃든 유산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지금 긴장이 고조되는 중동지역에서 유엔을 중심으로 관계 제국이 인내 강한 대화와 연계로 사태 타개와 안정화를 도모하는 것이 강력히 요구됩니다.
1개월동안 무력충돌이 계속된 레바논 정세도 요전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결의가 받아들여져 겨우 정전(停戰)상태에 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분쟁이 언제 다시 발생할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어, 정전상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다 안정적인 평화질서 회복이라는 단계로 이행시키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나는 그 새로운 국면을 열기 위한 대화의 회로를, 유엔을 통해 모든 면에서 모색하는 노력을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유엔의 큰 사명을 생각할 때 내 가슴에 메아리치는 것은, 창설 60주년을 맞은 지난해 9월 세계 1백70개국 정상이 모여 거행한 유엔총회 특별정상회의에서 아난 사무총장이 호소한 말입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세계가 이상과는 거리가 좀 멀더라도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6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유엔 존재 의의란 바로 이 ‘용기’와 ‘책임’을 결집시키는 중심에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 유엔을 유지하기 위해 세계 민중의 연대를 만드는 것은 내 스승인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창가학회(創價學會) 제2대 회장의 유명(遺命)이기도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종교적인 신조(信條)에 근거해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 초대 회장과 함께 일본 군국주의와 정면으로 대치한 도다 제2대 회장은 2년에 이르는 투옥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도다 제2대 회장 출옥은 1945년 7월 3일. 샌프란시스코회의에서 유엔헌장을 채택한 것과 거의 같은 시기입니다. ‘지구민족주의’와 ‘원수폭금지선언’을 비롯해 탁월한 평화사상을 남긴 도다 제2대 회장은 다음과 같은 신조를 품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유엔은 20세기 인류 영지의 결정(結晶)이다. 이러한 세계 희망의 요새를 다음 세기로 반드시 지키고 육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리고 “지구상에서 비참이라는 두 글자를 없애고 싶다”라고 염원하며 평화를 희구하는 민중의 연대를 확대하는 행동에 매진 했습니다.
우리 집도 형 4명이 징병돼, 맏형은 전사했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의 슬픔은 매우 깊었습니다. 전쟁만큼 잔혹한 것은 없습니다. 전쟁만큼 비참한 것은 없습니다.
나는 이 점을 청춘시절 내 생명에 새겼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곧 도다 제2대 회장을 만나, 스승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유전(流轉)에 종지부를 찍고 평화로운 세계를 실현하고자 내 인생을 바칠 것을 굳게 결의했습니다.
스승의 유지를 계승해 제3대 회장에 취임한 나는 세계 평화를 위한 행동개시에 즈음해 그 첫 장소를 미국으로 정했습니다. 그것은 미국에 지구평화의 기축인 유엔 본부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1960년 10월, 뉴욕 유엔 본부를 방문할 당시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고 강렬합니다. 당시는 함마르시욀드 사무총장 시절로, 때마침 유엔 본부에서는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과 흐루시초프 소련 총리를 비롯한 수많은 세계 각국 정상이 모여 제15회 유엔총회를 개최하는 중이었습니다. 본회의와 위원회 의사(議事)를 방청하는 속에서 가슴속 깊이 남은 것은 얼마 전에 독립한 아프리카 각국 대표가 활기차게 토의에 참여하던 모습입니다. 이 총회에서는 카메룬과 토고, 마다가스카르 등 17개국의 유엔 가맹을 승인했습니다. 키프로스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아프리카 대륙의 새로운 독립국 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본회의와 위원회 토의에서도 아프리카 각국에서 참가한 젊은 대표의 모습에서 ‘유엔을 통해 보다 나은 세계를 구축하고 싶다’는 숨결을 절절히 느꼈습니다. 그 후 유엔의 큰 사명을 생각할 때마다 그때 광경이 가장 먼저 뇌리에 떠오릅니다. 나는 그 후에도 세계 각지를 돌며 많은 사람들이 유엔에 거는 강한 기대와 바람을 느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국가, 민족, 종교의 차이를 초월하여 하나로 연결해 유엔 지원을 확대하고자 세계 지도자 및 식자와 대화를 거듭했습니다.
이러한 ‘문명간 대화’와 ‘종교간 대화’에 진지하게 대처하는 한편, 시대 변혁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명확히 내세우는 작업을 빼놓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1983년부터 해마다 ‘평화제언’(1·26 ‘SGI의 날’ 기념제언)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유엔 강화의 길을 전망하며 다양한 각도에서 계속적으로 제안함 과 더불어 민중 차원에서 유엔을 지원하는 중요성을 호소했습니다. 또 SGI도 세계 각지에서 유엔을 지원하는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동서 냉전의 긴장이 고조되는 속에서 유엔의 ‘세계 군축 캠페인’에 응해 1982년 6월, 뉴욕 유엔 본부에서 시작한 ‘핵무기-현대 세계의 위협전’을 들 수 있습니다. 소련(현재 러시아)과 중국 등 핵 보유국을 비롯한 세계 25개 도시를 순회전시해 총 1백20만 명의 시민이 견학했습니다. 그리고 냉전 붕괴 이후에도 ‘전쟁과 평화전’, 내용을 쇄신한 ‘핵무기-인류에 대한 위협전’ 등을 개최해 평화를 희구하는 민중의 마음을 환기하면서 세계 부전(不戰)을 지향한 조류를 고양했습니다.
인권교육 분야로는 ‘유엔 인권교육 10개년’(1995~2004년)을 추진하는 형태로 ‘현대 세계의 인권전’을 개최했습니다. 이 10개년 활동이 끝난 후에도 인권교육의 새로운 국제적 윤곽을 구축하고자 유엔기구 및 비정부기구(NGO)와 심도 있게 제휴하고, 그 노력은 유엔 ‘세계인권교육 프로그램’주2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또 지구환경문제 분야에서도 다른 NGO와 함께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교육 10개년’주3 설치를 호소했습니다. 그 결과 유엔총회에서 채택돼 유네스코(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를 중심으로 한 사업을 지난해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인도(人道) 원조 분야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유엔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UNHCR)의 난민구조활동 지원과 더불어 1992년에는 캄보디아에서 실시한 민주선거 때 ‘캄보디아 유엔잠정행정기구(UNTAC)’ 요청에 응해 중고 라디오 30만 대를 모아 기탁한 ‘보이스 에이드’ 캠페인 등도 펼쳤습니다. 이러한 SGI의 유엔 지원의 폭은 이제 세계 190개국으로 넓혀졌습니다.
SGI가 이제까지 추진한 운동은 모두 생명존엄의 불법(佛法) 철리(哲理)를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으로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마음의 발로였습니다. 유엔이 지향하는 길은 ‘평화’ ‘평등’ ‘자비’를 설하는 불법 사상과 상통합니다. 그러므로 유엔을 지원하는 것은 우리 불법 수행자에게 ‘필연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전에는 승만부인이라는 한 여성이 석존에게 다음과 같은 서원(誓願)을 세우는 이야기가 설해집니다. “나는 고독한 사람, 부당하게 감금돼 자유를 빼앗긴 사람, 병으로 시달리는 사람, 재난으로 괴로워하는 사람, 빈곤한 사람을 본다면 결코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겠습니다. 반드시 그 사람들을 안온하고 윤택하게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 세운 서원대로 평생 고뇌에 잠긴 사람들을 위해 행동을 끝까지 관철했습니다.
우리가 신봉하는 니치렌(日蓮) 대성인 불법에는 이런 대승(大乘)불교 정신이 맥맥히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대 세계에서 인간의 존엄을 위태롭게 하는 위협에 정면으로 맞서서 그것을 해결하고자 계속 노력하는 유엔을 지원하는 일은 승만부인으로 상징되는 보살도적인 삶의 자세에 귀결됩니다.
특히 유엔이 근년에 주력하는 ‘인권’ ‘인간의 안전보장’ ‘인간개발’ 또 ‘평화의 문화’와 ‘문명간 대화’ 등의 분야는 불법을 일관하는 평화사상과도 대단히 친근하게 느껴져 우리는 크게 공감했습니다.
그 사상적 근원에는 니치렌 대성인이 전란(戰亂)과 천재(天災)로 민중이 도탄에 허덕이며 신음하던 13세기 일본에서 저술하신 <입정 안국론> 이 있습니다.
이때의 <입정안국론> 에서는 ‘나라’를 표현하는 한자 하나만 보더라도 ‘큰입구몸(口)’ 속에 ‘옥(玉)’(왕을 뜻함)이나 ‘혹(或)’(창을 손에 쥐고 국경과 토지를 지킴을 뜻함)이라는 글자 대신 ‘민(民)’을 사용한 ‘국(囻)’이라는 글자가 태반을 차지합니다. 거기에는 권력자도 영토도 아닌 민중의 행복과 평화에 가장 주안점을 둔, 현대에서 말하는 ‘인간의 안전보장’에 통하는 사상이 맥동합니다.
또 전편(全篇)을 통해, 사람들에게 무력감이나 체념을 재촉해 현실 변혁에서 눈을 돌리게 만드는 사상이나 개인의 내면에만 몰두해 사회와 접촉을 끊는 등 당시 일본에 만연하던 사상을 엄하게 지탄합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이 본디 지닌 가능성이나 힘을 마음껏 꽃피우며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이 시대를 변혁하는 주체로 일어서는, 지금으로 말하면 ‘인간 개발’의 핵심인 ‘임파워먼트(능력개발)’라는 발상을 명료하게 밝혔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대 모름지기 일신(一身)의 안도를 생각한다면 우선 사표(四表)의 정밀(靜謐)을 기도해야 하느니라”(어서 32쪽)라며, 자기 한 몸의 행복에 그치지 않고 온 인류의 평화를 함께 희구하는 ‘평화의 문화’ 창조를 강하게 촉구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전시활동과 세미나를 통한 풀뿌리 차원의 의식계발에 주력하며, 유엔 활동을 ‘군축교육’ ‘인권교육’ ‘환경교육’ 등 ‘교육’이라는 측면 에서 지원하고자 한 가장 큰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더욱이 <입정안국론>은 “객(客)이 와서 함께 한탄하니 잠시 담론하리라”(어서 17쪽)라고 있듯이, 사상적 배경이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사회를 염려하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비극을 낳는 원인은 무엇인가” “비극을 막을 방도는 있는가” “인간은 비극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다가, 마지막에서 마음을 합해 함께 행동할 것을 맹세하는 장면으로 <입정안국론 >을 마칩니다.
이러한 ‘대화’를 통한 내발적인 촉발로 사회를 변혁하는 ‘행동’에 힘을 합해 일어서는 접근 방식은 석존 이래 전통적인 불법(佛法) 정신에 입각한 것입니다.
1995년에 제정한 SGI헌장에도 “SGI는 불법의 관용정신을 근본으로 타종교를 존중하며 인류의 기본적 문제에 관해 대화하고, 그 해결을 위해 협력한다”라고 명확히 주장했습니다. SGI는 이 정신에 따라 지구적 제반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찾기 위해 종교와 문화적 배경이 다른 많은 사람들과 ‘열린 대화’를 거듭하면서 각성한 민중의 연대를 세계 각지에 넓혔습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대립과 긴장이 이어지는 세계에서 이러한 ‘대화’의 힘으로 평화와 공존의 시대를 향한 조류를 고양하는 일이 바로 21세기 유엔이 지향해야 할 길입니다.
그리고 유엔의 가장 큰 사명은, 글로벌한 대화에 바탕을 둔 합의와 행동 주체로서 민중의 평화와 행복에 초점을 맞춘 ‘인권’ ‘인간의 안전보장’ ‘인간개발’이라는 세 중심축을 근본으로 지구적 제반 문제 해결에 임할 인류 공동 투쟁의 발판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유엔헌장에는 평화적인 분쟁 해결을 정한 제6장과 더불어 강제조치를 정한 제7장이 있듯이 군사적 조치를 포함한 ‘하드파워’ 행사도 상정(想定)돼 있습니다. 그러나 헌장이 제6장을 선행할 것을 특히 주장한 것처럼 ‘하드파워’ 선택은 어디까지나 더 이상은 무리라는 국면에서 내리는 최종적인 수단이어야 합니다.
유엔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어디까지나 대화와 국제협조를 바탕으로 ‘소프트파워’를 사용한 세계의 평화와 안정화에 있습니다.
사상가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문명은 힘을 ‘울티마 라티오(라틴어 Ultima Ratio)’로 만드는 시도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울티마 라티오란 ‘최후의 수단’이라는 뜻이며, 두 번의 세계대전을 교훈으로 탄생한 유엔의 연원을 감안해서 이 원칙은 반드시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유엔은 앞으로도 군사력 등 ‘하드파워’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 방식이 아니라, 신뢰를 키우고 예방 조치를 중시한 ‘소프트파워’의 충실에 힘을 쏟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양에는 ‘60년’을 하나의 큰 마디로 정하고 거기에서 다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고 포착하는 전통적 사고방식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면, 지난해 창설 60주년을 맞은 유엔은 지금 다시 한 번 커다란 사명으로 되돌아가서 새롭게 출발하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내가 새로운 유엔의 이상적인 모습으로서 한 가지 구체적으로 제기하고 싶은 것은 ‘인도적 경쟁’의 중심축이 되는 유엔 입니다.
‘인도적 경쟁’은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창가학회 초대 회장이 20세기 초두(1903년)에 발간한 저서 ‘인생지리학(人生地理學)’에서 제시한 이념입니다.
마키구치 초대 회장은 제국주의와 식민지주의가 세계를 날뛰던 시대에 군사, 정치, 경제면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져 가장 중요한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이 매몰된 상황을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약육강식의 경쟁을 탈피해 공생의 전망에 입각한 ‘자타 함께 행복’을 지향하는 ‘인도적 경쟁’으로 나아갈 것을 호소했습니다.
마키구치 초대 회장은 시대 전환의 요체에 관해 이렇게 논했습니다.
“종래 무력 또는 권력으로 영토를 확장하며 가급적 많은 인류를 그 의지력 아래 복종케 하며, 혹은 외형은 다를지라도 실제로는 무력이나 권력으로 하는 것과 똑같이 실력을 행사하는 것을 무형의 세력으로 자연스럽게 훈도해서 좋은 길로 인도하는 데 있다. 즉 위복(威服) 대신에 심복(心服)시키는 데 있다.”
이를테면 ‘위복’에서 ‘심복’으로, 즉 현대적으로 바꿔 말하면 군사력, 정치력 또는 압도적인 경제력으로 타국을 일방적으로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 들거나 강제적인 형태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하드파워’ 경쟁에서 결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 국가가 지닌 외교력과 문화력 또 인적자원과 기술, 경험 등을 구사한 국제협력으로 자연히 그 나라 주위에 신뢰관계와 우호관계를 구축하는 ‘소프트파워’에 입각한 절차탁마(切磋琢磨)를 호소했습니다.
이러한 ‘인도적 경쟁’, 즉 ‘소프트파워’에 입각한 영향력 경쟁을 확대한다면, 종래처럼 패자의 희생과 불행 위에 승자가 있는 ‘제로섬 게임(zero - sum game)’에 마침표를 찍을 것입니다. 그리고 각 나라가 좋은 의미에서 인류를 위한 공헌을 서로 경쟁하는 속에서, 지구상에 모든 사람들의 존엄이 빛나는 ‘윈 윈(win-win 모두가 승자로 되는)’ 시대로 길이 열릴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세계에서는 아직껏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의 희생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경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급속히 진행되는 글로벌화 동향과 더불어 빈부 격차는 확대 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또 지구환경문제로 대표되듯 인간의 존엄을 위태롭게 하는 위협도 ‘보더레스화’하여 이제 각국의 개별적 대응만으로는 통용되지 않는 시대를 맞이하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아난 사무총장이 “21세기에는 각국이 제각기 자국의 우선과제에 몰두하거나, 다른 나라가 특정 국가의 우선과제를 망가뜨리는 시도를 하고 있을만한 여유가 없다” “각국이 협조하며 문제에 임하면 강대국이 단독으로 달성할 수 있는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라고 강조하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각국이 지닌 힘을 분산시키지 않고 유엔으로 결집해야 합니다. 인류의 공유재산인 유엔을 명실상부한 ‘세계 민중을 위해 공헌하는 유엔’으로 강화하는 첫걸음은 모두 거기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본디 어느 나라든 좋은 국제사회 구성원으로 명예로운 위치에 설 수 있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한 지향성(志向性)을 이끌어 내면서 경쟁 에너지가 폭력적인 방향이 아닌 인도적인 방향으로 향하도록 만드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시대 전환을 앞장서서 호소하는 역할을 완수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인도적 경쟁’의 중심축인 유엔의 가장 큰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그 흐름을 조성하고 21세기 유엔의 중심에 ‘인도적 경쟁’ 이념을 정착화시킬 지표로 제안하고 싶은 것은 ①목적 공유 ②책임 공유 ③행동 공유 라는 ‘세 가지 공유’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이 ‘세 가지 공유’를 바탕으로 유엔이 추진해야 할 과제와 그러기 위한 개혁안에 관해 의견을 제기하고자 합니다.
첫째, ‘평화란 단순히 분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는 인식 위에서 지구상에 모든 사람들의 존엄과 행복을 위해 ‘평화의 문화’를 건설한다는 ‘목적 공유’를 확립하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먼저 추진할 일은 인간 존엄을 일상적으로 위협하는 ‘빈곤’ 문제입니다. 유엔개발계획(UNDP)에 따르면, 아직도 세계에서 25억이나 되는 인구가 어쩔 수 없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UNDP 케말 더비스 총재는 이대로는 유엔이 2015년까지 목표로 한 빈곤층 반감(半減) 등의 ‘밀레니엄 개발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이 경고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특히 세계 빈곤층에게 비극이 되는 한편, 부유국도 그 실패가 초래하는 결과를 모면할 수 없을 것이다. 상호 의존하는 세계에서 우리가 공유하는 번영과 집단적 안전보장은 빈곤에 맞선 투쟁의 성부(成否)에 달렸다.”
(UNDP ‘인간개발보고서 2005’의 프레스릴리스에서)
많은 자원을 소비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구가하는 일부 나라들이 그늘 에서,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빈곤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몇 세대나 걸쳐 인간 존엄을 끊임없이 위협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구사회의 부작용을 시정하는 일은 인도적인 면에서도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중대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과제가 아닙니다. UNDP에 따르면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데 드는 비용은 전 세계 소득합계의 1%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각국에서 군사비로 쓰는 자금의 일부라도 그곳에 충당할 만한 기구가 만들어지면 빈곤으로 고생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상황을 개선하는데 틀림없이 큰 도움이 됩니다.
나는 지금 다시 한 번, 이러한 자금의 국제적인 구조 조성에 관한 진지한 검토를 강하게 요청하는 바입니다.그리고 이와 더불어 빈곤으로 고생하는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의 능력개발을 중요시한, 인간개발을 위한 국제협력 특히 유네스코가 추진하는 ‘만인을 위한 교육’주4 활동 등에 적극적으로 지원(支援)할 것을 각국에 다시금 호소하는 바입니다.이 빈곤문제 해결과 더불어 ‘전쟁의 문화’에 종언을 고하기 위해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이 ‘군축문제’, 그중에서도 ‘핵군축’ 문제입니다. 앞서 말한 ‘인도적 경쟁’의 사조(思潮)가 국제사회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타국의 공포와 불행 위에 자국의 안전을 구축하고 행복을 쌓을 수 없다’는 현실 인식과 새로운 지구적 윤리 확립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지구적 윤리와 실로 대극적인 것이 압도적인 파괴력을 갖고 타국에 위협을 줌으로써 자국의 안전보장을 확보하려는 ‘핵보유 윤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엔에는 군축을 위한 다국간 토의의 장(場)으로서 ‘제네바 군축회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1996년에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안을 완성하는 성과를 올린 후, 각국의 의견대립이 계속돼 10년 가까이 활동 정체 상태가 됐음은 우려해야 할 사태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정체상황은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지 60년을 맞은 지난해에도 변함이 없고, 5월 핵확산방지조약(NPT) 재검토회의는 구체적인 성과를 올리지 못한 채 폐회했습니다. 그 뒤를 이어 열린 9월 유엔총회 특별수뇌회합에서도 성과문서의 핵군축·비확산에 관한 언급이 모두 삭제되는 등, 세계 평화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실망을 안기는 결과가 됐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한스 블릭스 씨(이라크 사찰을 맡은 유엔 감시검증사찰위원회 前 위원장)를 중심으로 하는 유식자 그룹 ‘대량파괴무기 위원회’가 핵군축과 핵비확산에 관한 제언을 완성해 올해 6월 코피 아난 사무총장에게 ‘공포의 무기’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그 내용에서는 ① 군축과 비확산, 또 테러리스트의 대량파괴무기 이용에 관해 의논하는 ‘세계 서밋’을 유엔에서 개최한다 ② 제네바 군축회의의 정체(停滯)를 타개하기 위해 의제를 설정할 때에 만장일치 방식을 개정하여 3분의 2 이상이라는 다수결 방식으로 변경한다는 등의 제안이 나왔습니다. 또 핵보유국에 대해 ‘핵무기에 의하지 않는 안전보장 계획을 개시할 것. 핵무기 비합법화를 위한 준비를 개시할 것’이라는 권고도 포함됐습니다.
이 모든 사항이 내가 지금까지 주장한 방향성과 일치합니다. 각국이 이 위원회의 의욕적인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암초에 걸린 핵군축문제의 돌파구를 여는 외교 노력을 하루 빨리 시작하기를 진심으로 염원 합니다.
1996년에 국제사법재판소는 ‘핵무기 사용과 위협은 일반적으로 국제법에 위반한다’는 권고적 의견을 냈습니다. 그중에서 ‘엄격하고도 효과적인 국제관리 하에 모든 측면에서 핵군축으로 이끄는 교섭을 성실히 이행하고 완결시킬 의무가 존재한다’는 판단이 나온 지 올해로 10년이 됩니다.
지금 다시 한 번, 이 권고적 의견의 중요성을 각국 정부에 호소하면서 핵군축 수행을 강력히 추구하는 국제 여론을 높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대량파괴무기위원회의 보고서에서도 이 점에 관해 “세계가 의사(意思)만 있으면 최종적으로는 핵무기 폐기조차도 이룰 수 있다” “이 10년 동안 군축과 비확산에 임하는 기세와 방침이 심각하고도 위험할 정도로 상실됐다”라고 지적한 대로입니다. 핵군축을 위한 각국의 정치적 의사가 완전히 냉각된 지금이기에 세계 민중이 연대하여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더욱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유엔에서 ‘핵폐기를 향한 세계 민중의 행동 10개년’ 제정을 호소하는 바입니다. 핵확산이 진행되는 가운데 더 많은 사람들이 핵 위협을 ‘자신에게 관련된 문제’로 파악하는 것, 또 그 위협을 없애기 위해 ‘자신도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 현실의 두터운 벽을 허물기 위한 실마리가 됩니다. ‘행동 10개년’은 이를 위한 의식계발을 유엔과 NGO가 협력해 추진하는 10년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국제 여론을 규합하는 가운데 대량파괴무기위원회가 제안한 바와 같이 군축문제를 집중적으로 토의하는 세계 서밋과 유엔 특별총회 개최를 신속하게 실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핵무기에 관한 철저한 군축, 그리고 핵폐기를 지향하는 가운데 ‘전쟁 없는 세계’에 관한 전망을 여는 일이 앞으로 세계의 초점이 된다고, 2005년 서거하신 퍼그워시회의 로트블랫 박사와 내가 대담집 ‘지구평화를 위한 탐구’에서 깊이 합의한 점이었습니다.
핵시대를 종식하기 위해서는, 인류가 핵무기를 억제(抑制)하기 위한 ‘필요악(必要惡)’으로 삼아 온 국익우선의 사고(思考)에서 벗어나는 일이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억지론에 항거해, 핵무기 사용을 어떠한 이유가 있어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호소한 것이 로트블라트 박사 등이 제창한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이었습니다. 또한 내 스승인 도다 제2대 회장의 ‘원수폭금지선언’이었습니다.
인류의 생존권 위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핵무기는 바로 ‘절대악’입니다. 그 폐기야말로 인류 공통의 책무라는 사조(思潮)를 시대 정신 으로 고양하는 것을 ‘핵폐기를 목표로 하는 세계 민중의 행동 10개년’의 안목으로 삼아야 한다고 나는 제안하는 바입니다.
이상으로 나는 ‘목적 공유’ 면에서 특히 빈곤문제와 군축문제를 언급했는데, 이밖에도 많은 과제가 인류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중 에서도 지구환경문제는 문명론적인 아포리아(난문<難問>)라고도 해야 할 성질을 지니고 있어 그 해결은 용이하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 문제의식에서 ‘환경 유엔’의 창설 제안을 비롯해 해마다 평화제언 등에서 인류가 영지를 결집해 그 해결에 적합한 체제를 갖출 필요성이 있다고 계속 호소했습니다. ‘빈곤’ ‘군축’ ‘환경’ 중에서 그 어느 것을 봐도, 같은 지구에서 생활하는 ‘인류의 일원이라는 자각’과 ‘미래에 대한 책임감’에 바탕을 둔 국제사회의 일치된 행동 없이 타개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유엔을 통한 ‘목적 공유’를 확립하는 일을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둘째 제안은 ‘책임 공유’를 도모하기 위해 유엔에서 열리는 다양한 토의 혹은 유엔의 여러 기구가 각지에서 하는 활동에 차세대를 담당할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내가 창립한 도다기념국제평화연구소에서는 올해 2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유엔 개혁과 강화를 주제로 국제회의를 개최했습니다. 여기에 참석하신 초두리 사무차장이, 회의에 기고한 ‘개혁구상’에서 제시하신 다음 주장에 나는 전적으로 뜻을 깊이 굳혔습니다.
“현대 젊은이들이 유엔의 제반 활동이 갖는 가치를 깊이 이해하고 높이 평가해 나아간다면, 세계의 미래는 지금보다도 훨씬 많은 ‘선(善)한 행동자’로 가득 찰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유엔은 세계의 장래를 형성할 때, 젊은 세대의 발상과 정열로 더욱 힘을 얻도록 젊은이들과 한층 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교류를 도모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유엔이 더욱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끈질긴 이해와 지원이 필요합니다. 덧붙여 글로벌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종래 국익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을 탈피해 지구익과 인류익에 입각한 ‘책임 공유’의 활동 폭을 넓히는 일을 대(大)전제로 합니다. 그리고 그 주역이 바로 ‘청년’입니다.
창설한 지 60년이 지난 유엔은 청년의 적극적인 참여라는 ‘아르키메데스 점’주5을 얻는 것으로 활력을 더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분쟁 해결의 문제를 예로 생각해 봐도, 일단 화평을 달성하면서 5년 이내에 다시 분쟁이나 내전상태에 빠져 버리는 지역은 적지 않습니다. 한 번 분쟁이 일어나 보복에 의한 비극을 당한 지역은 그 지배층을 구성하는 세대가 ‘증오와 폭력의 연쇄’를 용이하게 단절할 수 없는 상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과거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젊은 세대에게 초점을 맞춰, 청년들이 새로운 발상으로 평화와 공존으로 향하는 길을 모색하는 일이 사태 개선을 도모하는 면에서 한 가지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요. 더 나아가, 앞서 말한 빈곤과 군축 그리고 환경문제에 관해서도 장기적인 시야에 입각해, 차세대에 역점을 둔 교육과 의식계발을 착실하게 추진하면 장차 세월이 흘러 ‘변혁의 종자’가 분명 싹틀 것입니다.
내 은사인 도다 제2대 회장이 ‘원수폭금지선언’에서 핵무기 폐기를 특히 청년에게 맡긴 것도 그러한 원대한 미래 전망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한 가지 시도로, 해마다 유엔총회 개회 전에 세계 청년 대표를 초대한 ‘프리미팅(사전 모임)’을 열어 청년들 의견에 각국 수뇌가 귀를 기울일 기회를 마련할 것을 검토하면 어떨까 제안하는 바입니다.
또, 학생과 청년들 대표가 1년 또는 2년 단위로 유엔 여러 기구가 각지에서 하는 활동에 관여해, 유엔 활동의 의의와 과제를 몸으로 체험하면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지구적 문제군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과 동고(同苦)하고 이를 극복하는 길을 탐색할 기회를 마련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현재 유엔 자원봉사계획(UNV)으로 해마다 약 5천 명을 각지에 파견했습니다만, 그 평균 연령은 39세며 주로 전문분야의 실무경험을 지닌 엑스퍼트(전문가)로 구성돼 있습니다.이것과는 다른 형태로 학생과 20대 청년층이 체험적으로 참가할 수 있는 범위를 확충하면 어떻겠습니까.
또한 유엔의 인턴제도를 더욱 개선하는 점에서도 제안하고자 합니다. 참가 대상을 대학원생뿐만 아니라 대학생이나 NGO의 젊은 스태프까지 확대해 유엔 정책입안이나 심의 준비작업을 지원하는 등 청년들이 폭넓게 관여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내가 창립한 미국 소카대학교 졸업생도 이 유엔의 인턴에 힘차게 참가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는, 평화학자 엘리스 볼딩 박사가 나와 대담하면서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에게 활약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하신 것이 기억납니다.
박사는 “세계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볼딩 박사 자신도 국제평화학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1학기 동안 지역 내에 있는 국제적인 NGO 지부에 실습생으로 나가게 해 그 활동을 경험하도록 권장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깊이 공감했습니다. 이러한 시도를 하나하나 쌓아올리며 유엔 전체가 청년에게 초점을 맞추는 체재를 갖춰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했으면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세계 청년을 위해 활동을 특화한 전무기구나 유엔사무국 안에 ‘청년 담당국’ 설치를 앞으로의 과제로 검토하면 어떨까 합니다.
같은 맥락의 제안입니다만, 현재 세계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을 위해 더 종합적이고 강력한 정책을 추진하는 전문기구 설치를 바라는 목소리도 NGO 사이에서 고조되고 있습니다. 유엔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세계 각지의 ‘청년’이나 ‘여성’에 대한 임파워먼트를 추진함과 동시에 유엔의 모든 활동에 ‘청년’이나 ‘여성’이 참가할 수 있는 길을 확립한다면 지금보다 더 다양한 의견을 유엔 정책 전반에 반영할 수 있게 돼 유엔의 새로운 시대도 전도양양하게 열릴 것입니다.
이에 더해 나는 세계 모든 대학이 그 사회적 사명의 하나로 ‘유엔을 지원하는 거점’으로 기능을 해야 한다고 호소하는 바입니다. 이미 각 대학에서는 연구자나 연구기관이 유엔의 모든 활동을 학술면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세계적인 규모로 확대함과 더불어 대학이 학생이나 시민 의식을 항상적(恒常的)으로 계발하는 장을 목표로 해 유엔 활동에 관한 강좌 등을 중층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강력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학생을 주체로 유엔을 지원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해 두고자 합니다.
일찍이 나는 ‘유엔을 지키는 세계시민의 모임’을 각지에 마련해 유엔을 지원하는 윤곽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창한 적이 있습니다. 국가나 민족의 범위를 초월한 인류적 시야에 선 인재를 배출하는 일이 장기적으로 볼 때 유엔을 활성화하는 생명선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 가장 핵이 되는 존재가 바로 학생입니다. 이미 세계에는 학생이 서로 제휴해서, 유엔 지원연대 강화활동을 하는 NGO도 있어 그 활동이 더한층 펼쳐지기를 기대합니다.
이렇게 학생이나 대학이 ‘점’이 되고 그것을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선’이 돼 결국은 유엔 지원의 원이라는 ‘면’이 지구 전체로 확대 됩니다.
나는 그러한 ‘학생이나 대학과 더 견고하게 관계를 맺은 유엔의 미래도’를 그리고 있습니다.
‘책임의 공유’라는 측면에서 한 가지 더 제안하자면, 유엔의 오랜 과제인 재정 안정화를 도모하기 위해 현재 가맹국 분담금과는 별도의 구조로 재정을 지원하는 제도를 검토해야 합니다.
유엔이 전 지구적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현재는 분담금 지불이 늦어지거나 체납에 따른 재정적 제약으로 신속히 대응해야 할 과제나, 중점적으로 대처해야 할 활동에 지장이 발생하는 일도 있어 유엔의 힘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과제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사회 등에서 폭넓게 자금을 모금해 유엔 재정을 지원하는 또 하나의 기둥으로 하는, 가령 ‘유엔민중기금’과 같은 제도를 마련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 재정은 가맹국의 임의협력과 민간 모금으로 이루어져 총 수입 중 민간 기금 협력이 33%를 차지합니다. 이러한 사례도 참고하며 개인과 단체, 또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국제기업 등에서 귀중한 기금을 모아 인도적인 분야를 중심으로 한 유엔 활동자금에 중점적으로 충당하는 제도를 모색해야 합니다.
셋째 제안은 ‘행동의 공유’를 꾀하기 위해 가맹국과 유엔의 관계를 더 긴밀히 하고, 유엔 각 기구의 현지 활동을 조정하기 위한 ‘유엔지역사무국’을 설치하는 안입니다. 유엔 활동이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며 특히 위협으로 괴로워하는 국가에게는 그 주변 지역 국가들이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큰 힘이 됩니다.
또 ‘빈곤(Poverty)’과 ‘인구증가(Population growth)’ ‘환경악화(Environmental degradation)’ 사이에서 나타나는 악순환을 영어 앞 글자만 따서 ‘PPE문제’라고 부르듯, 전 지구적 문제는 여러 가지 형태로 밀접하게 얽혀 있어 개별적으로 대처해서는 해결할 수 없는 복잡성을 띠고 있습니다.
더욱이 전 지구적 문제라도 지역에 따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실정에 입각한 문제 해결의 접근 방식이 필요합니다. 이 ‘지속성’ ‘복잡성’ 그리고 ‘지역성’이라는 세 가지 요청을 감안할 때 지역마다 어떤 형태로든 유엔의 중심 거점을 설치하는 일이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합니다.
그것은 또한 각 지역에서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의 평화와 행복에 초점을 고정해 ‘인권’ ‘인간의 안전보장’ ‘인간 개발’ 정책을 종합적으로 추진하는 체제를 가다듬는 결과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각 기구 체제를 반드시 다시 편성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안(案)의 주안점은 어디까지나 유엔과 가맹국을 더 긴밀하게 연결하고 지역마다 유엔기구의 시너지 그룹(서로 상승 작용을 해 더 큰 효과를 발휘하는 체제)을 구축, 지역이 안고 있는 문제에 하나로 단결해 대처하는 ‘행동의 공유’를 꾀하려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유엔지역사무국’을 주관할 수 있는 기존의 기구로는 가령 경제사회이사회 산하의 5개 지역경제위원회인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 ‘서아시아경제사회위원회’ ‘아프리카경제위원회’ ‘유럽경제위원회’ ‘남미·카리브경제위원회’ 등을 후보로 들 수 있습니다. 현재 유럽연합(EU)과 아프리카연합(AU)을 비롯해 각지에서 지역 통합과 지역 협력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들 조직과 유엔을 잇는 가교가 되고 유엔을 축으로 한 ‘글로벌 거버넌스(세계적 규모의 공동통치)’를 지탱하는 지역의 ‘축’으로 앞으로 5개의 ‘유엔지역사무국’을 설치하는 일도 검토할 가치가 있습니다.
이 안과 함께 마지막으로 ‘행동의 공유’를 도모하는 중요한 열쇠로 언급해 두고 싶은 점이 유엔과 시민사회의 파트너십 강화입니다.시민사회의 유엔 참가는 1990년대 일련의 유엔회의를 통해 비약적으로 추진됐습니다. 뜻을 같이 하는 정부나 NGO 등의 파트너십은 ‘대인지뢰금지협약’ 으로 결실을 거둔 오타와협약주6이나 ‘국제형사재판소’ 설립 조약 채택 등, 시대를 구분 짓는 성과를 낳기에 이르렀 습니다.
또 2003년에는 ‘유엔과 시민사회의 관계에 관한 유식자 패널’을 설치했습니다. 그곳에서 이룬 성과를 이듬해 2004년에 ‘우리 인민시민 사회, 유엔, 글로벌 거버넌스’라는 주제로 보고서(카르도수 리포트)를 발표해 유엔 활동을 지원하는 시민사회 역할에 대한 인식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런 속에 지난해 6월, 우리 SGI 대표가 의장을 맡고 있는 유엔종교NGO위원회에서는 유엔 각 부(部)와 국(局) 그리고 기구와 각국 정부가 합동으로 ‘평화를 위한 종교간 협력회의’를 개최했습니다. 3자가 유엔에서 종교간 회의를 공동 개최한 일은 매우 역사적인 사건이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유엔이 활성화돼 세계 민중이 기대하는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유엔’과 ‘가맹국’ 에 ‘시민사회’를 포함한 3자가 저마다 가진 특성과 역할을 서로 인정하고 협력 관계를 반드시 강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3자는 인류가 직면한 과제를 놓고 같은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거듭하여 협동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를 진심으로 염원합니다.
이상 나름대로 21세기 유엔을 전망하며 세 가지 각도에서 제안을 했습니다.
일찍이 제1차 세계대전이 ‘국제연맹’을 낳고 제2차 세계대전이 ‘국제연합’을 탄생시켰습니다. 인류는 지금이야말로 전쟁의 비극을 겪지 않고 세계 민중을 위한 ‘글로벌 거버넌스’ 창조를 향해 유엔 강화를 도모하는 도전을 개시해야만 합니다.
그 용기 있는 첫 걸음을 내딛기 위해서는 여러 국가가 토의한 결과를 실행하는, 이른바 ‘위에서 일으키는 개혁’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유엔을 지원하는 민중의 소리를 배경으로 한 ‘밑에서 일으키는 개혁’의 파도를 반드시 높일 필요가 있다고 거듭 강조하는 바입니다.
많은 비극을 낳은 20세기가 ‘경고의 시대’였다면 ‘행동’과 ‘연대’는 21세기의 키워드입니다. 이 정신을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이 종횡으로 개화하며 시대 변혁을 목표로 한 유대를 깊게 해 ‘평화의 문화’를 지구 전체로 넓히는 일이 중요합니다. 여기에 인류가 착수해야 할 최대 도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주역이 바로‘민중’입니다.‘청년’입니다.
우리 SGI는 뜻을 같이 하는 세계 사람들과 힘을 합해 유엔을 축으로 한 평화와 공존공영의 세계를 향해 인류의 새로운 천 년의 대도를 단호히
열 것을 결의합니다.